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ㅣ 생각하는 숲 27
박상률 지음, 윤미숙 그림 / 시공주니어 / 2021년 7월
평점 :
개밥상과 시인 아저씨
제목과 일러스트부터 서정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책입니다.
네, 맞아요. 읽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져요.
문학평론가인 박경장은
"흰 종이 위에 시와 이야기와 그림이 어우러져 달빛으로 눈빛으로 빛나는 작품"
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판타지 같은 현실 동화, 현실 같은 판타지 동화
이 책의 주된 줄거리는 시인 아저씨와 진도개 흰돌이가 오순도순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정말 특별할 게 없는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주는 울림이 상당합니다.
책을 보면 시인 아저씨와 흰돌이는 가족처럼 지냅니다. 한 밥상에서 같이 밥을 먹고 한방에서 함께 잡니다.
개를 사람처럼 대하는 사람들이 한 마디 할라치면 시인 아저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개는 내 보호자입니다."

박상률 작가는 1958년생이에요. 진도에서 태어난 작가는 실제로 진도개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책 속의 주인공과 진도개가 작가의 이야기로 겹쳐집니다.
또한, 일러스트가 잔잔하면서 따뜻한 글과 잘 어우러져요. 제가 책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도
바로 표지에 있는 그림때문이었거든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고, 장식품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싫증이 나지 않는
두 식구의 삶을 그대로 담아내었다.'는 평은 가장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시골에서 병든 몸으로 외롭게 시를 쓰며 살아가는 시인 아저씨에게 유일한 식구가 되어 준 진도개 흰돌이는,
아저씨와 생활하면서 시에 점점 눈을 떠갑니다. 책의 시점도 흰돌이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시인 아저씨는 자신의 시를 흰돌이에게 곧잘 들려줍니다.
그러면 흰돌이는 시를 들으며 시를 평가하기도 하고, 아저씨의 시에 대한 마음을 짐작하기도 합니다.
개가 사람의 시를 평가하다니.... 설정 자체가 재미있어요.
흰돌이가 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보는 재미가 정말 크답니다.

옆집에 사는 할머니는 유독 아저씨를 부를 때 '시인 아저씨'라고 부릅니다.
까막눈인 할머니의 마음 속에는 작가에 대한 존경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흰돌이 외에 집에 들러 아저씨를 넌지시 돌바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그런 할머니가 시인 아저씨가 선물로 준 시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요것이 시방 시라는 것이제? 꼭 부적 같구먼. 뭔 뜻이단가?"
"부적은 아니고요. 편안한 생각 하고 사시면 좋은 기운 얻게 된다는 그런 뜻이지요, 뭐."
"그라믄 부적이나 마찬가지네. 입춘 날 같은 때 문지방에 그려 붙이는 것도 다 그런 뜻이라던디."
까막눈인 할머니는 시인 아저씨에게 받은 시를 거꾸로 붙여놓고는 오는 사람마다 자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책에서는 시에 대한 정답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시는 장식품이 아니야. 아까 그 아주머니들처럼 무슨 고상한 취미로 여기고 쓰는 건
시가 아니란 말이야. "
어느 날 아저씨는 흰돌이에게 나뭇잎 시집을 완성한 후, 시 하나를 읽어줍니다.
사람 사는 일
짐승 사는 일
두 길 아니고 한길이네
나 죽으면 달빛으로 빛나고
너 죽으면 눈빛으로 빛나리
멋진 시지만, 흰돌이는 문득 불안감을 느낍니다. 아저씨의 몸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거든요.

결국 어느 밤 흰돌이의 곁에서 숨을 거둔 시인 아저씨.
흰돌이는 자신이 개인 것이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살아있을 때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세상 사람들이, 아저씨가 죽고 나서야 호들갑을 떠는 것도
원망스럽습니다.
이 장면에서 코끝이 찡해졌어요.

시인 아저씨의 병이 깊어지면서 먹지도 자지도 않았던 흰돌이도 건강이 악화된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아무 의욕도 없는 상태였지요. 그러다 잠깐 정신을 차렸을 때, 흰돌이의 눈앞에는 노랑이와 강아지
다섯 마리가 있었어요. 흰돌이와 노랑이 사이에서 새끼가 태어난 것이었지요.
이제 상에는 밥그릇 일곱 개가 놓이게 되었습니다. 흰돌이는 힘차게 젖을 빠는 강아지들을 보며
기운을 차리고 있었지요.
책을 읽고 있으면 흰돌이가 사람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른 책에서 읽었는데, 개는 자기 자신보다 주인을 더 좋아하는 유일한 생명체라고 하더군요.
흰돌이를 보며 그 말이 다시 한 번 떠올랐어요.
요즘 아이들에게도 일상의 잔잔한 글이 큰 감동이 되길 바라며 아들과 함께 읽었습니다.
아들이 다 읽고 나면 딸에게도 권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을 통해 '정중동'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만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