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과를 먹었는데 성을 인식한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이 사건은 신과 인간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이를 신의 뜻에 불복한 최초의 행위인 ‘원죄(原罪, original sin)‘라 부릅니다. 이 일로인해 두 사람은 낙원에서 추방됩니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일부 신비주의자들은 보다 상징적인해석을 제안합니다. 이면에 더 깊은 의미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선악과가 성적 차이는 물론 ‘이원성‘ 자체를알려준 사건으로 해석합니다. 성을 뜻하는 영어 단어 ‘Sex‘는분리를 뜻하는 라틴어 ‘sexus‘에서 유래했습니다. 남녀의 성은이원적 나님의 가장 뚜렷한 표식입니다. 두 사람은 열매를 먹은 후 성적 차이를 처음으로 인식한 사춘기 청소년과 유사한태도를 보여 줍니다. 성기를 가린 행위는 인간의 성이 부끄럽거나 악한 것이라기보다는 이원적 분리를 인식했음을 암시한다는 것이지요. - P241
선악과는 성을 필두로 한 인간 삶의 많은 이원성을 상징합니다. 이후 전개된 상황이 이 사실을 드러냅니다. 낙원에서의 추방은 신과 인간의 분리를 뜻합니다. 쫓겨난 아담은 노동을 해야 하지요. 과거에는 자연이 인간을 보살폈지만, 이제는힘겨운 노동이 필요합니다. 자연과 인간의 분리입니다. 이브의 출산은 부모와 자녀, 삶과 죽음이 나뉘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제 죽을 수밖에 없는 두 사람은 후손을 낳아 인류를 존속시킵니다. 선악과를 먹는 결과가 죽음이라고 신이 미리 경고했다는 것은 인간이 원래 불멸의 존재였음을 알려 줍니다. 그러니 생명의 나무는 애초부터 조심시킬 필요도 없었지요.
이처럼 선악과는 모든 이원적 분리의 상징이라는 해석입니다. 선은 악으로 인해 성립됩니다. 악이 없으면 선을 선이라 말할 수 없지요. 신/인간, 천상의 세계/물질적 세계, 남/여,
자연/인간, 부모/자식, 삶/죽음과 같은 이원적인 쌍들 역시 동일합니다.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정반대로 보이는 대립적인 쌍을 필요로 하는 것이지요. - P242
현대 사회에서 종교가 문제의 원인으로 드러나는 결정적인 이유가 이 대목에 있다고 봅니다. 문자주의와 근본주의에 충실할수록 자신의 경전 해석과 이해가 완결되었다고 화신합니다. 그래서 경전의 새로운 해석이나 이해를 거부합니다. 또 그런 굳건한 신념으로 자신과 타인의 종교를 단호하게평가합니다. 나아가 생각한 바를 행동으로 과감하게 실천하기 십상입니다. 현대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고려하지 않고,
경전의 문구대로 세상과 타인을 바꾸려는 것이지요. 앞서 살펴본 표층종교의 전형적인 특성입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즉, 사회도 표층적 종교가 목소리와 존재감을 키우니, 이를 종교의 전모라고 여깁니다. 표층 종교와 종교인이 곧 종교 자체가 되는 것이지요. 종교의 영향력과 권위가 현저하게 약해진 상황에서 표층종교가 종교의 전체 이미지를 강력하게 형성합니다. 이 모습에 실망한 이들은종교 비판에 그치지 않고 아예 종교를 떠납니다. - P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