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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릅나무 아래 욕망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71
유진 오닐 지음, 손동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평점 :
요즘 비문학만 읽다가 소설 좀 읽어봐야지 싶어서 전자 책장을 뒤져봤다. 제목도 특이하고 얇아서 고른 책. 어라.. 펼쳐보니 희곡이었다. 희곡은 고딩 때 햄릿 이후 처음이라 어떨지.. 나름 기대됐다.
미국 농장의 한 가정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였는데 지긋지긋한 그곳을 떠나 캘리포니아에 가서 금광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첫째 부인의 두 아들, 죽은 둘째 부인의 아들로 농장과 집에서 어머니의 향수를 느끼며 사는 막내, 이른이 되었지만 농가와 집, 재산 욕심을 가지고 아직도 정정하신 아버지, 그리고 새롭게 등장하는 셋째 부인. 주된 내용은 물질에 대한 욕망이고 셋째 부인이 늙은 남자의 재산에 탐을 내며 집에 들어왔지만 막내에게 정욕을 느끼면서 이야기가 막장으로 이어졌다. 대화로 이루어진 내용이라 그런지 슥슥 읽히고 인물들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생동감 있어서 연극이 상상되기도.
이 책에서 재미있는 부분은 아들, 아버지 막론하고 어이없는 상황 발생하면 '하!'라고 외치는 거. 꽤 자주 등장해서 웃음이 나왔다.
책을 다 읽고 작가 연보를 보는데 노숙 생활, 노벨상, 퓰리처상보다 눈에 띄는 부분이 있었다. 유진 오닐이 1943년 55세 때 딸 우나가 18세의 나이로 54세의 찰리 채플린과 결혼하자 의절했다고 한다. 뜬금없이 찰리 채플린이 등장해서 신기했다.
인상 깊은 구절
에벤은 처음에는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다가 자신도 그녀의 목을 끌어안고 키스를 되돌려 준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에 대한 자신의 증오를 깨닫고 펄쩍 뛰면서 여자를 밀쳐 낸다. 그들은 두 마리의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며 말없이 서있다.
에비 (고통스럽게) 그러지 마, 에벤. 그래서는 안 돼.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건데!
애비 (애매하고 괴로운 웃음을 띠며) 뭐, 어쨌든 난 당신한테 키스했고 당신도 키스를 해왔어. 당신 입술은 불타고 있었고. 그건 부정 못 하겠지!(열렬히) 날 좋아하지 않는다면 왜 내 키스에 응했지? 왜 당신 입술이 뜨거워졌지?
에벤 (입을 닦으며) 입술에 독약이라도 닿는 것 같았어.(조롱하듯) 키스에 응했을 땐, 내가 아마 당신을 딴 여자로 착각했나 보네.
애비 (사납게) 미니?
에벤 그럴지도.
애비 (부드럽게) 그 애가 태어나기 전에는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믿었지?
에벤 그래. 멍청한 황소처럼!
애비 그럼 이젠 더 이상 믿지 않아?
에벤 거짓말쟁이 도둑을 믿으라니! 하!
에벤 (감정 없이) 시미언과 피터가 가진 농장 지분과 그 돈을 바꿨어요. 형들에게는 캘리포니아로 갈 여비가 필요했거든요.
캐벗 (냉소적으로) 하!
보안관 (부러운 듯 농장을 둘러보며 동료들에게) 참 멋진 농장이야. 정말로 내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막이 내린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