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제대로 읽는 한국사 4 - 조선 후기 천천히 제대로 읽는 한국사 4
김도환 지음, 장선환 그림 / 한겨레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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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는 역동적인 사건이 많았던 시대인 것 같습니다.


병자호란과 붕당, 세도정치, 주변 열강의 침략 등으로 나라 대내외로 다사다난합니다.


조선 전기 개국의 패기와 역동성이 사라지고 후기로 갈수록 왕권이 약해져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왕조의 흥망성쇄는 어느 시대나 동일하구나하는 씁슬함이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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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제대로 읽는 한국사 4권에서는 병자호란에서부터 흥선대원군의 개혁정치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정조시대를 빼고는 살짝 답답함이 일었던 우리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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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세자때부터 불안감이 컸던 터라 왕이 되고 나서도 왕위를 지키는데만


정신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아홉살 된 영창대군을 강화도로 유배보냈다가 방에 불을 지펴 죽게 하고,


그의 어머니인 인목왕후도 왕후 자리에서 쫓아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던 신하들도


광해군에 반대하다가 쫓겨나 유배되었습니다.


이복동생 정원군의 셋째 아들 능창군에게 왕의 기운이 서려있다는 말에 광해군이 역모로 몰아 죽이자,


그의 형 능양군은 역모를 꾸며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릅니다. 그가 바로 인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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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가 반정을 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두 가지였는데 첫째는 어머니인 인목왕후를 쫓아냈고,


둘째 오랑캐인 후금과 친하게 지내려 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인조가 왕이 된 후, 조선과 후금의 관계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당시 조선을 꺼려하던 누르하치의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가 누르하치의 뒤를 이어


후금의 칸이 되자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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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전도의 굴욕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내었습니다.


왕의 뒤에서 고개 숙이거나 외면하는 신하들, 청나라 장군들의 거만한 표정과 그 뒤에서 여물을 먹는 말까지~


그림 하나하나 섬세하게 표현을 해놓았습니다. 이걸 보고 있자니 제가 더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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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 도표로 요약정리해놓아서 아이들이 한 눈에 보기 좋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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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때 사림 세력이 나뉘어 붕당이 생긴 이후 붕당은 서로 다투고 갈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처음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가 권력을 갖게 된 동인이 남인과 북인으로 나뉘고 북인은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나뉘었습니다.


훗날 서인도 권력을 갖게 되자 노론과 소론으로 나뉘었습니다.


참으로 복잡하죠? 전 역사를 좋아하지만 이 부분은 아직도 많이 헷갈려요.


현종 때의 예송논쟁과 숙종 때의 세 차례 환국은 조선을 성리학적 이상국가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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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당 사이의 다툼이 심해지자 영조는 탕평책을 시작했습니다.


탕평책이란 여러 붕당에 골고루 벼슬을 나누어주는 방식입니다. 이로 인해 차츰 붕당 사이의 다툼이 가라앉았지만,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게 됩니다. 왕권강화로 외척이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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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도 꽤 많은 비중을 다루고 있습니다.


예전 수원화성에서 보았던 뒤주도 떠올리고 영조-사도세자-정조로 이어지는 관계도 다시 집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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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연이은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농사지을 땅도 줄어든 상황에서도


조정은 여전히 권력다툼에만 정신이 팔려 전쟁피해를 복구하는 일은 뒷전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논농사에서는 모내기법으로 쌀 생산량을 크게 늘렸고 밭에서는 토양과 기후에 맞는 다양한 작물을 길러냈습니다.


백성들이 경제를 발전시키면서 한글소설과 만화, 판소리 등 자신들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조선후기 사회를 밑바닥부터 변화시켜 간 백성들의 움직임은 실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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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 왜란과 호란 등 전쟁으로 입은 피해가 차츰 회복되어 갔습니다.


백성들의 삶도 안정을 되찾으며 조선중화주의에서 생긴 문화적 자부심이 더해져


조선의 문화는 새로운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바로 서민문화의 발달인데요, 중인과 평민들이 만들어서


즐기던 문화를 말하며, 여기에 영향을 받은 양반들의 작품까지도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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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는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서민문화로 숙종과 영조 때쯤 생겨났습니다.


판소리의 이야기들은 듣는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으로 채워졌고 장마당 같은 곳에서 공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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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탕평정치는 붕당 사이의 다툼을 잠재우고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할아버지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는 탕평책을 이어가면서 외척의 힘을 줄여야 했고,


아버지 사도세자 문제도 해결해야 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청나라를 통해 유럽의 새로운 문물인


서학이 들어오면서 사회적으로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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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개혁 정치를 도표로 정리한 내용


정조의 업적을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정리되어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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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왕권을 강화한 뒤 자신의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일을 추진하기 시작했는데, 바로 수원화성 건설이 그것입니다.


정조는 사도세자를 왕으로 높이고자 했는데 영조의 유언때문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들이 태어나 왕위를 물려받는다면, 자신의 명령을 받아 사도세자를 왕으로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사도세자의 무덤을 왕릉처럼 만들어 놓으려 했습니다.


1789년에 경기도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무덤을 경기도 수원으로 옮겨 거의 왕릉과 같은 규모로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현릉원이라는 이름을 지어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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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륭원을 만든 이듬해에 정조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정조는 아들이 열다섯 살이 되면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상왕이 되어 현륭원이 있는 수원으로 내려가 장용영의 호위를 받으며 지낼 작정이었습니다.


그러면 현륭원과 아들을 보호하고 반대 세력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원대한 꿈은 실현되지 못했고, 다시 외척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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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마흔아홉 살 나이에 갑자기 죽음을 맞자 그 뒤를 이은 순조 때부터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습니다.


세도정치는 오직 외척 세력이 권력을 쥐고 제멋대로 정치를 했습니다.


순조 때부터 외척세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졌는데, 순조 이후 헌종, 철종에 이르기까지


60년 이상 계속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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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죽고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노론의 주도 아래 천주교인들을 탄압했습니다.


이 그림은 신유박해 때 천주교 순교자를 그린 그림으로, 딸이 관심있게 보더라구요.


작년에 세례를 받은 딸은 왜 천주교가 탄압을 받아야 했는지도 이것저것 물어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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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 시기에는 훌륭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벼슬에 나아가지 못했고, 관료가 되더라도 중요한 자리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이름난 실학자 가운데 정약용과 김정희가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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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 시기에 탐관오리들은 자기 뱃속을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사림 세력은 이미 힘이 약해져서


이를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참다못한 백성들은 전국 곳곳에서 민란을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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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왕이 된 철종은 세도정치의 틈바구니에서 무기력하게 지내다 14년만에 서른 세 살 나이로 죽고 말았습니다.


딸 하나만 두었을 뿐이었던 철종이기에, 후계자를 정하는 일은 복잡했습니다.


어렵게 후계자로 선택된 흥선군의 둘째 아들은 왕위에 올랐는데 바로 고종입니다.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군은 대원군의 지위에 올랐습니다.


조선 왕조에는 대원군이 몇 사람 있었지만 살아있는 대원군은 흥선대원군이 처음이었습니다.


책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세도정치의 뿌리를 뽑고 왕실의 권위를 세우고자 노력한 과정과


정채 개혁 내용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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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으로 구성된 천천히 제대로 읽는 한국사.


이제 근현대사만 남겨두고 있네요. 우리 역사를 순차적으로 읽게 되니 참 좋은 것 같아요.

 

5학년 딸 아이의 사회공부는 천천히 제대로 읽는 한국사가 다 지원해주는 느낌입니다.


딸이 좋아하는 근현대사도 기대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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