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갔다가 귀가했더니 집에 아무도 없었다. 빈집에서 혼자 잘 놀고 있었는데 얼마 안 있다가 아빠가 허둥허둥 들어왔다. 아직도 해가 쨍쨍한 한낮이었고 아빠는 몹시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아빠, 아빠 왜 이렇게 일찍 퇴근했어? 왜 짐 챙겨? 하고 졸졸 쫓아다니면서 질문을 했는데 응, 응, 아니야, 하고 의미 없는 대답만 늘어놓으며 한동안 안방과 거실을 바쁘게 오가던 아빠는 한 10여분 만에 한 짐 챙겨가지고 집을 나섰다. 현관 앞에서 갑자기 생각난 것 처럼 내 쪽을 돌아보고, 엄마는 동생 낳으러 갔어, 곧 할머니가 올 테니까 잠깐 혼자 있어. 하고 말했다. 나는 원래 혼자 잘 있는 어린이여서 별로 당황은 안 했고, 동생이 태어난다는 것에 살짝 흥분을 느꼈다. 좀 신이 나서, 아빠가 나가고, 엘리베이터가 떠나는 소리까지 다 들은 다음에 “나도 이제 동생 있다!!”하고 괴성을 몇 번 질렀다. 당시 우리 옆집에는 노부부가 단 둘이 살고 있었는데 내가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기 때문에 동생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추후 전해왔다. 어쨌든 약간의 흥분 증세로 거실을 왔다갔다왔다갔다왔다갔다 거리고 있자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아빠가 다시 데리러 왔고, 차를 타고 동생을 만나러 갔다. 그 병원에서의 일은 단 한 장면만 선명히 기억이 난다. 엄마가 병실 침대에 혼자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7월 중순이었다. 조용하고 더웠다. 내가 엄마, 하고 부르자 이내 돌아보고 미소를 지었는데 나는 그 장면이 이상하게 잊혀지지 않는다. 그 때까지 나는 두려움을 모르고 살았으나 그 순간 아주 실존적인 공포가 굉장한 속도로 엄마와 내 사이를 가로질러 왔다. 흰 환자복과 벽들 사이에서 엄마는 보호색을 띤 것처럼 새하앴다. 그렇게까지 핏기가 없는 인간을 나는 처음 보았다. 사람이 극도로 하얗게 되면 무기물처럼 보인다. 석고나 대리석 같은 느낌이다. 나는 병실 입구에서 주춤거렸다. 내가 걸으면 바닥이 떨리고, 그러면 그 충격으로 엄마가 죽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엄마가 팔을 벌렸기 때문에 곧 천천히 다가가 엄마를 만져 보았는데 만진다기 보다는 그냥 사람인가 아닌가 혹은 죽었나 살았나 확인해보는 수준이었다. 3일 후에 엄마는 퇴원을 했고, 애기를 작은 바구니 같은 데 넣어가지고 데려왔다. 그때 애기는 아주 쪼그맣고 부드럽고 조용했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많이 우는 편이 아니다. 그 조그맣고 보드랍고 토실토실하고 정수리에 난 머리카락이 아주 얇고 간지러웠고 침을 많이 흘렸고 온몸에서 분유 냄새가 났고 하늘색 작은 이불을 썼고 엄마 머리카락을 꼭 붙들고 잤고 엄청 빠른 속도로 기어 다니다가 곧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고 낯을 잘 가렸어도 나한테는 곧잘 와서 안겼고 네잎 클로버를 찾아냈었고 풀밭에 쪼그려 앉기를 좋아했고 귀를 파주면 아주 겁에 질려서 꼼짝도 않고 누워있었고 찰리와 초콜릿 공장 얘기를 듣고 싶어 했고 문 뒤에 숨어서 울고 했던 애기는 지금 185cm의 거구가 되었으며 맨날 침대에 누워서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밤 아홉시쯤 되면 나가 놀고 새벽 세시에 들어온다. 어젯밤에 걔 씻는 소리 때문에 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