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왜 존재하는 걸까? 아무것도 없을 수는 없었을까? 현실의 궁극적인 실체는 무엇일까? 이건 보편적인 의문이다.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탄생에 관한 역사가 없는 문화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창조에 관한 역사는 다른 역사의 기초가 되고, 인간 공동체가 다른 모든 것을 들여다보는 렌즈의 역할을 한다.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이 역사들이다. 내가 만약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를 안다면, 내가 왜 존재하는지, 이 모든 것 속에서 내 위치가 어디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 P27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공간과 시간은 문자 그대로 탄력적이고 변형 가능하다. 접히거나 압축되거나 평평하게 펼쳐질 수 있다. 이러한 변형이 일어나는 방식은 물질의 (그리고 에너지) 분포와 관련이 있다. 어떤 것이든 질량이 있는 물체 주위에서는, 공간과 시간이 변화한다. 거대한 물체에 다가갈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주변 공간은 구부러지는데, 그로 인해 예를 들어 빛 같은 것이 빈 공간을 지날때와는 다른 궤적을 따라 움직인다. 물질은 공간을 구부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자체도 휘어지게 하는 곡률에 영향을 받는다. 사실 아인슈타인은 우리가 중력이라 부르는 것이 질량이 있는 물체 사이의 인력이 아니라, 질량 자체로 만들어진 공간의 기하학적 표현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뉴턴이 생각했던 것처럼 물체들이 멀리서 서로 당기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저절로 만들어진 경사면을 따라 구르면서 만나는 것이다. - P47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더 중요한 점은 프리드만이 우주의 크기가 시간이 지나면 변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 부분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주에서 아무 지점이나 두 지점을 선택하면, 이 두 지점 간 거리가 시간이 지나면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인데, 어디서든 같은 방식으로 공간이 팽창하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 두 지점을 선택하든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온다는 개념이었다. - P54
그러나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은 이러한 방정식들로 인해 상상할 수 있는 물리적 현실이었다. 과거에는 우주의 두 지점 간의 거리가 지금보다 짧았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거리가 0이 되는 시점, 즉 팽창이 시작되는 때로 돌아갈 테고. 프리드만과 르메트르의 우주 모형은 우주가 시작이 있거나, 적어도 우주의 팽창이 과거의 어느 정확한 순간에 시작되었다고 암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르메트르는 우주의 기원이 거대 원자의 붕괴와 유사한, 원시적인 거대한 에너지가 폭발한 어떤 사건과 관련되었을 수 있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 P58
그런데 사건의로서의 빅뱅은 완전히 다른 것이라서 따옴표를 사용해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간단히 말해, 프리드만-르메트르 모형을 사용해 극 초기 우주를 설명하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문제에 다다른다. 우주 내의 두 지점 간의 거리가 0이 되는 정확한 순간에 멈춰야 한다. 바로 그 순간, 이때도 마찬가지로 프리드만-르메트르 모형에 따라, 우주의 밀도와 온도는 무한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물리학자들은 ‘특이점 (Singularity)이라 부르는데, 공간과 시간에 대한 일반상대성이론의 개념이 모든 의미를 상실하는 문제적 조건에 노출된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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