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중퇴전문 >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평점 :
선택의 상황에서 선택의 기회비용이 선택으로 인한 효용의 가능성보다 더 커보인다든지 아니면 선택의 실패 가능성과 향후 시나리오가 예전보다 더욱 절실하게 느껴질 때, 이제 확실히 어른이 되었다고 봐도 좋다. 물론 어떤 어른들은 여전히 청년과 같은 과감성 (혹은 무모함) 을 발휘하지만, 그런 비율 역시 연령 & 사회 생활의 연차와 대체로 반비례 곡선을 그리기 마련이다. 안정성은 변화의 가능성과 병립 불가능의 관계에 있고, 각기 다른 시간대와 환경에서의 안정성과도 반드시 일치하진 않는다. 더해지면 덜해지고 덜해지면 더해지는 것이 안정과 변화 간의 성질이라면, 미래의 안정을 위하여 현재의 안정을 보류하는 것이나 지금의 안정이 반드시 미래의 안정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 등등이 후자의 현상일 것. 양자 간의 균형을 찾으려는 행위는 인생의 전시기에서 지속적으로 일어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균형점은 안정 쪽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나이가 들수록 변화보단 현상유지를 선호하게 되는, 소위 사람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것은 현 시점에서의 조건들을 미래 상황에 대입하여 그 예상치를 면밀하게 비교해본 합리적 행위의 결과일 것이다.
인간의 이런 속성이 근대 한국 사회라는 특수한 조건을 만나면서 한국적인 현상들을 만들어 낸다. '넌 뭘 잘할 수 있니, 넌 뭐에 흥미가 있니' 라는 것이 아니라 '네가 어떤 직업을 가져야 갈수록 경제도 어려운 시국에 밥 굶지 않고 살 수 있겠니' 라는 질문이 일찍부터 던져지고, 이후의 인생에서도 창조성과 진취성과 미래에 대한 가능성보단 순응적인 지식 흡수와 당장의 즉물적인 보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간형으로 발전해 나간다. 나이가 들면서 보수화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그럴 틈도 없이 자라나면서부터 이미 안정지향적으로 길러지는 것. 당대에 그 학벌과 점수로 수의학과(!)를 가겠다는 자녀, 혹은 친척이 있었다면 십중팔구 만류했을 한국인들이 매스컴의 호들갑과 장미빛 돈벌이 전망 덕분에 동일한 인물에 대한 평가를 하루아침에 바꾼 사례가 문득 떠오른다. 황우석과 그의 연구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찬사를 보내고 있는 한국 사회의 보편적인 마인드 같아선 황우석과 같은 이가 오히려 나오기 힘들다는 의미.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보면 그 성취나 경력보단 그간의 심리적 요인과 배경이 더욱 궁금해진다. 인간의 속성과 한국 사회라는 조건까지 끄집어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설명과 예측의 틀 안으로 들어오는바, 그렇지 않은 인간들의 저러한 일탈은 과연 어떻게 이해되고 설명되어야 할 것인가. 이런 호기심 이전에, 저런 일탈자들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해당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로서도 좀 더 살만한 곳이 되지 않을까 싶다. 보수화되는 것이 당연한 '연세' 이전의 삶은 좀 불투명하고 불확실해야 하지 않을까. 비워야 채워넣을 수 있고, 그것이 성취로도 이어진다고 한비야가 보여주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