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산, 아직 개봉은 안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는 누나 덕분에 시사회에 참석하여 볼수 있었는데요



영화는 제목그대로 레슬링선수로
일본열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사나이 역도산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입니다.



한마디로 제가 느낀 영화 '역도산'을  말하자면
역도산이란 인물이 가지고 있었던 복잡하고도 미묘한 내면세계를 2시간이라는 짧은 런닝타임안에
다 담으려다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되버린 느낌입니다.




역도산이라는 인물에 대해 '최고의 신사'와 '비열한 모사꾼'이라는
극과 극을 달리는 엇갈리는 평이 있다고는 해도 그것이 영화로 만들어질때는 감독 나름대로의
역도산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뒷받침되어 그쪽으로 이야기를 끌고나가야  되는거 아닌가 싶은데
이 영화는 양쪽에서서 우물쭈물하다 끝나버린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습니다.



시사회 후 열린 인터뷰에서 감독은 역도산이라는 인물이 가진
'매순간마다 치열해야만 했던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했지만
너무나 많은 이야기(역도산의 아내'아야'와의 사랑, 그와 늘 동행했던 매니져'칸노'의 우정,그리고 그를
알아보고 이끌어주었던'요시마치')를 담으려다 보니 그 치밀함 마져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느낌이구요. 



비교하지 않을수 없는 비슷한 류의 영화인 '바람의 파이터'에
비하면 격투신의 박력이나 긴장감도 덜하다고 생각되네요.
(이것은 링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특수한 기법을 최대한 사용하지 않으려했던
감독의 의도때문이겠지만 말입니다.)



P.S 아직 개봉도 안한 영화를 가지고 너무 안좋은 쪽으로 쓴것 같네요.
많이 기대했던 영화인 만큼..아쉬움이 컸기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설경구.라는 이름 석자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수 있는 작품입니다.
프로 선수들과 카메라 조작없이 원테이크로 찍었다는 경기장면은
실제 레슬링경기를 보고 있는 듯한 리얼감을 느낄수 있으며 인간 역도산이 가진 영웅의 환희와 단독자로서의고독을 동시에 표현하는 설경구의 연기는..역시 설경구다.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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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이잘코군 > 대학, 학벌 그리고 취업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서는 대학 4년동안 배운 바를 토대로 논문을 써서 제출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졸업과정이다. 그리고 이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경기침체, 취업률 하락과 관련해 취업을 위해서는 어차피 공부해야할 영어를 학사 학위 취득의 필수조건으로 논문 대신 걸고 있는 대학들이 많아졌다.

학과의 특성상, 논문을 내지 않더라도 작품발표나 실습보고 등으로도 졸업자격조건으로 내거는 것은 어색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오로지 졸업을 위해 영어점수만을 요구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잘못되었지 싶다. 취업안되고, 어차피 취업을 위해 공부해야할 영어를 학생들의 편의를 봐준다는 핑계로 대신한 것인데, 이는 대학의 설립이유에도 맞지 않는다.

대학은 학문을 하는 곳이다 라는 구태의연한 문구를 반복 사용하며 강조해야 하는 이유는 대학이 학문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는 대학의 전공교수님의 말은 이와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다.

"요즘 대학원생들은 대학원생 같지가 않아. 우리때는 말이야. 순전히 학문하겠다는 목적으로 대학원을 진학했는데, 요즘 대학원생들은 그저 어떻게 하면 취업 잘해볼까 하는 마음에 진학하는 거 같애. 오히려 대학원생들이 학부생들보다 더 공부안해"

취업이 중요하긴 하다. 자기자신의 생존의 문제가 달린 것이므로. 그래서 난 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고, 취업을 위해 학과공부보다 영어공부에 몰두하는 이들을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그렇게 만들어버린 우리사회가 문제있음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한국대학신문의 논설위원 김우종씨는 "한국형 학벌주의는 다음 세가지이다. 동문끼리만의 배타적 파벌주의, 그리고 수능고사 성적표가 만들어 내는 대학 서열주의, 그리고 학문적 지위에 의한 권위주의 등 세가지가 모두 학벌주의에 해당된다. 이 중 앞의 두 가지가 저지르는 횡포는 흔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세번째 학벌주의가 지니는 횡포에 대해서는 별로 눈여겨 보지 않는 것 같다." 라고 말하면서, 최근에 학벌을 지닌 이들이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에 있지 않고 자꾸만 그들보다 못한 학벌을 지닌 이들이 가져야 할 파이를 떼어먹고 있음을 지적한다.

예를 들자면, 예전같으면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은행창구업무를 맡았는데 요즘은 괜찮은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이 그 일을 하고 있고, 9급 공무원도 고졸출신들이 했는데 요즘은 4년제 대학 출신들이 가져가고 있으며, 심지어는 청소부를 모집하는데 박사출신들이 몰려들기도 한다.

공부한 사람들은 자신이 그만큼 공부한 것을 사회에 써먹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는데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먹을 파이를 가져간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예들은 모두 오로지 '취업'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다. 취업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취업하기 위해 석사를 따며, 박사를 딴다. 그리고는 자신의 학위와 상관없는 다른 일을 한다. 이는 국가적인 손실이다. 유능한 인재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현실은 확실히 잘못됐다.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이 역시 학벌주의에 있다. 은행 창구직원을 뽑는데 대학 출신이 오면 뽑지 말아야한다. 그리고 9급 공무원 뽑는데 대학 출신이 오면 뽑지 말아야 한다. 청소부하는데 박사가 오면 뽑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취업을 하기 위해 대학에 가고, 석사, 박사를 따는 현상이 벌어지지 않는다. 사회의 각 위치에서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을 뽑는다면 '학벌주의의 폭력'은 생기지 않는다. 지금의 현실은 모든 것이 학벌로 이뤄지는 사회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모두 대학갈 필요없다. 은행 창구직원 하려고 대학 갈 필요 없다. 창구직은 필요한 능력을 갖춘 상업고등학교 출신들에게 넘겨주자. 그리고 당신이 창구직원을 하고 싶거든 대학가지마라. 상업고등학교 나와라. 그리고 인재를 채용하는 권한을 가진 자들은 업무에 비해 과도한 능력을 가진 자를 오히려 서류전형에서 제외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서 쓸데없이 대학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4년동안 교수는 교수대로, 학생은 학생대로 서로 딴 짓을 하고 있으니 이 어찌 국가적인 낭비가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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