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지평선 - 우리가 우주에 관해 아는 것들, 그리고 영원히 알 수 없는 것들
아메데오 발비 지음, 김현주 옮김, 황호성 감수 / 북인어박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물론, 이 지평선은 우주의 가장자리가 아니고 우주도 구형이 아니다. 지구의 지평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우주에서 우리의 위치를 변경할 수 있다면 지평선의 둘레도 변할 것이고, 우리는 우주의 다른 영역들을 보게 될 것이다.
(162-163 page)

그런데 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우주가 영원하지 않다면, 빛이 공간을 통해 이동할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가 우주 전체를 관측할 수는 없고, 한정된 영역만, 즉 빛이 우주가 시작된 때부터 현재까지 이동할 수 있었던 곳까지만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우주에 ‘지평선‘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동그란 정보의 거품 속에 갇혀 그 지평선 너머는 볼 수 없다. 거품 밖에 또 다른 우주가 있을 거라 추정되지만, 관측할 수가 없다. - P162

우주 지평선의 존재는 빛이 (혹은 기타 다른 신호) 공간을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제한이 있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빅뱅 모형에서 138억 년 이전으로는 거슬러 올라갈 수 없다. 반면,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우주라면 지평선이 없을 것이다. 이 우주에서는 매 순간 멀리 떨어져 있는 임의의 지역에서 오는 신호를 받을 수 있는데, 이 신호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시간 동안 이동해 우리에게 전달될 것이다. - P163

자주 인용되는 아인슈타인의 말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내가 상당한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신이 세상을 창조할 때 선택권이 있었는지다." 물론 아인슈타인은 은유적으로 신을 언급한 건데, 이 문장에 함축된 질문은 우주가 현재의 상태와 다를 수 있었는지를 묻는 것이다. - P230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을 동원하든 창조자에 관한 개념을 배제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주가 작용하는 기본이 되는 규칙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가 아니다. 발생하는 모든 것이 기본 입자의 무의미한 충돌이고, 우리의 존재 자체가 무작위의 차별성 없는 비인간적 체계의 우연한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어서다. - P284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은지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일관성 있고 증거로 뒷받침되는 우주의 역사를 가진 최초의 인류이니까. 어떤 면에서는 꿈꿀 수 있는 이상으로 우리는 운이 좋다. 우리 선조들이 타고난 호기심 때문에 불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한 이후로 수만 년 동안 쫓았던 것이 있다. 갈릴레오부터 아인슈타인에 이르기까지, 우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사람들도 그것을 본 적이 없다. - P2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은 왜 존재하는 걸까? 아무것도 없을 수는 없었을까? 현실의 궁극적인 실체는 무엇일까? 이건 보편적인 의문이다.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탄생에 관한 역사가 없는 문화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창조에 관한 역사는 다른 역사의 기초가 되고, 인간 공동체가 다른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렌즈의 역할을 한다.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이 역사들이다. 내가 만약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안다면, 내가 왜 존재하는지, 이 모든 것 속에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P27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문자 그대로 탄력적이고 변형 가능하다. 접히거나 압축되거나 평평하게 펼쳐질 수 있다. 이러한 변형이 일어나는 방식은 물질의 (그리고 에너지) 분포와 관련이 있다. 어떤 것이든 질량이 있는 물체 주위에서는, 공간과 시간이 변화한다. 거대한 물체에 다가갈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주변 공간은 구부러지는데, 그로 인해 예를 들어 빛 같은 것이 빈 공간을 지날때와는 다른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물질은 공간을 구부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자체도 휘어지게 하는 곡률에 영향을 받는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중력이라 부르는 것이 질량이 있는 물체 사이의 인력이 아니라, 질량 자체로 만들어진 공간의 기하학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 물체들이 멀리서 서로 당기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경사면을 따라 구르면서 만나는 것이다. - P47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더 중요한 점은 프리드만이 우주의 크기가 시간이 지나면 변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에서 아무 지점이나 두 지점을 선택하면, 이 두 지점 간 거리가 시간이 지나면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인데, 어디서든 같은 방식으로 공간이 팽창하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 두 지점을 선택하든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는 개념이었다. - P54

그러나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은 이러한 방정식들로 인해 상상할 수 있는 물리적 현실이었다. 과거에는 우주의 두 지점 간의 거리가 지금보다 짧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거리가 0이 되는 시점, 즉 팽창이 시작되는 때로 돌아갈 테고.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의 우주 모형은 우주가 시작이 있거나, 적어도 우주의 팽창이 과거의 어느 정확한 순간에 시작되었다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르메트르는 우주의 기원이 거대 원자의 붕괴와 유사한, 원시적인 거대한 에너지가 폭발한 어떤 사건과 관련되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 P58

그런데 사건의로서의 빅뱅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서 따옴표를 사용해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 프리드만-르메트르 모형을 사용해 극 초기 우주를 설명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문제에 다다른다. 우주 내의 두 지점 간의 거리가 0이 되는 정확한 순간에 멈춰야 한다. 바로 그 순간, 이때도 마찬가지로 프리드만-르메트르 모형에 따라, 우주의 밀도와 온도는 무한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물리학자들은 ‘특이점 (Singularity)이라 부르는데,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일반상대성이론의 개념이 모든 의미를 상실하는 문제적 조건에 노출된다. - P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하는 눈
노순택 지음 / 한밤의빛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찍혀 있는 사진을 읽는 여러 방법 중 하나는, 사진이 보여주는 걸 보되 그 사진이 감추고 있는 게 무엇인지 추리하는 것이다. 사진은 필연적으로 보여준다. 필연적으로 감춘다.
보여주는 동시에 감추는 사진의 이중성은, 사진을 보는 데 멈추지 말고 읽으라고 요구한다. 프레임 안에 갇히는 동시에 탈출도 모색하라고 속삭인다. - P23

사진은 가위질이다. 이어진 시간을 찰칵, 펼쳐진 공간을 싹둑 잘라낸다. 시간과 공간을 프레임 안에 가둔다.
의미는 바느질이다. - P47

사진 안에 선의가 있는가 없는가를 판가름할 잣대는 없다. 사진은 결국 콘텍스트(맥락)에 의존하는 텍스트일 뿐이고, 어느 맥락에 사진을 놓을 것인가, 어느 맥락으로 사진을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을 뿐이다. 사진은 결코 착한 매체일 수 없다. 어떤 ‘선의‘도 쉽게 ‘악의‘로 변질시킬 수 있고, ‘악의‘마저 ‘선의‘로 포장할 수 있는 교묘한 매체다. 선악의 판단 기준은 사진 그 자체가 아니라, 사진이 놓인 맥락일 수밖에 없다. - P92

한 번의 전쟁을 직접 치르는 것과 여러 번의 전쟁을 목도하는 것의 무게는 어떻게 다른가. 겪는 것과 보는 것의 감도와 무게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무게를 계량화할 수 있는가, 잴 수 있는 감도인가. 나는 내가 진 짐의 무게도 몰라 허우적대며 살아왔다. 다른 이가 진 짐의 무게를 가늠하려 더듬이를 세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가늠이라는 사실을 안다. 어려운 일이다. 타인이 진 고통의 무게를 잰다는 것은. 본 것이 쌓였다해서 겪은 것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더듬이가 부러진다. - P162

해마다 1월이면 나는 검붉게 타오르는 불 앞에 다시 선다. 이 불은 온기조차 없는 사진에 불과하지만, 가만히 바라보는 나를 그 때 그 자리로 끌고 간다. 만약 그 불기둥이 사람을 기름 삼아 타오르고 있음을 정확히 알았다면, 혹은 불타는 사람을 보았다면 사진기를 든 나는 무엇을 달리 행동했을까. 화염 속에서 죽을 줄 알았다면 철거민들은 망루를 세웠을까, 망루에 올랐을까. 대형 참사가 벌어질 줄 알았다면 공권력은 무모한 진압 작전을 전개했을까. 마피아처럼 악랄했던 건설 자본의 태도는 또 어땠을까. 애당초 망루는 파란색이었다. 그것이 사람과 함께 시뻘겋게 달아오를 줄, 시커멓게 숯이 될 줄 알았던 사람은 없었다. - P191

과거로 날아간 ‘만약‘의 질문에 답해야 하는 건 늘 현재다. 어떤가. 우리는 용산 참사로부터 10년만큼이라도 멀어졌는가, 자유로워졌는가. 망루의 불은 꺼졌지만, 망루에 불을 붙인 거대한 탐욕의 불도 함께 꺼졌나. - P192

사진을 믿는가.
사진은 있는 그대로를 다루되,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 P2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정학의 힘 - 시파워와 랜드파워의 세계사
김동기 지음 / 아카넷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한은 자신의 책에서 시파워를 결정짓는 여섯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지리적 위치, 천연자원 및 기후 등 물리적 환경, 영토의 크기, 인구, 국민성, 정부의 성격 등이 그 것이다. - P21

요컨대 마한은 해군 육성과 국가의 정치적, 경제적 운명을 결합했다. 미국의 생산이 확대되면 생산물의 교역이 필요하고 이어서 상품 운송을 위한 해운이 필요하며 그 해운을 확대하고 보호하기 위한 거점과 해군 기지로서 식민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한의 이론은 석탄, 철강, 제련, 중공업, 화학 등 새롭게 발전하는 근대 산업을 위한 전략을 당시 신흥 산업국가인 미국의 엘리트들에게 제공한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의 신흥 강국 및 일본의 지배층도 이 책에 열광했다. - P25

제 1차 세계대전은 독일이 슬라브 국가들을 복속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독일은 시장을 확대하고 원료와 경작지를 확보하기 위해 슬라브권 정복에 나섰다. 독일의 빠른 인구 증가도 큰 몫을 했다. 독일인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독일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활력 있는 민족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현재 무질서한 독일에 또 하나의 무자비한 조직이 등장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독일이 쉽게 부흥하지 못하리라고 예단하는 것은 경제적 흥망의 조건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생산력이며 독일은 그 잠재력을 갖고 있다. 독일에 징벌을 가하더라도 그 징벌은 오히려 독일인을 분발하게 할 뿐이다. - P65

국가라는 ‘공간 유기체‘는 토지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가의 성격은 그 영토의 성격과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공간 유기체인 국가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영토 확장을 통해 힘을 강화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바람직하다. 모든 국가는 이렇게 성장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쇠락하여 소멸할 수밖에 없다. 라첼은 다윈의 적자생존을 ‘공간을 위한 투쟁‘으로 해석했다. 라첼은 인구 증가 문제를 인식했지만 맬서스와 다른 결론에 이른다. 인구 증가는 국가의 활력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것이다. 토지 확보를 위한 팽창은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라첼은 해외 식민지를 확보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국가들 사이에는 지배하는 국가와 복종하는 국가만 존재한다. - P89

그는 중국이 아시아지중해 연안 해안의 상당 부분을 지배하는 큰 랜드파워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파워의 잠재력은 중국이 일본보다 훨씬 크며 유라시아 대륙 앞바다의 작은 섬인 패전국 일본은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근대화와 군사화를 이룬 4억의 인구수를 가진 중국은 일본뿐 아니라 미국에게도 위협이 된다. 중국은 아시아지중해 연안에서 내해까지 광범위하게 지배하는 대륙 크기의 국가가 된다. - P128

중국이 경제적으로 강해지면 정치적 영향력도 커진다. 그리고 이 해역이 영국, 미국, 일본의 시파워가 아니라 중국의 에어파워에 의해 지배되게 되는 날이 올 수 있다. 그래서 전후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일본이 아니라 오히려 중국이 될 것이라고 통찰했다. - P129

지정학은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였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현실적 국익이었다. 우리가 지정학에서 얻어야 할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정작 강대국들은 현실적 이익을 위해 전략을 구사하는데 왜 한반도는 현실적 이익이 아닌 이념적 반목과 역사적 질곡에 갇혀 있는가? 이제는 한반도도 냉철하게 한반도에게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가를 인식하고, 그 이익을 위해 남북한이 관계를 맺고, 나아가 다른 국가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 P33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학의 위로 - 점과 선으로 헤아려본 상실의 조각들
마이클 프레임 지음, 이한음 옮김 / 디플롯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감은 남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아는 문제가 아니다. 공감은 자신이 남의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느낄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다. - P89

우리는 남의 지옥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 남의 상황에 처한다면 자신이 어떤 지옥에 빠질지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비탄을 사려 깊게 생각하고 이야기하고 쓸 수 있는 방법이다. 공감이 없다면, 비탄은 우리 자신의 머리 안에 갇히게 된다. 또 계속 비탄에 잠긴 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머리가 비탄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 P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