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 - 행복은 타인으로부터 온다!
세실 앤드류스 지음, 강정임 옮김 / 한빛비즈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무엇이 우리를 이토록 지나친 개인주의자들로 만든 것일까? 집단적 문화를 지극히도 강조하는 한국 사회는 집단의 정서가 주를 이룬다. 좋게 보면 단합력이 되지만 그 집단성이 가져오는 파급력 또한 어마무시하다. 국내에서 급격하게 발달된 통신기술 덕분에 한국인들은 국내 어디에서든 손쉬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런 의사소통은 더 이상 개인에서 개인에게로만 국한되지 않게 되었다. 개인을 넘어 집단에게로, 또 집단을 넘어 사회에게로. 하나의 생각, 이념들은 집단적인 가치가 되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존재로 남아있게 되었다.

예를 들어 축구경기를 볼 때 실수하는 수비수를 비난하고 골 넣는 공격수에게 찬사를 보내듯이 집단적인 민족성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가지고 있는 성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의 정도가 유독 심하다. 하나의 의견은 집단적인 추진력에 힘입어 거대한 칼날이 되어 누군가를 향해 드리워진다. 그 대상은 사실 그 칼날 자체가 되어 지기도 하며 이념에 맞지 않는 다른 정서들을 배척하며 몰아낸다. 이것이 현재 우리나라의 주를 이루고 있는 집단적인 특성이다. 끈끈한 단합력은 분명한 의기투합과 함께 협동심을 불러일으키지만 문제는 이것이 가져오는 폐해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러한 의기투합이 고위 권력층 인물들의 내부비리 혹은 부동산 경제를 담합하고 있는 약삭빠른 투기꾼들 같은 경우 불법적인 일의 도모에 강력한 단결력을 보이고, 그 불법을 까발리는 정의로운 인물들에게 내부고발자라는 낙인을 찍어 다시는 현장으로 돌아올 수 없도록 재기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버리기도 하는 경우이다. 그런 정의에 대한 보장도 온전치 못하며 권력형 비리에 침묵하고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로부터 우리 사회의 부조리는 어느덧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이것이 인간 본성의 탐욕인 경제적 욕구를 지닌 채 집단적 문화가 가져오는 고질적인 병폐이다. 심지어 그 안에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가들에 의해 능률적으로, 체계적으로 위계질서가 확립되어 있고, 그러한 영리만을 위한 질서는 집단 속의 개인들에게 강력한 스트레스의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 형태 또한 집단성이 가진 고질적인 특성 중 하나로써 사회에 집단혐오 증세를 만연하게 만들었다.

이 모든 문제의 시발은 어디일까? 개인적으로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무조건적으로 다녀와야 한다는 군대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전쟁 속 최고의 효율을 위해, 최상의 전투를 위해 모난 인물들을 틀에 맞추어 가두고 각 개인의 창의성과 특출함을 무시한 채 육체적인 하나의 건강한 병사라는 규격 안에 집어넣는다. 그러한 집단에서는 예술가도 철학자도 한낱 병사에 불과하게 된다. 이러한 각 개인의 창의성을 갉아먹는 군대조직 문화의 폐단은 그 조직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국내 인구의 절반이 경험을 해보았기에 당연히 일의 효율을, 능률을 중요시 하는 남성이 기업의 고위직을 차지해 일반적인 회사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 놓는다. 심지어 그러한 계급 체계와 질서는 창의적 인재를 길러내야 하는 학교의 문화에까지 그대로 적용되어 학생 개인의 자율을 단속하고 학생이라는 틀에 가두어 규정을 정해 그들의 자유를 억압한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시대착오적인 폭력이다. 더 이상 사회는 전시 사회가 아니며 또한 각각의 사회를 구분해 낼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결국 정복이 최고 가치가 되는 전쟁처럼, 이윤을 최고 가치로 여기는 신자유주의적 시장경제 마인드 또한 비참한 집단 문화를 존속시켜 나간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문화는 현재 한국 사회의 주축의 문화가 되어 모든 것을 가치화 시켜놓고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누군가를 짓밟고 있으며 우리는 그런 짓밟히는 자들의 목소리에 대해 스스로도 같은 처지라 여기며 묵인한다. 이렇듯 아직까지도 국내엔 잔인한 집단주의 문화가 만연해있고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숨통을 찾기 위해 욜로며, 소확행이며, mean이라는 슬로건을 앞세우며 살아간다. 얼마 전 <개인주의자 선언>이란 책도 크게 붐을 일으키고, 보노보노처럼 살자 등 오늘을 그냥 살아나가는 실존주의적 마인드에 대한 책이 유행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사료된다.


이토록 잔인한 집단주의적 문화에 대해 염세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던 나는 아직까지도 집단이라는 가치에 그리 관대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 <유쾌한 혁명을 작당하는 공동체 가이드북>이라는 책은 우리가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 인식과 이해관계에서 한 발짝 물러나 가볍고 진중한 형태로의 집단을 도모한다. 일에 치여 사람에 치여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도 결국 가장 큰 두려움은 외로움일 것이다. 그래서 <혼자 있고 싶은데 외로운 건 싫어>라는 제목의 책이 나오기도 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언급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결국 우리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싶고 인정받기를 갈망하며 대화하기를 원한다. 애초에 심리적인 교착상태가 전혀 없는 순수 그 자체로써의 관계인 셈이다. 나도 어릴 적엔 그런 관계들을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각각의 관계에는 이해관계가 얽히기 마련이고 묘한 감정들이 오고가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런 관계들이 온전하지 못한 관계라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만큼 순수한 관계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 저자 세실 앤드류스는 그런 순수한 공동체의 관계를 강하게 어필한다. 그리고 가이드북이라는 형태로 여러 가지 실천방안들을 들며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관계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이렇게 혼자서 목소리를 드높여 책을 내준 사실에 감사하다. 책이 제시하는 방법론적인 부분은 다양하지만 일일이 열거하진 않겠다. 그저 한마디로 그의 생각을 표현하자면 우리 삶의 행복을 이어주는 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불편함 없이 생각을 교류할 수 있는 편의적인 공동체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계산적인 집단에서 벗어나 가볍고 단순한 집단으로의 관계는 우리의 삶을 더욱 활기차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자유롭고 유쾌한 분위기의 대화모임이 형성되는 것에 대해 강력히 찬성한다.

사회엔 내성적인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성적인 사람이라기보다 착한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경쟁 사회 속 자신이 더 튀어 보이려고 남들의 말을 가로막는 이기적인, 자본사회에 걸맞는 인물들 때문에 말할 기회를 타인에게 양보하는 배려 넘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내성적이란 타이틀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줄여 나간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인물들이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지 친절히 알려준다. 혹시나 자신도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심히 자기이야기만 하지는 않았는지 반문해보면서 스스로 내성적이라고 여겼던 인물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어봤으면 한다.

그리고 점차 너도나도 대화의 힘을 실감한 채, 이해관계나 감정이 오가는 대화가 아니라 그냥 편안한 대화가 오고가는 관계의 힘을 깨달았을 때 사회는 그런 공동체에 대해 더욱 관대해지며 우리의 마음에도 조금의 여유가 찾아오지는 않을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읽힐 수도 있지만 결코 허황된 이야기는 아니다. 세상엔 아직도 세실 앤드류스나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처럼 이런 이상을 그리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고.

어떻게 그런 커뮤니티 속으로 한걸음 나아가는지 알기를 원한다면 이 책을 통해 배워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p 82
지루한 강의와 죄쵁감을 불러일으키는 시도들은 이제 진부하다. 그런 방법들은 우리의 행동을 많이 변화시키지 못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전환운동에서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이 공동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영화의 핵심 주제는 포괄주의였다. 그것은 원한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과 변화를 원한다면 서로에 대한 지지가 필요하다는 깨달음 그리고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진솔하게 대화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에 대한 이해였다.

p 117
경청은 대화의 핵심이다. 중요하거나 재치 있는 말을 해야 한다고 불안해하지 마라. 경청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임을 기억하라. 대화가 상대방과 내가 우주의 힘을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듣는 행위에 엄청난 의미가 생긴다.

p 195
무엇보다도 논쟁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논쟁에서 이기는 것보다 관걔를 맺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레이코프는 진보주의자들이 공정성, 정의, 감정이입, 평등의 가치를 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진보주의자들은 사람들이 공정하고 공감하는 사회에 살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시민들과 소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p 209
시민들이 참여하는 작은 모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실제로 그들만이 사회변화를 이끌어왔다.

p 321
사람들과 모여서 생각하고 대화하고 행동하면서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우리는 인간의 본성, 행복, 커뮤니티, 공유, 시민적 자질, 단순하게살기, 정치적인 문제 등을 공부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