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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 한강 소설
한강 지음, 차미혜 사진 / 난다 / 201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번에 몰아서 읽어야지 했던 한강의 책들.
그 와중에 이 책 <흰>을 별색에게 선물 받았다(완전 감동
>_<).
계획에 차질은 생겼지만 모순되게도 몹시 흥분하여,
이 책을 먼저 읽어두기로
했다.
그대 덕분에 정말 진심 기쁘게 잘 읽었다오! 고마와
;)
소설치고는 꽤 얉은 두께의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글자에 반짝반짝한 물결이 일
듯 너무나 곱게 느껴졌다.
뭐라 꼭 칭할 수 없는, 그저 소녀적, 국어 시간에 배운
은유가 담뿍 들어 글자의 미학이 전해지더라는 말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아주 아주 옛날 신경숙의 소설을 처음 읽고 받았던 찌르르한
전율이 내 안에서 비슷하게 파동치는 느낌이었다.
두번째 읽을 때는 소설 속의 '나' 그리고 '그녀'가
작가로서의 한강을 대변하는 것 같아 설렜다.
나와 그녀에게서 소설가로서의 투지가 보인다는 건 글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충분히 들뜰만한 일이니까.
특히나 한강이라는 사람은 아픈 편린을 세상에 드러내 그들에게
시선을 돌리게 만드는 작가이니 더욱 의미 깊다.
그러니 몇 가지 일이 그녀에게 남아
있다;
거짓말을 그만둘
것.
(눈을 뜨고) 장막을 걷을
것.
기억할 모든 죽음과 넋들에게-자신의 것을
포함해-초를 밝힐 것.
이러한 글이 이 작가의 사명감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흰> 소설의 매개체는 세상의
모든 '흰'이다.
저자는 세상의 흰 것들을 통해
존재하는 것과 영원한 것을 이야기한다.
책을 읽다보면 유물과 관념, 나와 남을 넘어선 영혼의 순례가
보이는데
읽다보면 하나에서 열을 이르는 길에 둘셋넷, 의 숫자가
하나씩 더해지듯 자연스럽게 어울려짐을 느낄 수 있다.
나의 존재가 그녀이고 그녀를 닮은 흰 것과 흰 것이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 세상 속에서 나는 살고 있다는 것.
문장을 읽다보면,
한강이라는 작가가 타고난 재능으로 하루 아침에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이 아닌
소설가로서의 자세와 소설을 풀어가는 방식을 오랜동안 공부하고
노력해 온 사람임이 전해진다.
(나 따위가 뭐라고 이런 평가를 감히
하겠냐마는)
소설 속의,
나는 어머니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
당시 스물세살이었던 어머니는 뱃속의 아기가 여덞달 되던 즈음
조산을 한다.
외딴 사택이었고 급작스런 산기였으나 어머니는 홀로 가위를
소독하고 무서움에 눈물을 떨구며 배내옷을 만들었다.
혼자 아기를 낳고 탯줄을 잘라 방금 만든 배내옷을 입히며
죽지마라 제발, 되풀이했으나
아기는 태어나고 두시간만에 죽었다. 그 아기가
그녀다.
나는 타지의 어느 흰 도시에 머물러 1945년 미군의 항공기가
촬영한 도시의 영상을 본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나치에 저항했던 이 도시는 히틀러에 의해
극단적으로 파괴되었다.
모든 건물이 무너지고 부서졌다. 검게 불에 탄 흔적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영상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오래전 성이 있었다는 공원에
다다른다.
그리고 깨닫는다. 이 도시에는 칠십 년 이상 된 것들은 존재하지 않음을,
복원된 모든 것은 가짜라는
것을.
그 날 처음으로 그녀를 생각한다.
이 도시와 같은 운명을 가진 사람. 한차례 죽었거나 파괴되었던
사람.
어떤 기둥, 어떤 늙은 석벽들의
아랫부분이 살아남아, 그 위에 덧쌓은 선명한 새것과 연결된 이상한 무늬를 가지게 된 사람.
그렇게 나는 그녀를 나로 부합시켰고
그녀와 비슷한 처지의 파멸된 이 세상을, 그녀의 눈으로
'희게' 바라보고자 한다.
당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나는 다르게
보았다.
당신의 몸으로 걸을 때 나는 다르게
걸었다.
나는 당신에게 깨끗한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잔혹함, 슬픔, 절망, 더러움, 고통보다 먼저, 당신에게만은 깨끗한 것을
먼저.
그러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종종 캄캄하고 깊은 거울 속에서 형상을
찾듯 당신의 눈을 들여다봤다.
그래. '흰 것'만을 보여주기에 현실은 많이
타락했다.
그녀에게 보내는 독백에 왠지, 그간 글로 저항해온
소설가로서의 고독이 보인다.
그러나 다행인건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
당신의 눈으로 흰 배춧속 가장 깊고 환한
곳, 가장 귀하게 숨겨진 어린 잎사귀를 볼 것이다.
낮에 뜬 반달의 서늘함을 볼
것이다.
언젠가 빙하를 볼 것이다.
각진 굴곡마다 푸르스름한 그늘이 진
거대한 얼음을,
생명이었던 적이 없어 더 신성한 생명처럼
느껴지는 그것을 올려다볼 것이다.
자작나무숲의 침묵 속에서 당신을 볼
것이다.
겨울 해가 드는 창의 정적 속에서 볼
것이다.
비스듬히 천장에 비춰진 광선을 따라
흔들리는, 빛나는 먼지 분말들 속에서 볼 것이다.
그 흰, 모든 흰 것들 속에서 당신이
마지막으로 내쉰 숨을 들이마실 것이다.
2009년에 발표한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을 읽은 기억이 있다.
그때가 한 오년전쯤인데 지금 작가는 명실상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저명한 인물이 되었다.
나를 비롯한 이 나라는 한강의 진가를 먼저 알아주지 못했고
뒤늦게 난리치기 시작했다.
이토록 꽤 자주 무지한 이 도시에서, 작가는 <흰>
책 속 그녀의 눈으로, '흰' 것을 향해 한발한발 걸어온 것은 아닐지.
우리가 모르는 사이 깨지고 넘어져도 글로 다시 일어섰던 성실한
작가는 수상 소감으로도 그 진가를 알 수 있는 담백함까지 갖췄다.
아마 이 시대의 수많은 작가가 그녀와 비슷한 행보이거나 더
고된 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단에 발은 디뎠으나 어떤 이유에서건 빛을 발하지 못할수록
고립감은 더 클테지.
한강의 수상 뒤로 우리나라 문학계의 어둠을 질타하는 글을 꽤
많이 읽었다.
출판사 뿐 아니라 베스트셀러의 책을 우선시하는 내게도 책임은
있다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왠지 더 깊이 반성하게 됐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보다 인기가 있으면 쉽게 출판이 되고
또 그게 잘 팔리는 기이한 세상.
좁디 좁은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나라의 작가에게 지금의
한강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