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몰운대행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101
황동규 / 문학과지성사 / 1991년 4월
평점 :
품절
삶의 이미지
오늘날 삶을 하나의 이미지로 바꾼다면 어떤 것일까?
큰눈에 주저앉은 비닐하우스일까,
마을 못 뜬 노인의 비틀거리는 경운기일까,
자동차 꽉 막힌 도로일까,
아니면 선암사 삼성각 앞에
연기하듯 누워 있는 소나무일까?
그도저도 아니라면
겨울 새벽 불켜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아파트 가까이
국민학교 날짐승 우리에서 그래도 울 때라고 우는
겁 없는 수탉일까?
풍장 18
깨어 있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피곤한 날 네 다리와 몸통을
지구 중심으로 잡아다니는 손
슬며시 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
(아 빠듯하다.)
후 불면 입김이 뜨는 것.
빗방울이 몸을 비벼 무지개로 피는 것.
한참 딴 데 보다 다시 보아도
사그라지지 않는 바람꽃.
풍장 28
내 마지막 길 떠날 때
모든 것 버리고 가도,
혀끝에 남은 물기까지 말리고 가도,
마지막으로 양 허파에 담았던 공기는
그냥 지니고 가리.
가슴 좀 갑갑하겠지만
그냥 담고 가리.
가다가 잠시 발목 주무르며 세상 뒤돌아볼 때
도시마다 사람들 가득 담겨 시시덕거리는 것 내려다보며
한번 웃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번 배 잡고 낄낄대기 위해
지니고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