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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의 노래 ㅣ 창비시선 101
고은 지음 / 창비 / 1992년 4월
평점 :
제삿날 밤
세살 때 죽은 아버지
기억도 없는데
자라나서
아버지의 모습 그대로 빼다박은 듯
변성기 지나
말소리도 빼다박은 듯
가을걷이 한창일 때
어디에도 게으름뱅이 없다
그런 부지런도 빼다박은 듯
아버지 제삿날 밤 처마 밑 등불 멀리까지 빛난다.
광주
광주항쟁 10년이 지나갔다
그동안 우리는
광주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다가 우리는
광주를 떠나
그것을 전혀 모르는 곳
광주 밖에서
아무리 광주를 노래해도
아무래 광주를 강조해도
그것을 거부하는 곳
광주 밖에서
이 시대가 무엇인가를 알았다
소주병 맥주병을 마구 던져
거리에는 유리조각이 빛나고 있다
우리는 이 시대가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인가를 겨우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