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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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 한 예술가의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 광주 비엔날레에 <세월오월>이라는 대통령 풍자화를 그렸던 홍성담 씨는 결국 작품을 철거했다. 예술이라는 농담거짓말로 받아들여져서다. 그랬던 그가 최근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FP)‘2014 올해의 사상가중 예술가 부문에 뽑혔다. (IS의 수장 등이 사상가의 다른 목록에 있는 것을 보면 그 사상가의 평가에 대한 부분은 제외한 것 같다.) 한 나라는 예술가의 농담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다른 나라는 그 농담을 만든 자를 사상가로 인정했다.

 

 

 

홍성담 작가의 세월 오월부분

 

밀란 쿤데라가 이 상황을 봤다면 뭐라고 했을까? 그는 최근작 <무의미의 축제>에서 더 이상 농담이 통하지 않는 사회를 비꼰다. (쿤데라에게 비판한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이는 그의 첫 소설집 <농담>부터 시작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웃음과 망각의 책>에서도 꾸준히 보이는 모티프다. 쿤데라 본인 역시 검열이 삼엄한 시대에 프랑스로 망명을 간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

 

농담은 위험한 게 됐지. ... 농담의 황혼! 장난-후의 시대!” (라몽) (98p)

 

쿤데라는 스탈린 시대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농담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회를 장난-후의 시대라고 부른다. 풍자 그림이 검열대상이 되어버린 이 시대를 쿤데라는 포스트-농담시대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또 그런 예술가를 사상가로 지정하는 사회를 쿤데라가 좋아할 것 같진 않다. 그는 농담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싫어할 테지만, 농담이 의미를 가진 하나의 사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에도 고개를 저을 것 같다.

 

뭔가 신비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너희에게 보호막이 돼 주었을 거야. 하긴 그게 우리 모두의 작전이기도 했지.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 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장난이 힘을 잃었다는 게 보인다. 너는 기를 쓰고 파키스탄 어를 해서 흥을 돋우려 하고 있어. 그래 봐야 안 돼. 너는 피곤하고 지겹기만 할 뿐이야.” (라몽) (96p)

 

사상가들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함과 권리에 대해서도 콧방귀를 뀐다. 어쩌면 인간의 권리였어야 할 것들은 쟁취로 얻을 수 없는 것이라 말한다. 인간이 쟁취해서 얻을 수 있는 권리는 무의미한 것들이라는 말이다.

 

저 사람들 전부 좀 봐라! 한번 봐! 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 적어도 절반이 못생겼지. 못생겼다는 것, 그것도 역시 인간의 권리에 속하나? 그리고 한평생 짐처럼 추함을 짊어지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아니? 한순간도 쉬지 않고? 네 성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 (알랭의 어머니) (133p)

 

쿤데라는 농담이 거짓말로 받아들여지는 전체주의의 사회도, 농담이 사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의미의 사회도 거부한다. 쿤데라가 원하는 세상은 농담이 그저 농담으로 받아지는 세상이다. 농담이 농담 그자체로 받아들여지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농담이라는 것은 그 농담을 듣는 구성원이 어떤 전제를 공유하고 있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웃찾사의 갑과 을을 보고 함께 웃으려면 이 세상의 갑과 을이라는 지위가 있고 갑이 을에게 횡포를 부리고 있는 상황을 경험하거나 이해한 적이 있어야 웃음이 터진다. 많은 이들이 개그 코드가 맞는 사람을 찾아다니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개그 코드, 즉 함께 농담을 던지며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곧 가치관을 공유한다는 뜻이다.

 

농담이 통하는 가치관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하고 수가 많을 것이다. 쿤데라 역시 자신의 가치관을 제시한다. 이 가치관은 남에게 죄를 전가하지 않는 것이다. 행인과 어깨를 부딪치고 애꿎은 사과를 하고 돌아온 알랭이 말한다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알랭) (57p)

 

현대사회는 서로에게 죄를 전가하는 방식으로 만인에 대한 투쟁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만인에 대한 투쟁이 없을 수 없다는 점에서 삶은 이미 전쟁터다. 어쩌면 삶을 시작해 버린 것, 우리의 의지 없이 중요한 것들은 모두 무의미하게 시작 돼 버리는 삶에서, 쿤데라의 말처럼 우리는 사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수도 있다.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들며 농담을 거짓말로 만드는 삶을 살아갈 테니까 말이다. 몇 년 전 언니네 이발관도 말했더랬다.

 

언젠가 우리 별이 되어 사라지겠죠/ 모두의 맘이 아파올걸 나는 알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렇게 정해져 있는걸/ 세상을 만든 이에겐 아무 일도 아닐 테니까/ 인생은 금물/ 함부로 태어나지는 마/ 먼저 나온 사람의 말이/ 사랑 없는 재미없는 생을 살거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네 (언니네 이발관, ‘인생은 금물가운데)

 

언제나 비유를 사용해서 인지 쿤데라가 주창하거나, 바랬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책과 전작을 통틀어서 가장 간절하게 쓰였다고 느낀 문장이 있다.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샤를) (58p)

쿤데라가 바라는 세상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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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려고 할 때면 그 여자는 경쟁 관계에 들어갔다고 느끼게 돼. 자기도 뛰어나야만 할 것 같거든. 버티지 않고 바로 자기를 내주면 안 될 것 같은 거지. 그런데 그냥 보잘것없다는 건 여자를 자유롭게 해줘. 조심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는 거야. 재치 있어야 할 필요도 전혀 없어. 여자가 마음을 탁 놓게 만들고, 그러니 접근이 더 쉬워지지. (25p)

죄책감을 느끼느냐 안 느끼느냐. 모든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 같아. 삶이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지. 다들 알아. 하지만 어느 정도 문명화된 사회에서 그 투쟁은 어떻게 펼쳐지지? 보자마자 사람들이 서로 달려들 수는 없잖아. 그 대신 다른 사람한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거야. 다른 이를 죄인으로 만드는 자는 승리하리라. (57p)

맞아. 사과하지 말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 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샤를) (58p)

지루한 거 말이야, 그거보다 나쁜 건 없거든. 바로 그래서 내가 여자를 자꾸 바꾸는 거야. 그렇게 안하면 좋은 기분일 수가 없어. (카클리크) (85p)

뭔가 신비하게 만드는 즐거움이 너희에게 보호막이 돼 주었을 거야. 하긴 그게 우리 모두의 작전이기도 했지.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개조할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 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 뿐이지. 하지만 내 눈에는 우리 장난이 힘을 잃었다는 게 보인다. 너는 기를 쓰고 파키스탄어를 해서 흥을 돋우려 하고 있어. 그래 봐야 안돼. 너는 피곤하고 지겹기만 할 뿐이야. (라몽) (96p)

우스운 것에 대한 성찰에서 헤겔은 진정한 유머란 무한히 좋은 기분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해, 잘 들어, 그가 한 말 그대로 하는거야, ‘무한히 좋은 기분’, 말이지. 조롱, 풍자, 빈정거림이 아니야. 오로지 무한히 좋은 기분이라는 저 높은 곳에서만 너는 사람들의 영원한 어리석음을 내려다보고 웃을 수 있는 거라고. ... 그런데 어떻게 찾지, 좋은 기분을? ...그걸 어떻게 찾는냐고, 좋은 기분을? (라몽) (99p)

쇼펜하우어의 위대한 사상은 말이오, 동지들, 세계는 표상과 의지일 뿐이라는 거요. 이말은 즉, 우리가 보는 세계 뒤에는 어떠한 실재도 없다, 물자체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이 표상을 존재하게 하려면, 그것이 실재가 되게 하려면 의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 말입니다. 그것을 부과하는 막대한 의지 말이오. (스탈린) (116p)

지구에 있는 사람만큼 세계의 표상이 있다는 것. 그건 필연적으로 혼돈을 말들이죠. 이 혼돈에 어떻게 질서를 부여할까요? 답은 분명해요. 모든 사람에게 단 하나의 표상만을 부과하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의지에 의해서만, 단 하나의 막대한 의지, 모든 의지 위의 의지에 의해서만 부과될 수 있어요. ...커다란 의지의 지배 아래 놓이면 사람들은 결국 아무거나 다 믿게 되는 법이거든. (스탈린) (117p)

모두가 인간의 권리에 대해 떠들어 대지. 얼마나 우습니! 너는 무슨 권리에 근거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야. 자기 의지로 삶을 끝내는 일까지도 그 인간의 권리를 수호하는 기사들은 허락해 주지 않아. (알랭의 어머니) (132p)

저 사람들 전부 좀 봐라! 한번 봐! 네 눈에 보이는 사람들 중 적어도 절반이 못생겼지. 못생겼다는 것, 그것도 역시 인간의 권리에 속하나? 그리고 한평생 짐처럼 추함을 짊어지고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너는 아니? 한순간도 쉬지 않고? 네 성도 마찬가지로 네가 선택한 게 아니야. 네 눈 색깔도, 네가 태어난 시대도, 네 나라도, 네 어머니도, 중요한 건 뭐든 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권리들이란 그저 아무 쓸데없는 것들에만 관련되어 있어, 그걸 얻겠다고 발버둥치거나 거창한 인권선언문 같은 걸 쓸 이유가 전혀 없는 것들! (알랭의 어머니) (133p)

(샤갈전에 몇 번이 갔지만 들어가지 않는 라몽) 사실 여기에 샤갈을 보러 오는 게 아니라 한 주 한 주 지나며 줄이 더 길어지는 걸, 그러니까 지구에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는 걸 확인하러 오는 거지. 저 사람들 봐! 저 사람들이 느닷없이 샤갈을 사랑하게 됐다고 생각해? 저 사람들은 오로지 어떻게 할지 모르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어디든 달려가고 뭐든 다 할 준비가 돼 있어.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누가 하라는 대로 다 해. 기막히게 조종하기 쉽다고. (136p)

물론 획일성은 어디에나 퍼져있지만, 그래도 이 공원에서는 획일성이 좀 다양하게 있잖아. 그러니까 너는 네 개별성의 환상을 지킬 수 있는 거지. (라몽) (136p)

한 가지는 분명해. 허벅지나 엉덩이, 가슴하고는 다르게 배꼽은 그 배꼽을 지닌 여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고, 그 여자가 아닌 어떤 것에 대해 말한다는 거야. ... 태아. ... 예전에 사랑은 개인적인 것, 모방할 수 없는 것의 축제였고, 유일한 것, 그 어떤 반복도 허용하지 않는 것의 영예였어. 그런데 배꼽은 단지 반복을 거부하지 않는 데서 그치지 않고, 반복을 불러. 이제 우리는, 우리의 천년 안에서, 배꼽의 징후 아래 살아갈 거야. 이 징후 아래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배 가운데, 단 하나의 의미, 단 하나의 목표, 모든 에로틱한 욕망의 유일한 미래만을 나타내는 배 가운데 조그맣게 난 똑같은 구멍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섹스의 전사들인 거라고. (알랭) (13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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