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술은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다. 정확히 정리하기만 하면 된다.˝ (P.100) 단편소설을 잘 읽지않는 이유는 어렵기 때문이었다. 집중하려는 순간 이야기가 끝난다. 듣고있던 음악이 중간에 끊긴 것처럼 어디서 감흥을 느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수록된 7편의 단편은 다행히(?) 재밌었다. 이미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초면이었고) 작가의 과외 덕분일지도. 단편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관한 책인 줄로만 알았는데 문학에 대한 생각들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여전히 단편소설과 낯가림을 하겠지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내적 거리감은 줄었다고 느낀다. 언젠간 단편의 매력을 알게 되겠지. 알고싶다 너의 매력..(여담인데, 톨스토이에 대해 몇 가지 알게 되었다. 19세기였음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보인 이중성과 계급의식, 여혐 등은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더 자세히 살피게 될 것 같다.)
초고가 좋든 말든 누가 상관하는가? 그건 좋을 필요가 없다. 그냥 있기만 하면 된다, 당신이 퇴고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는 이야기를 시작할 아이디어가 필요하지 않다. 그냥 하나의 문장이 필요할 뿐이다. - P185
일부 독자는 (톨스토이를 포함해서) <사랑스러운 사람>을 여자에 관한 이야기로 만들려 했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거나 이러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로, 남자에게서만 자신의 정체성을 끌어오는 굴종하는 여자의 유형에 관한 논평으로. 나는 이런한 관점이 이 단편의 가치를 평가 절하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은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어떤 경향, 사랑을 누군가와의 ‘완전한 소통 상태‘라기보다는 ‘완전한 흡수 상태‘라고 오해하는 경향에 관한 이야기다. 올렌카가 남자일 수도 있었을까? 물론이다. - P249
우리 마음으로 만드는 세계 외에 세계는 없으며, 마음의 성향이 우리가 보는 세계의 유형을 결정한다 - P443
인생에서 끔찍한 일은 어딘가 막후에서 벌어지니까. 모든 것은 평화롭고 고요하며 오직 말 없는 통계만이 이의를 제기하지요. 아주 많은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고 아주 많은 보드카를 마셨고 아주 많은 아이가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하지만 이런 상태는 분명히 불가피하지요. 당연한 얘기지만 행복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말없이 그들의 짐을 져주고 있어 편안한 거잖소. 이런 침묵이 없다면 행복은 불가능할 거요. - P503
살아 있는 것은 어렵다. 산다는 불안 때문에 우리는 판단하고, 확신하고, 입장을 가지고, 분명하게 결정하고 싶어 한다. 고정되고 엄격한 믿음의 체계를 갖는 것은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 P527
하지만 나는 동시에, 특히 나이가 들면서 우리가 기대를 낮추어야 한다고 믿는다. 소설이 하는 일을 과대평가하거나 지나치게 찬양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우리는 소설이 뭔가 특별한 일을 한다는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중략) 바꿔 말하면 우리가 가두 연단에 올라가 소설 찬가를 부르고 소설이 모든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지 설명할 때마다 우리는 사실 소설이 무엇이든 자기가 되고 싶은 것(변태적이고, 모순적이고, 경박하고, 불쾌하고, 쓸모없고, 소수를 제외한 누구도 읽기 어렵고 등등)이 될 자유를 제한하게 된다. - P599
˝모든 정치적 결정이란 이성적인 판단처럼 보여도 의사 결정권자의 인격이 강하게 영항을 미쳤다.˝ (P.504) 700 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에도 가독성이 좋아 금방 읽었다. 전개가 빠르고 어떤 장면들은 영상을 보는 것 같았는데 알고보니 작가가 영화 촬영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배경 중 하나가 콩고(분쟁지역)이다 보니 잔인한 장면 묘사가 제법 있어서 힘들었고 언젠가 읽었던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 생각났다. (르완다 대학살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사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던터라 읽고나서 한동안 멘붕이었다.) 다시한번 느끼지만 인간이 가장 잔인하다. 분량이 방대함에도 흔히 말하는 ‘떡밥회수‘는 충실히 된 것 같고 책의 내용처럼 인간에게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13계단‘을 재밌게 읽어서 기대감도 있었고 그걸 해치지 않을 정도의 재미도 있었다. 근데 정말 인간 어쩌면 좋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