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규방문화
허동화 지음 / 현암사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삼국지>의 부여전을 보면 사람들이 흰 옷을 즐겨 입었고 회(), 수(), 금(), 계()로 지은 옷을 입었다고 한다. 회는 무늬 없는 비단이고, 수는 옷감 위에 갖가지 빛깔로 수놓은 비단이며, 금은 일정한 무늬를 넣어 짠 비단이고, 계는 동물 털로 짠 모직물을 일컫는다. 부여 시대에 이미 비단에 수를 놓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의 사서를 보면 고구려인은 자라, 백라, 청라, 항라 같은 천으로 관모를 만들고 금과 수로 장식한 예복을 만들어 입었다고 적혀 있다. 또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고구려 궁인들이 공적인 자리에 갈 때 수놓은 비단옷을 입고 금과 은으로 장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 풍속을 그린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오월 초 길일에 소매통이 넓은 자줏빛 옷을 입고 푸른빛 바지에 금빛 나는 꽃과 새를 수놓은 갓을 쓰고 가죽띠에 가죽신을 신고 조회를 거행했다."

 

<삼국사기>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신라의 자수 문화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21대 소지왕 때 이미 "금수 색견을 민간에서 사용했다"고 되어 있으며, "650년 6월에 진덕여왕은 '태평송시'를 지어 손수 수놓아 조카인 김춘수의 아들 법민을 파견하여 당나라 고종에게 보냈다"는 기록도 있다.

 

(신라) 여자 아이는 자라면서 침선과 길쌈을 배웠다. 유리왕 때 6부의 여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각각 양편에 왕녀를 우두머리로 하여 길쌈 경합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7월 16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 달에 걸쳐 매일밤 10시까지 계속 길쌈을 했는데, 15,16세 처자들이 성년식을 겸하여 대회가 끝난 뒤에는 음주와 여흥이 뒤따랐다. 또 귀족사회에서는 여자도 승마하는 풍속이 있었으며, 밖에 나가 노동도 하고 외출에 구애받지 않았으며 남녀가 같이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자유로웠다.

 

일본의 <자수 연표> 2권을 보면 340년경 백제에서 자수 기술이 전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증거로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중궁사에 보존된 '천수국만다라수장'이 있다. 이 작품은 고구려인 가서일 등이 밑그림을 그렸다고 전해지는데, 등장인물의 복식이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인물의 복식과 똑같다.

 

(통일신라 시대에는) 자수 범위가 점차 넓어져 옷을 비롯해 가마, 부채, 생활용품까지 수놓아 치장하였다. 807년 의장왕 때 궁중연회를 묘사한 기록을 보면 악사가 사내금을 연주할 때 무용수는 청색 옷, 가야금 켜는 사람은 적색 옷을 입었고, 노래하는 사람은 그림이 그려진 옷을 입고 수놓은 부채를 손에 쥐고 있었다.

 

1023년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에 와서 보고 들은 풍물을 쓴 <고려도경>에 자수 장식을 한 의전용 물건에 관해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 있다. 한 예로 "스무 명의 친위병은 각 없는 용과 꽃 모양을 수놓은 부채와 손잡이가 구부러진 양산을 손에 들고 앞뒤에서 왕에게 몸을 구부려 따랐다. 의장용 부채의 종류로는 반리선 등이 있었다."고 적었는데, 반리선은 두 개의 홍색 라를 늘어뜨리고 중앙에 꿈틀거리는 교룡을 수놓은 것이었다. 교룡은 용과 비슷하나 비늘이 없고 뿔이 하나밖에 없는 상상의 동물이다.

 

(조선시대 허난설헌의 시 "가난한 여인")

어찌 용모인들 남에게 빠지리요

바느질 솜씨 역시 좋은데

가난한 집에 나서 자라난 탓에

중매할미 모두 몰라 준다오

 

밤새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는데

삐걱삐걱 베틀소리 차갑게 울리네

베틀에는 한필 베가 짜여졌는데

뉘 집 아씨 시집갈 때 옷감 되려나

 

손으로 쉬지 않고 가위질하면

추운 밤 열 손가락 곱아 오는데

남 위해 시집갈 옷 짜고 있건만

자기는 해마나 홀로 산다오

 

 

(조선시대에는) 궁중에 수방을 두어 열 살이 채 안 된 궁녀들을 뽑아 전문적으로 자수 기술을 익히게 했는데, 이들은 평생 수놓는 데 전념하므로 그 기술이 매우 뛰어났다.

 

궁수는 수방이나 관구 조직에 의해 훌륭한 기술과 시설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밑그림을 그려주는 전문 화공이 있었고, 어염집에서는 보기조차 어려운 금사와 은사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다. 또 염색을 전문으로 하는 장인까지 있어 빛깔이 청초하고 고운 실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좋은 조건에서 훌륭한 작품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pp. 20~3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