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생리가 시작되지 않고 있다.
2. 생리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특히 불규칙한 생리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이 현상과 관련된 경험을 알리고 싶다.
3. 생리는 한 달에 한 번 하지 않는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
나의 경우에는 특히나 생리 불순이 꽤 심한 편이어서, 나이를 먹으며 조금 안정되었다고는 해도 여전히 한 달에 한 번은 아니다.
그리고 주기가 꽤 정확한 여성이라 할지라도 ‘한 달에 한 번’이라고 세는 것은 사태를 축약하는 느낌이다. 규칙적인 생리란 약 28일마다 4~8일 정도 일어나는 현상이다.
말하자면 생리가 끝난 때로부터 20일만 있어도 다시 시작되는 경우가 정상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즉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리를 하는 여성은 가임기의 약 28.6% 가량 생리대를 차고 있을 수 있다.
4. 생리는 규칙적이라도 짜증나지만 불규칙적이면 더더욱 짜증난다.
‘왜~ 좀 건너 뛰면 좋은 거 아니야~~’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살의가 솟는다.
생리가 불규칙적이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불규칙적이라는 뜻이다.
‘아 이번 달에는 안 하고 다음 달 14일에 하겠네~’ 하고 미리 아는 경우는 전혀 없다.
이걸 못 당해본 사람은 별 거 아니라 생각하겠지만 나는 어쩌면 결혼식날 생리를 하게 될 수도 있고 손꼽아 기다리던 소풍날 생리를 하게 될 수도 있고 몰디브의 바다에 수영하러 가는 날에 생리를 하게 될 수도 있다.
19살 때는 수능시험날 생리가 터질 수도 있다고 봄부터 겁을 먹었었다. 그걸 예방하려면 주기적으로 피임약을 먹어야 한다. 19살인데.
차라리 날짜를 받아놓은 큰 시험들은 방비책이라도 있다지만 할아버지 장례식에 그러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건 어떻게 방비한담?
몇 시간이나 이어지는 회의 동안 화장실 한 번을 못가고 같은 자세로 앉아 끝없이 뭔가를 받아 적다가, 문득 밀려오는 고통과 쎄한 느낌 때문에 정신이 아찔해졌었다. 그런 느낌이 있다고 해도, 아닌 적이 있었으니까, 아닐 거라고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끝없이 되뇌는 것 말고 대처할 수 있는 기제가 전혀 없는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할머니네 집에 내려가서, 온 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자던 오밤중에 일이 터졌을 때 나는 16살이었다. 한번만 겪어도 마음에 상처를 입힐 사건들을, 나는 이미 여러 번 겪었고, 어쩌면 또 여러 번 더 겪어야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불규칙하니까.
중요한 이벤트의 어느 순간순간마다 예상 못한 피칠갑과 도무지 허리를 펼 수 없는 고통에 시달릴 수 있다는 사실은 사람을 평생 동안 위축시킨다. 그 어느 곳을 갈 때도 늘 가방 속에, 주머니 속에 생리대 1, 2개씩은 가지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은 덤이다. 급히 생리대를 꺼내려고 지퍼를 열었을 때 텅 빈 가방을 마주하면 느끼게 되는 당혹감도 덤.
5. 생리를 하거나 하지 않는 문제가 얼마나 잦게 여성의 건강을 위협하는지 생리를 안 해도 되는 사람들은 모른다. 예를 들어, 매일 소량의 생리혈만 나오다가 어느 달 펑펑 쏟아지면 깜짝 놀라게 된다. 또는, 늘 4일 정도만 생리기간이었던 사람이 8일간 생리를 하게 되면 가슴이 철렁하다. 한 번도 배란혈이 나오지 않았던 사람이 그것을 겪으면 이게 혹시 생리인가, 그렇다면 큰일인데, 2주 만에 하다니, 생리가 아니라 부정출혈인가, 무슨 병이라도 걸린 건가 잔뜩 긴장하게 된다. 두어번은 컨디션 탓이겠지 하는 생각으로 넘길 수 있지만 그런 일이 수회 반복되면 심각하게 병원에 방문할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방문에는 필연적으로 불안한 설명, 불쾌한 검사와 처치에 대한 스트레스가 수반된다.
이상현상을 동반하지 않는 생리라도 건강에 해가 되긴 마찬가지다. 주기가 돌아올 때마다 피부가 뒤집어지거나 소화불량에 시달리거나 생리통을 겪는 것은 익숙한 일이므로 차라리 낫다. 그러나 약한 피부가 일회용 생리대에 쓸려 짓무르고, 민감한 기관이 습기 차 있고 통풍 안 되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됨으로써 걸리게 되는 질염은 또 다른 문제다. 개인의 노력으로 어떻게 예방하기 어려운 질병이 나를 주기적으로 괴롭힌다. 그리고 그 문제가 터질 때마다 나는 꼭 병원에 가야 한다. 그냥도 모자란 휴식시간을 쪼개고, 불편한 몸을 며칠이나 참다가, 불편한 의자에 앉아 불편한 진료를 받기 위해 그토록 자주.
6. 며칠 전 평소의 1.1배정도 되는 생리통에 시달렸다. 데이트 도중이었다. 나는 보통 생리 첫날에 생리통을 겪는다. 생리가 시작되기 하루이틀 전에 겪는 사람도 있고, 생리 내내 생리통을 달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하여튼 나는 그렇다. 대충 이제쯤 할 수도 있다는 예상은 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다. 얼른 생리대 하나를 챙겨들고 화장실에 갔는데, 시작하지 않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이렇게 생리통이 심한데 왜 여태 소식이 없나 살짝 궁금했지만 어차피 한 두 시간 안에 벌어질 일이라 생각하고 생리대를 착용한 채 데이트를 계속 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난 지금, 생리는 여전히 시작되지 않고 있다. 심했던 생리통이 환상이었다는 것 마냥. 글쎄, 어쩌면 지금이라도 당장, 내일이나 모레라도 시작할지 모른다. 나는 그것을 방비하기 위해 내일 떠나는 연수에 잔뜩 생리대를 챙겨가야 한다. 어쩌면 연수를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생리가 시작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면 나는 이고 지고 갔던 생리대를 그대로 집에 가지고 와야 할 것이다. 생리통까지 잔뜩 앓게 해놓고 시작되지 않는 생리에 대해서 또다시 불안해하고,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면서 말이다. 다음 주에 건강검진이 예약되어 있다. 수 주 전에 정한 날짜다. 그러나 당장 생리가 시작되지 않는다면 그 날까지 생리가 끝나지 않는다. 나는 보통 8일 정도 생리중인 상태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생리 중에는 건강검진 항목 중 몇 가지가 제약된다. 나는 건강검진을 미뤄야 할 것이다. 이미 써둔 청원휴가를 취소해야 한다. 건강검진 다른 날 받으려고요, 팀장에게 보고해야 한다. 다른 날에 청원휴가를 다시 써야 한다. 그런데 그 미룬 날에도 생리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건 내가 모르는 일이다. 생리가 1회 불규칙한 경우에 이 정도의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이 일이 매달 발생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7. 생리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은 생리에 대해 잘 모른다. 성교육을 받고, 여자 형제와 자라고, 몇 번의 연애를 하면서 대강은 알 수도 있다. 그 불쾌함이나 고통 같은 직접적인 현상에 대해서는 또 몇 마디 말을 들어 학습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리를 한다는 자체로 나를 옥죄는 일상적 제약과 강렬한 스트레스, 투자해야하는 시간과 정신력에 대해서는 알기도 어렵고, 이해도 못하겠지...
8.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