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이라는 책은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책이다.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지는 않더라도 제목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논술을 준비하는 청소년에게는 꼭 읽어봐야하는 도서 목록에는 언제나 들어가있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알게 된 것도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이런 이유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꼭 읽어보는 사람은 없고 나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이 책을 처음 보게 된 것은 재작년 군에서 휴가를 나왔을 때였다. 구미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이 책을 폈는데 서울에서 구미가는 약 3시간여동안 다 읽어버렸다. 대학에서 사회주의와 러시아혁명 그리고 트로츠키에 대해서 심취(?)했던 나에게 이 책은 정말로 신선한 충격이었다. 책의 분량도 길지 않고 내용도 간단하다. 농장에서 착취당하던 동물들이 농
장주인인 인간에게 저항해서 승리를 쟁취하고 난 후 농장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작가의 말대로 에피소드들은 실제 러시아 혁명의 역사적 사실로부터 따온 것이었기에 러시아에서 일어난 혁명과 반혁명을 나름대로 알기쉽게 풍자해서 그려내고 있다. 만약 내가 고등학교 때 이 책을 읽었으면 소련이라는 사회의 잘못됨에만 집중을 하면서 읽었을 것이고 나아가 사회주의와 혁명에 대한 거부감을 가졌을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이야기 하려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누구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어느정도 사회주의와 러시아혁명에 대한 배경지식을 가지지 못한채로 이 책을 읽게되면 왜곡 될수 밖에 없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현실이다. (그래서 나름대로 한 편의 책을 추천하고자 한다.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 이전 페이퍼에서도 쓴 적이 있는데 소설의 왜곡된 인식을 방지(?)하기 위해서 같이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조지오웰이 살았던 시대(1903~1950)은 현대 인류의 역사상 가장 중요하고 큰 의미를 가지는 시대이다. 전세계를 뒤 흔들었던 대공황과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두 번의 세계대전이 그 반세기에 다 일어났다. 자본주의 발전과 쇠퇴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요동이 발생한 것이고 이 시기 이후로 체제를 유지고자 하는 자와 변화시키고자 하는 자 모두에게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조지오웰은 이런 시대에서 활동을 했고 그의 작품은 이 시대를 최대한 반영하고자 노력한 결실이다. 그는 단지 작가가 아니라 현실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고 싸워나가는 혁명가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물농장], [1984],[카탈로니아 찬가]등의 작품에서 그의 이런 의지를 분명히 볼 수 있다. "내가 과거 10년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항상 당파의식, 즉 불의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했다......나는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하는 어떤 사실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쓴다."(조지오웰[코끼리를 쏘다]중 <나는 왜 쓰는가>) 이렇듯 그의 작품에서 정치적 배경과 지식을 배제하고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조지오웰은 가장 정치적인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그럼 그의 작품을 조금 더 보자.
[동물농장]의 감동을 가지고 바로 이어서 보게된 책이 [1984]이다. 그 휴가 복귀직전에 책방에 들러서 [1984]를 샀다. 그런 후 부대에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틈틈이 봤다. 군대라는 공간에서 봐서 그런지 아니면 군대라는 사회가 현실사회의 극단적인 축소판이어서 더 그랬는지 책장 한장한장을 넘길 때 마다 전율을 느꼈다. 이 책은 흔히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논쟁에 자주 이용되곤 한다. 하지만 단지 미래를 예측하고 썼다기엔 너무 현실감이 있지 않은가. Big Brother와 텔레스크린 그리고 골드스타인에 대한 '증오' 이런 소설 속의 소재들이 바로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우리가 평창에, 대구에, 여수에 국제적인 행사를 유치하기 위해서 하는 다른 국가들과의 경쟁은 책 속에서 시시각각 바뀌는 전쟁과 그로 인한 국가의 대중에 대한 압력과 연결된다.그 속에서 강조되는 민족주의의 모습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노동의 현장에 도입되는 대대적인 성과급과 회사살리기의 이데올로기는 각각의 노동자들을
경쟁하게 만들고 서로서로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만들고 있다. 단지 군대에서 봤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최대한 반영하고자 하는 작가의 정치적 노력이 나로 하여금 깊은 고민과 넓은 시야를 주었다. (이 책 이후에 디스토피아를 다룬 다른 소설을 보았다. 예브게니 자마찐의 [우리들]이라는 소설인데 [1984]에 큰 영향을 준 책이라고 해서 봤었다. 비슷한 부분이 많기도 하지만 결말의 차이에서 작가들의 생각을 좀더 깊게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또 기회가 되면 [대포도시]란 애니메이션도 추천하고 싶다. 전쟁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대중을 억압하는 수단이 되는지 잘 그리고 있다.)
조지오웰이 스페인에서 직접 프랑고 파시즘과 싸우면서 그 내용을 기록한 [카탈로니아 찬가]에서 우리는 당시의 전쟁과 내전에 대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알 수 있다. 제대를 하고 보게되었다. 전문적으로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역사수업을 제외하고는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접할 기회가 있는가? 거의 없는것이 사실이고 고등학교 수업이라고 해봤자 편협하게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한국사, 그리고 반공적인 세계사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이 현대사는 수능에 몇문제 나오지 않는다며 많이 가르쳐주지도 배우려하지도 않는 것이 현실아닌가? 이런 현실속에서 그나마 진실을 알 수 있게 하는 책이 이 [카탈로니아 찬가]이다. 내전은 단지 스페인 내부에서 자본과 혁명세력과의 싸움이지만 더 중요하게 봐야하는 것들도 있
다. 혁명세력들 이 패배하게 된 원인과 배경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당시의 코민테른과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정치적 입장과 혁명에 대한 전략,전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책의 한 쪽 밖에 보지 못할 것이다. (현실에서 혁명과 정치에 대한 글들을 찾는 것은 쉽지 안혹 전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다가가기도 힘들다. 하지만 좀더 조지오웰의 이 책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은 트로츠키의 [반파시즘 투쟁]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꼭 읽어야할 책은 [코끼리를 쏘다]이다. 이 책은 조지오웰의 산문집으로 위의 책들처럼 대중적으로 알려져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조지오웰의 정치사상과 예술에대한 견해 등을 보다 쉽게 알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 책을 먼저 읽고 위의 세편의 책을 읽어보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산문들에서 조지오웰 자신의 사상을 쉽게 접할 수 있고 이런 그의 사상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의 소설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장 반공주의적인 작가' 학교에서 사회에서 내가 조지오웰에 대해서 배운 지식이다. '[동물농장]은 대중을 억압하는 소련의 스탈린의 모습을 그렸고, [1984]는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의 감시와 통제를 그렸다.'라고 배웠다. 물론 이런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이렇게 스탈린 정권의 러시아를 그려낸 목적이 무엇인지는 한번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1939년까지 대다수의 영국사람들은 독일 나치 정권의 실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었고 오늘날의 소비에트 정권에 대해서도 여전히 과거와 똑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이것은 영국의 사회주의 운동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며 영국의 해외 정책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실, 러시아는 사회주의 국가이며 지도자들의 모든 행동은 우리가 그것을 모방하지 않는다면 용서될 수 있다는 믿음만큼 사회주의의 근본이념을 타락시키는 것도 없다. 그래서 나는 과거 10년 동안, 만약 우리가 사회주의 운동의 부활을 원한다면 소비에트 신화는 반드시 파괴해야 한다고 확신해 왔다...."(조지오웰 [동물농장]우크라이나 판 작가 서문 중에서)이렇듯 그는 자신의 정치와 사회주의를 위해서 글을 쓴 작가였고 투쟁한 혁명가였다. 우리 나라에 아직 조지오웰의 번역된 소설들과 글들이 많지 않아서 이정도 밖에 소개할 수 없지만 이 정도에서라도 그에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