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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배반한 역사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에게 박노자는 더 이상 낯선 이름이 아니다. 우선 그는 보통의 인간과는 좀 다르다. 구소련의 마지막 세대로서 유년기를 보내고, 부패한 러시아 정권과 여전히 국가병영체제를 갖추고 있는 남한 사회를 경험했으며 지금은 북구 사회민주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이러한 이력을 볼 때 의미는 없어 보인다. 이른바 세계 시민이다. 게다가 10년 정도의 학습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유려하고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천재성을 가지고 있으며(정말 불가사의하다.), 예리한 시선과 따뜻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휴머니스트이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부러워하는 푸른 눈과 금발의 잘 생긴 외모라는 비주얼적 상품성까지 갖추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이었을까? 이 책과 비슷한 부류들의 서적들이 쏟아져 나온 최근 몇 년간에도 별로 동요를 하지 않았던 나도 용케 박노자의 저작은 찾아 읽었다. 고종석이 <책읽기 책일기> 말미에서 '개인주의여 영원하라!' 라는 글을 보았을 때 나는 있을 만한 주장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리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아직 거대담론의 숲에서 헤쳐 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내가 개인주의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된 것은 분명 박노자 덕택이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이나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등에서 서술된 우리사회의 전근대성과 사대주의, 패거리문화, 폭력과 양심적 병역거부권 등의 문제는 나에게 있어서는 박노자 언어의 '발견'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발견하는 것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딴지일보의 김어준씨가 '박노자 씨의 말은 다 옳아요. 옳긴 한데 그 분 글을 읽으면 도무지 한국 땅에서 살기가 싫어지거든요.'라고 말했을 때 마음 속으로 응수했던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그가 항상 미안해 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살기 좋은 곳에 살다보니 자연스레 시선의 수준이 높아진 거 아닌가 하는 트집을 잡고 싶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박노자는 이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유행병이 우리가 저항을 못할 정도로 강력하게 습격해서 한국인들의 상당수가 감염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아직도 유행하고 있는 질환이라 완치가 어렵겠지만 우리의 몸도 많이 단련되었고 경험도 쌓였으니 이제부터라도 집중적으로 치료해보면 어떨까? 약간의 차도라도 보인다면, 건강한 상태의 우리 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이라도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큰 보탬이 되지 않을까? (p.23)'
그는 많은 것을 원하는 게 아니다. 우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깨닫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나'는 참으로 소중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전제한 뒤에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나'가 그 무엇의 수단이자 도구로 전락해 버린 지난 100여년의 역사를 그는 '나'를 배반한 역사라고 보고 있으며 그 본질은 제국주의 논리의 내면화에 있다고 진단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국민이라는 담론, 범아시아주의라는 새로운 인종주의, 개신교의 문제등의 각론에서 제국주의 논리가 어떻게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리 안에 이식되어 왔는지 분석한다. 그리고 비록 19세기 말의 개화파부터 박정희까지 이어지는 이러한 제국주의 논리의 내면화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개인이 동시대의 시대사적 조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합리화하는 것은 금물이다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여 자유와 평등을 지향하는 한용운, 조소앙, 나혜석 등의 선각자들로 인해 새로운 우리의 모습도 만들어 졌다고 말한다.
그도 제국주의적인 폭력이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시대에 우리의 이상이 온전히 실현되는 역사를 기대한다는 것은 과욕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국주의적인 폭력이 영원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또한 엄연한 사실이다. 따라서 언젠가는 극복될 이러한 제국주의적 국가주의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지난 근대사를 박노자와 함께 돌아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