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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별 아저씨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
정현종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5년 11월
평점 :
공중에 떠 있는 것들 1 : 돌
날아가던 돌이 문득 공중에 멈췄다.
공중에 떠 있다.
일설에는 그 돌이 정치적이라고 한다.
그 소리의 화석의 연대는 애매하다.
웃지 않는 운명만이 확실하다.
다만 철제 프로파갠더를 매일
독약처럼 조금씩 먹는다.
공중에 떠 있는 것들 2 : 나
내 몸이 자꾸 무거워지는 이유는
공포 때문이다.
나는 내 그림자로부터 도망친다.
떨리는 손으로 그림자를 떼어 버린다.
다른 그림자 때문이다.
그림자를 잃고 공중에 뜬 실체는 말한다.
나 내가 아니오.
나 내가 아니오.
공중에 떠 있는 것들 3 : 거울
뜻 깊은 움직임을 비추는 거울은
거의 깨지고 없다.
다만 커다란 거울 하나가 공중에 떠 있고
거울 윗쪽에 적혀 있는 말씀 --
축와선(祝臥禪), 낮을수록 복이 있나니.
거울 속에는 그리하여
누워 있는 자와 잠든 자, 혹은
죽은 자들만이 산다.
요새 자기의 모습을 보는 방식이다.
눈 감으면 고향이
눈 뜨면 타향.
공중에 떠 있는 것들 4 : 집
지붕마다 구멍이 뚫려 있다.
지붕 바깥으로 손 들기 위해서이다.
손 들고 있는 편안함!
비가 새니까 막으라는 겁니다 라고
스피커가 말한다.
청천하늘엔 별도나 많고.
연락선 같기도 하고 화물선 같기도 하며
초계정(哨
술잔을 들며 -한국, 내 사랑 나의 사슬
1
불행이 내게 와서
노래 부르라 말한다
피 흘리는 영혼 내게 와서
노래 부르라 말한다.
내 인생은 비어 있다, 나는
내 인생을 잃어 버렸다고 대답하자
고통이 내게 와서 말한다--
내 그대의 뿌리에 내려가
그대의 피가 되리니
내 별 아래 태어난 그대
내 피로 꽃 피우고 잎 피워
그 빛과 향기로 모든 것을 채우라.
2
우리들의 고통을 헤아려 보겠다고?
모래알을 헤아리면 된다
모래알 하나에서 우주를 본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수 많은 우주를 갖고 있다.
3
김씨 이씨네의 한 많은
두부찌게들이 보고 싶습니다
보면 먹지 않고
한없이 바라만 보겠습니다
고통의 별 아래 태어난 우리들,
한국을 사랑하는 것은
그 별빛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새의 날개를 만든 뒤
더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겨드랑이에서 눈물이 돋습니다
돋으면서
슬픔으로 날자 상처로 날자 외칩니다
4
꽃들 좀 피어나거라
지식 국화, 농부 진달래
학생 장미, 노동 패랭이
제값으로 피어나는 소리 좀 열려라
남도창, 정선 아리랑
천안 삼거리, 명동 블루스
부채춤, 강강수월래, 구고무(九鼓舞), 불놀이
북, 꽹과리, 가야금, 기타아......
이쁜 가슴 비벼 이는
푸른 빛의 메아리 속에
자유 있는 육체와 육체 있는 자유로
일과 춤을 섞고 사랑한다 말하며
농부들은 씨뿌리고
시인들은 노래하며
학자들은 생각하고
애인들은 사랑하는 땅
아 우리들의 명절이 있어야겠다
한국, 내 사랑 나의 가슴아!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여자의 감각을 감탄함
1
우주요?
배추 한 포기예요
세계?
콩나물 시루지요
(물과 물고기처럼 요지부동의 이 실제적 감각!)
물이 끓으면 나도 끓고
물이 얼면 나도 얼어요
2
네에 큰 거요,
아시나요 자질구레한 것들의 힘,
마음이 넘어지지 않으려면
꼭 맞는 구두를 신으세요
(물과 물고기처럼 요지부동의 이 실제적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