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세계에서 이 눈물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김윤경 옮김 / 모모 / 2022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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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첫 페이지를 넘기자 들었던 생각은 모호함이었습니다. 분명 수많은 벚꽃잎이 페이지 전체에 가득했지만 흔히 떠오르는 그 색이 아닌 주황색에 더 가까웠고, 이 색은 어쩐지 해가 질 때의 색상이 담겨도 있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각기 다른 색 표현의 의미를 시각화한 것도 같았으며, 이는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표현을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고, 전작의 주역들이 이번에는 어떤 표현으로 그 차이를 보여줄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인물이 아닌 전혀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며 그 사람의 감정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때로는 혼자서 끙끙거리며 서투르게 감정을 추측하기도 했지만, 어딘지 풋풋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그 역시 표현력이 뛰어났던 것 같습니다. 전작에서는 두 인물이 하던 표현들이 전부 그에게서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빛을 표현하는 것도, 시간 경과를 이야기하는 것까지 그가 전부 해냄으로써 훨씬 다채롭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익숙했던 인물이 나타났지만, 그녀는 어딘지 과거에 머무르며, 자신의 색을 표현하던 모습을 완전히 잃은 상태로 보였습니다. 더 이상 크게 감정 동요를 일으키지 않을 것 같았으며, 표현하지 않음으로 과거를 회상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그녀는 억지로라도 아픈 기억을, 행복했지만 슬픔이 되어버린 상황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잊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의도적인 절제처럼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등장한 전작의 주인공 마오리는 여전히 태양을, 햇살을 표현했으며, 늘 공백이 뒤따르는 마무리를 보였습니다. 말을 모두 끝맺지 못하고 연속되는 마침표가 이어지며, 그녀가 품고 있는 기억의 공백 같기도 하면서, 그녀 자체를 너무나 닮아 있는듯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녀의 변화가, 아무런 색을 내지 못하는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이, 아무런 색도 없는 듯한 감정을 품고 있는 듯한 그녀가, 모든 표현을 숨기는 듯한 그녀가 더욱더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이번에는 글자, 문자, 그들의 표현 자체가 각각의 인물들과 닮아있음을 더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자세하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크게 와닿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눈물샘을 자극하던, 뻔하지만 먹히는 이야기는 더 이상 없었으며, 훈훈한 느낌을 물씬 풍겼습니다.

이는 전작에서 죽음에 대해, 그들의 사랑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과는 다르게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진득하게 풀어내며 그들의 또 다른 이야기를, 더 자세한 내막과 상황을 지켜봄으로써 기억이란 자연스러운 것임을 피력했기에 나타나는 평범함이 보이는 특징 같았습니다.

전작에서는 자연스러운 떠올림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번에는 자연스러운 망각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망각이라는 단어가 주는 분위기가 그런 감정을 이끌어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주변 풍경과 색상의 표현보다는 감정 그 자체를 담아냈기에 다소 딱딱하고 차가운 분위기가 풍겼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 차가움은 또 다른 도루에게 이어지며 온기를 찾고 열정을 갖추며, 버드나무 잎처럼 바람에 흔들리던 그를, 어딘가 목표가 불분명하고 약하던 그를, 풍경과 주변 환경을 어설프게 말하던 그를 단단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아마 그는 이전보다 더욱 풍부한 표현을 할 수 있게 됐을 것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녀 역시 이전처럼, 아니 이전보다 더 많은 표현을 할 것입니다. 표현되지 않았음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럴 것이라고 말입니다.

솔직히 기대를 많이 했고, 실망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확연히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다름을 느낄 수 있었고, 변화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아쉬웠습니다. 스핀 오프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했고, 전작의 감정을 충분히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뒤집었기 때문에 기대했던 감정이 아닌 다른 감정이 나옴으로써 실망할 수밖에 없던 것 같습니다.


아쉬운 점

  • 전작의 설정들이 그대로 이어져 오면서, 역시나 가장 흔한 소재들을 이용합니다.

익숙했던 기억상실, 죽음을 뒤로 같은 이름을 통해 내용을 강조했기에, 식상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눈물을 많이 흘릴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어딘지 훈훈함을 남겨놓았습니다.

전작만큼 감정적으로 요동쳤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눈물을 기대하던 독자들에게는 크나큰 실망으로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 처음부터 두 권이 합쳐져 한 권인 듯,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지만 그마저도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관점에서 그들을 이야기함으로써 진정한 마무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아마 너무나 질질 끈다고 생각하며, 더욱 실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총 평

전작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기에는 표현이 되는 대상이 달라져 차이가 느껴졌습니다. 풍경과 빛, 색상 등을 담아내던 것과 다르게 감정을 다루는듯하여 전반적인 목소리를 내는 그녀처럼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 의도적으로 표현되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다만, 일어나는 사건들이 또다시 너무나 평범하고 익숙함의 연속이었으며, 이전에는 그런 것들을 통해 눈물샘을 자극하던 것과 다르게 그 어떤 자극도 없어 지극히 평범하고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전작을 돋보이기 위한 '서비스' 같은 도서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스핀 오프라고 당당히 이야기했고, 전작의 감정이 고스란히 이어질 것처럼 했기 때문에, 이 도서의 새로움을 전부 폄하하는 결과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평점

★ 5개 만점


★★☆ (주제 5 구성 5 재미 6 재독성 5 표현력 8 가독성 6 평균 5.8)


자연스러운 망각에 대한 이야기가 뻔한 사건들로만 표현되자 그저 평범한 도서가 되어버렸다.


상세 내용 :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148970697


감상자(鑑賞者)

0은 무슨 수를 곱해도 1이 되지 않는다. 0과 1 사이에는 무환과도 닮은 거리가 놓여 있다.
단순히 지나가는 사람이나 배경의 일부로서 0으로 끝나고 마는 경우도 많다. 호들갑일지는 모르지만 나와 와타야 선배 사이에는 1이 있었다.
나는 그 1을 소중히 여겼다. 소중히 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 P26

"그 남자애는 마지막에 어떻게 되는데?"
이즈미가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더니, 마침내 눈동자 깊은 곳에서 슬픔이 배어 나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갑자기, 없어져." - P111

그리고 내가 나의 시간과 인식을 현재에 맞춰나가는 동안 이즈미도 나와 함께 앞으로 나아가며 자신의 시간을 맞춰갔다. 그리고 이제 내 앞에서 지금의 화장과 옷차림을 하게 되었다. - P122

부드러운 황혼빛이 가득한 하늘을 배경으로 선 도루가 내게 얼굴을 돌렸다. - P147

말이란 항상 불확실하고, 과하거나 부족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전달하기 어렵다.
애매한 암호이며 감정의 조각이다. - P188

나는 그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제야 비로소, 그건 단순히 내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한 행동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제 와 사과해봤자 그에게 마음만 더 쓰게 할 뿐이다. 그렇다면 미안한 마음을 짊어지고서 살아가는 것이 내 임무일지 모른다. 쉽게 편해져서는 안 된다. - P220

무언가의 시작은 무언가의 끝이기도 했다. - P272

울어도 소용없다는 건 알고 있다. 세상은 언제나 제멋대로 주고 제멋대로 빼앗아 간다.
사이좋았던 부모님도, 첫사랑도, 사람의 목숨마저도.
운다고 되돌아오지 않는다. 의미가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기에 그저 우는 거다. - P285

그건 분명히 있으니까.
있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저 인정하면 된다. 그대로 소중히 여기면 된다. - P299

그런 일들을 모두 감싸 안고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갔다. 모든 것을 과거로 남겨두고.
아무도 시간을 멈추지 못하고 망각에 저항할 수도 없다.
그래도 사람은······, 무언가를 계속 이어나간다. 소중한 것은, 결코 잊지 못한다. - P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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