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미각 - 요리 연구가 장미성의 맛있는 런던 여행
장미성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품절


여행기 또는 미식여행기를 즐겨 읽는 내가 봤을 때 이 책은 매우 특이한 점이 있는 책이다.

 

여행기는 보통 저자가 여행하는 또는 현지에 체류하는 모습에 감정이입되어 대리체험 하는 기분으로 읽게 되는 건데 이 작가는 정말 특이하게도 책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 등 개인적인 이야기의 노출을 거의 (심리학적) 억압에 가깝게 배제해 마치 일기장의 군데군데를 손바닥으로 가린 채 보여주며 "이것만 봐, 이건 보지 마"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랄까, 리포터의 손과 발만 보여주는 TV 여행프로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대체 저자가 처한 상황이 한국에서 떠나 런던 여행길에 나선 것인지, 아니면 현지에서 공부하며 체류하는 동안 체험한 내용을 쓰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호해 마치 숨겨진 퍼즐을 풀듯 조각조각난 단서들과 프로필을 맞춰가며 어떤 상황인지 유추해야 하고 그나마도 확실하지 않다는 짜증스러운 상황들을 유발한다.

 

예를 들어 첫 꼭지의 리치먼드 여행기에서 저자는 대체 유학시절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프롤로그에서 밝힌대로 책을 발간하기에 앞서 사진들을 다시 찍기 위해 런던을 재방문했을 때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모호하고 뜬금없이 언급되는 동행자 '우리'는 대체 누구며 이 방문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독자는 철저히 배척되고 얼굴없는 자기들끼리만 "까르르" 웃고 즐기는 상황이라니... 겨우 일본인이 운영하는 제과점 하나 소개하기 위해 리치먼드를 소개한 것이면 이 제과점을 소개해준 일본인 친구와의 추억이나 이 제과점에 대해 저자가 느끼는 추억어린 개인적인 느낌 같은 것을 소개 해야 저자의 개인적인 의미부여가 독자들에게도 공감이 갈 텐데 그렇지도 않으면서 내가 왜 이렇게 가기 힘든 위치에 있는 제과점, 그것도 우리 동네에도 널린 일본풍의 제과점을 소개받아야 하는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그러니 글쓴이 혼자서만 감춰진 의미와 추억들을 음미하며 읽는 일기장 같다고 하는 것이고, 마치 "현지 사진을 찍어 오라"는 업무를 하달받은 회사 직원이 '회사 요구대로 사진은 다 찍었으니 업무는 다 끝났고 나는 개인적으로 즐기는 시간을 갖겠으니 내 프라이빗한 시간에 대해선 더 이상 터치하지 말라'고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다른 글들도 마찬가지로 유학시절 얘기와 책을 위해 다시 방문했을 때의 얘기가 섞여 있는 듯 한데 유학시절 얘기를 하려면 어떤 공부를 하러 어디로 갔고 어떤 집에서 체류하며 미식과 관련된 어떤 공부를 하며 짬짬이 미식기행에 나섰다는 식으로 써야 독자들도 그림이 그려질 게 아닌가 말이다.

 

이런 식의 숨바꼭질 같은 짜증스러운 책읽기가 계속 되다 무려 293쪽이 되어서야 어떻게 영국을 가게 됐는지가 소개된다. 하지만 미식기행과 관련있어 보이는 프로필상의 "Hospitality"라는 전공과 미식기행 사이에는 어떤 연결점도 언급되지 않은 채 책이 끝나고 만다. 그 전공 때문에 저자가 미식기행서를 쓰게 된 거고 출판사에서 출판한 게 아닌가??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의 미식기행서는 제법 나왔는데 반해 영국의 음식기행서는 이게 유일한 것 같아 기대를 하고 본 책이었는데 답답하고 짜증스러움에 어서 빨리 다른 영국 미식기행서가 나와 이 답답함을 헹궈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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