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실린 문학작품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이남호 지음 / 현대문학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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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우리에게 '전과'라는 거창한 이름의 책이 등장했다. 생각해보면 '사전'과 '백과사전'의 조합일 것 같은, 사실은 그게 전부인 책이었다. 기차 모양의 수동 연필깎이와 함께 사주었던 그 전과. 자세히 얘기하면 동아 전과 혹은 표준 전과. 쌍두마차가 우리에게 있는 한 창의력은 가까이 할 수 없는 힘이었다. 세살 버릇은 여든까지 간다기에, 중,고등학교까지 버릇은 이어졌고, 수많은 참고서와 자습서(이 두책의 차이는 아직도 미묘하다)를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선물해 주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렇게 살아온 우리이고, 나도 그 우리 안에 갇혀 있었기에 선생님을 꿈꾼다는 것은 솔직히 무서웠다. 왠지 선생님은 참고서 이상의 그 무엇을 알아야 할, 아니 모든 것을 외우고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 환상은 낡은 책 한 권으로 깨졌지만.

 교사용 지도서.

 그들도 인간임을 나에게 인식시켜 주고, 선생님을 꿈꾸게 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 참고서와 별반 다를 것 없던 그 책은 과연 선생님들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을까. 아무튼 이런저런 걱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살아가다 이책을 접했다. 접한 경로는 웹서핑.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되기에 이책을 다 읽은 나는 너무 기뻤다.

 일단 제목에서 모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제목에 그치지 않고, '배우기에 적절한 작품인가.'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라는 다소 오만 방자한 말투로 책을 엮어 나간다.

 교과서에 수록된 17편의 시와 9편의 소설을 위의 세 질문으로 인수 분해하는데, 교과서를 성경처럼 받들어 모신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첫 질문부터 공격적이다. '배우기에 적절한가' 아니 누가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저자의 당돌함과 저돌성에 기립 박수를 치며 한장 한장 책장을 넘겼다.

 '성북동 비둘기'(김광섭)는 참신하지 못한 비유, '학마을 사람들'(이범선)은 소설이 갖추어야 할 플롯(plot)이 없다는 이유(왕이 죽고 왕비가 죽었다는 스토리, 왕이 죽자 그 슬픔에 못 이겨 왕비도 죽었다는 플롯이라고 한다. 현대 소설은 고대 소설과 달리 플롯을 중요하게 여긴다.) 등을 이렇게 반박하며 글을 펼쳐가는데, 실로 '충격과 공포' 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현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교수법을 내놓아 현실과의 타협도 시도한다.

 그리고, '님의 침묵'(한용운)은 화려한 비유와 유장한 리듬감을 지닌 절창, '울음이 타는 강'(박재삼)은 삶과 시에 대해서 소중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작품, '동백꽃'(김유정)은 순박한 농촌 소년과 소녀의 애정을 아름답게 그린 수작등이라고 평가하며 좋은 문학작품인데, 잘못된 참고서와 교사용 지도서로 제대로 가르쳐지지 못한다고, 진심 어린 충고를 해주기도 한다.

 저자는 참고서에 나와 있는 소재, 주제, 줄거리, 단락구분 등이 문학 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죽하면 참고서, 자습서가 없어져야 제대로 된 문학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을까. 잘못된 내용, 필요 없는 내용, 부정확한 문장, 지나치게 어려운 지식과 개념과 관용구의 나열 등 참고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해 나간다. 예를 든다면, 오지선다형 문제를 위해 글의 주제를 항상 거창하고 심각한 어휘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수식어와 명사의 나열로 이루어진 주제!

 박목월의 '나그네'를 많이 읽어보고 음미하기 전에, '자연과 어우러진 옛 정경의 아름다움'이라는 정해진 주제부터 배우니, 우리에게 더 이상의 작품 읽기는 없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문학 작품을 많이 읽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간과하고 있다. 교사들도 현행입시제도 때문에, 라는 이유로 읽기에 소홀한 것이 사실이다. 글 속에서 이렇게 주기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히며, 문학 교육의 혁신의 필요성을 조용히 외친다. 비록, 그것이 혼자만의 외침으로 끝날지 몰라도, 자신의 못소리가 어느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라 믿으며.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표지도 흑백사진, 각 작품의 첫장에도 작품에 걸맞은 흑백사진을 보여준다. 사진학과 교수의 전문적인 솜씨로 작품을 한 장의 사진으로 표현하려한 시도는 매우 참신하다. 아직도 흑백사진이 사랑받는 이유는 보는 사람의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채워넣기 때문이다. 저자의 의도가 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흑백사진으로 처리함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일깨워 줄려고 한 것이 아닐까.

 교과서의 문학작품은 흑백 작품이어야 한다. 푸른 청소년들의 색감으로 그들만의 색을 상상하여 자신만의 문학작품을 만드는 것. 그것이 문학을 배우는 올바른 방법이 되지 않을까. 이 책은 갈수록 컬러풀해지는 교과서, 참고서, 자습서를 질책하며, 문학 작품이 본래의 흑백사진으로 돌아가길 바라고 있다.

 영화보다 책을 먼저 읽는 것이 훨씬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 아직 우리는 상상을 필요로 하는 인간임을 그는 이 책을 통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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