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게이트 -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의 최후 고백
장진수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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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혼없는 공무원'에서 영혼의 자유를 느낀 인간으로

부제: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의 최후 고백 - 평범한 악, 비범한 선

 

최고의 부하는 '영혼없는 부하'?

아이히만은 20세기 최고의 '부하'였다. 유대인 학살의 실무자였지만 법정에 선 그는 '윗선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실제로 그는 히틀러의 저서를 읽은 적이 없었고 히틀러의 사상을 잘 알지도 못했다고 한다. 이를 두고 그 유명한 철학자는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고 성찰하지 않은 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악을 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이히만의 이야기를 꺼내기엔 죄질의 차이가 크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사람을 죽인 죄와 컴퓨터 하드 디스크의 자료를 죽인 죄를 같다고 이야기하려는 건 아니다. 민간인 불법 사찰 증거인멸에 휘말린 장진수 전 주무관이 법정에 서게된 이유는 컴퓨터 하드 디스크를 죽인 죄 때문이 아니었다. 상관의 말을 잘들은 '영혼없는 공무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고통을 공감하고 폭로의 용감함을 높이 사지만 그는 분명히, 평범한 악을 행했다.

 

그의 '영혼없음'은 책 전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진실을 말하기보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몇번이나 기회가 있었음에도 평범한 악을 행했다.

 

-그러면서 나는 한편으로 ‘진 과장 말처럼 그 문건으로 여론이 돌아선다면, 내가 근무하는 사무실에 다시 평화가 찾아올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안이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옳고 그름은 외면한 채 나만 편하면 그만이라는 비겁하고 소극적인 태도. 정말 부끄럽게도 ‘영혼없는 공무원’ 그 자체였다. (118p) 

 

-내가 끝까지 안고 가면 결국 나의 뒤를 봐주갰다는 제안이었다. 김경동 주무관이 말한, 바로 그 ‘의리’와 밀맥상통하는 것이었다. 당장 멱살잡이를 해도 시원찮은데,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게 해준다는 말에 갑자기 설움이복받쳐 코끝이 시큰해졌다. (167p)

 

-어쨌거나 지금 내 뒤를 봐줄 사람이기에 그저 ‘의리’를 지키는 일 외에 다른 방법은 보이지 않았다. (169p)

 

-나는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바로 그 ‘의리’를 지켜야만 한다는 헛된 일념으로. (171p)

 

-대통령까지 나섰는데 설마 나 같은 말단 공무원 하나 조치하지 못한다면 말이 안되겠지? 그래. 얘들 생각도 해야지. 나만 좀 참으면 되는 거잖아. (237p)

 

이 밖에도 그가 충실하게 상관의 지시를 따른 일이 '증거인멸'이라는 범죄임을 깨달은 후에도 자신을 합리화하는 부분은 책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권력이 건넨 돈 5000만원을 전세금 상환에 써버리기도 한다. 

 

그는 '먹고사니즘'이라는 평범한 이유로 악을 행했다. 물론 그 악의 크나큰 실체-증거인멸을 계 한 이들, 지시한 이들-는 무죄를 선고받고 작은 악-증거인멸인줄도 모르고 증거를 인멸한 실무-이 큰 죄로 부풀려진 점은 억울한 점이긴 하다.

 

평범한 악, 비범한 선

보통의 눈에서 보면 평범한 악을 행했던 이가 민간인 불법 사찰의 증거인멸에 청와대까지 개입했다는 이 크나큰 범죄를 폭로하는 절대'선'을 행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평범한 악을 반성하는 동시에 두 딸아이의 아버지라는, 너무도 평범한 이유로 비범한 선을 행하게 된다.

 

검찰조사를 받는 도중, 그는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진실을 말하지 못한 그의 입은 담배만 피웠을 것이다.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열 시간 이상 끊임없이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도 고통스러웠다. 숨이 턱턱막혀 '의리'라는 걸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았지만...(182p)

 

이런 괴로움과 두 딸아이의 얼굴을 보며 그는 진실이라는 자유를 택하기로 마음 먹는다.

 

-말해도 죽고 말하지 않아도 죽는다고? 그럼 까짓것 말하고 죽어버리지 뭐! 마음 한편에서는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래도 진실이 나를 조금은 도와주지 않을까?' (261p)

 

그저 윗선을 따라 실무를 처리하던 '영혼없는 공무원'이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다.

 

이미 우리 사회엔 이러한 이들이 있어왔다.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던 한 변호사는 2007년 삼성 법무팀에서 내린 책임을 내던졌다. 그의 고백은 한국이 가지고 있었던 '삼성'이라는 기업의 굳건한 이미지에 균열을 냈다. 한번 생긴 균열이 커지는 것은 더디지만 점점 벌어진다. 같은 해 백혈병으로 딸을 잃은 한 택시기사는 친척들과 주변인들의 비난에도 삼성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이렇게 온 몸을 내던지는 '진짜 책임'들은 실무자로서 윗선의 명령을 따르는 '가짜 책임'의 평범한 악을 상쇄시킨다. 장진수 전 주무관의 고백은 굳건한 국정원과 청와대의 거짓과 그 거짓의 철통보안 속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이 균열은 현재진행형이다.

 

"과거의 죄를 단죄하지 않는 것은 미래 범죄에 용기를 불어넣는 일"이라고 알베르 카뮈는 말했다. 물론 큰 악은 국정원과 청와대등 '블루게이트 사건'을 공모하고 지시한 이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작은 악을 고백하고 성찰하는 장진수 전 주무관의 행동은 미래 범죄까지 단죄한 것이었다. 이 사실은 안 이상, 더 이상 미래 범죄에 용기를 불어넣어서는 안된다. 이 책을 읽고 널리 알릴 이유다. 

 

덧붙이는 말: 장진수 전 주무관의 경우, 언론을 통해 폭로를 했기때문에 현행 '공익제보신고자 보호법'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공익제보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의 허술함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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