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아코디언 문학과지성 시인선 262
김명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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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익사

 

지상에 떨어져서 한 일이라곤

인간의 바다에 익사한 일밖에 달리 없는

그 운석(隕石)을 나도 알고 있는 듯하여

읽던 책을 덮고 해거름 저쪽을 바라본다.

구름 한 점 없이 하늘 너무 푸르러

서 있는 이곳이 바다 밑이 아닐까, 하는 착란!

 

닫아거는 어스름 저 위에 수면이 있다고

일렁이는 수막 사이로 어초마냥 가라앉은 아파트들,

방금 운석이 된 새떼들이 쏟아져내리는지,

가로수들이 잠투정하듯 가끔씩 나뭇잎을 흔든다.

남은 햇살이 그 수초 밭 우듬지에 잠깐 얹힌다.

 

무엇이든 다 맞춤한 때가 있어

지금 으름덩굴꽃철임을 부정하진 않지만

봄바람 시린 물살처럼 살 속 깊이 파고들면

떨리는 몸이 끝내 오한 든다.

천 번이라도 꽃피우고

만 번 더 솟구쳐오를 생각뿐이었다 하자.

쳐다보면 별자리 너무 아득하므로

나도 내 몸의 수위 아래로 이미 잠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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