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감상

건조함과 팍팍함이 있는 문체로 시작하는 이야기들에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주변을 분위기나 풍경을 표현할 때였습니다.

표현의 대상이 인물이 아닌 풍경이나 장소들이 될 때 다채로움과 생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아마도 주인공의 마음이 그랬을 것이며, 저자는 그곳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자가 주변의 모든 것에는 무관심하지만, 자신이 살고 있는 배경만큼은 좋아하는 모습을 주인공에 투영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무관심은 배경이 되는 학교에서 시작됐고, 그는 그 상태로 반의 친구들을 줄줄이 소개합니다.

길게 작성된 소개 표현이 이어지지만 기억에 남을 어떠한 특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독 한 명, 전학을 온 콘라딘은 달랐습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짧았지만 강렬했고 풍성한 묘사였습니다. 아마도 강렬한 기억이나 경험을 느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는 미화됐을지도 모릅니다. 누구보다 현실적이며, 모든 것을 무미건조하게 바라보는 듯한 주인공 한스는 자신보다 더 뛰어나고 가치가 있다는 판단으로 망설임 없이 그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내 모든 것에 대한 표현이 부드러워짐이 느껴집니다.

그 대상이 되어버린 한 명의 친구를 바라보는 모습은, 약간의 우월감을 갖고 있지만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고 판단할 때 자신을 한없이 아래로 내리깔던 그 나이 때의 나와 닮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독서를 할수록 미소가 지어졌고, 떠오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나이보다 더 어릴 적에 만났던 친구들이지만, 그 감정만큼은 비슷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친구가 되고 싶어 노력하는 것까지 꼭 닮았습니다.

하지만 도서에서 그들의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 표현되는 부분은 아주 짧습니다. 오히려 주변을 묘사하고 친구를 묘사하는데 더 많은 힘을 들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돈독한 관계가 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더 깊게 공감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관계도 결국 처한 위치와 사회적 배경의 차이에 따른 갈등을 직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떤 관계라도 갈등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갈등을 만들어 놓은 시대가 그들을 갈라버립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갈등을 겪습니다. 단지 그들보다 힘겨운 배경과 시대가 아닐 뿐입니다.

한겨울과 같이 차갑고 건조함을 품게 되는 것은 단순한 갈등 이후였습니다. 그는 선택을 강요받았고, 완전하게 둘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분명 본인의 의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존재를, 표현하기에 하나의 망설임도 없을 만큼 사랑하던 모든 것들과 부모님을 두고 떠나기에 그는 다시 원래의 현실주의자가 됐을 것입니다.

주변에서 그를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를지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한 줄이 더 아련했고, 그런 선택에 대한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우정을 위해, 가장 소중한 존재를 되찾기 위해서 그러한 선택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는 주인공과 달리 스스로 내린 선택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짧지만 강렬하고,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이 도서는 더욱 슬프게 다가옵니다.

그들의 시간은 분명 짧았습니다. 온전하게 주인공의 감정이 표현될 수 없을 만큼 짧았던 그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끝이 납니다.

그리고 지금, 이상 때문에, 처한 상황이 비극이어서 우정을 져버리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살고 있기에 다행스러운 감정을 느낍니다.


아쉬운 점

  • 중편 소설의 특성상 감정의 표현이나, 상황의 표현까지 생략됩니다.

자칫 감정 이입에 방해가 됐을 수도 있습니다.

  •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큰 의의를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런 공감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 시대적 배경 등 다소 불편한 요소화 표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소설적 배경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역사적 사실이 있기 때문에 다소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총평

어딘지 퍽퍽하고 차가움과 풍성하고 아름다움이라는 이질적인 느낌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의 감정과 저자의 태도가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솔직함이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시대적 배경과 함께 감정들이 제대로 묻어 나와 힘들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선택을 강요받은 자와 선택을 한 자의 간극도 함께 묻어 나오는 어려움이며, 그 때문에 그런 떨림이 이해되는, 그렇게 애잔해지는 이야기입니다.


상세 평점

★ 5개 만점

★★★★ (주제 8 구성 7 재미 8 재독성 8 표현력 9 평균 8)

분명 다른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느껴지는 공통적인 감정의 아이러니와 애잔함.


상세 내용

감상자(鑑賞者)의 감상(리뷰) 블로그

https://blog.naver.com/persimmonbox/223079427439

나는 세세한 것들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하고 있다. - P22

유대인 의사의 아들, 랍비의 손자이고 증손자이자 하찮은 상인과 가축 장수들의 혈통인 내가 이름만으로도 내 마음을 경외심으로 가득 채운 그 금발 소년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 P30

10시에 쉬는 시간이 되었을 대 콘라딘은 흥미를 잃어버린 듯 내게 눈길도 주지 않고 교실에서 나가 버렸다. 그렇더라도 나는 행복했다. - P49

봄이 와서 온 천지가 벚꽃과 사과꽃, 배꽃과 복숭아꽃이 흐드러지게 어우러진 꽃들의 모임이 되었고 미루나무들은 그 나름의 은빛을, 버드나무들은 그 나름의 담황색을 뽐냈다. 슈바벤의 완만하고 평온하고 푸르른 언덕들은 포도밭과 과수원들로 덮이고 성채들로 왕관이 씌워졌다. - P56

나는 불이 난 것을 보지도, 가정부와 어머니의 비명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단지 다음 날 시커멓게 그을린 벽과 타버린 인형들, 뒤틀린 나무에 뱀처럼 매달려 있는 숯이 된 그네 줄을 보았을 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 P66

그것이 내 세상, 내가 전적으로 안전하다고 느꼈고 영원히 지속되리라 확신했던 내 세상이었다. - P80

내게 진정할 시간을 주었고 5분이 지나자 돌아서서 내게 미소를 지어 보인 것이었다. 내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같이 미소를 지어 보일 수 있도록. - P96

그들이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나에게까지 오려면 아직 10미터 정도가 더 남아 있었다. 어디로도 피할 길은 없었다.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5미터, 4미터로 좁혀졌다. - P112

마음속으로 여전히 그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내가 그를 가장 필요로 하는 이때에 나를 도와주고 위로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서. 하지만 내가 학교를 나섰을 때 길은 겨울날의 백사장처럼 싸늘하고 텅 비어 있었다. - P132

나는 조그만 인명부를 집어 들고 막 찢어 버리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내 손을 멈췄다. 그런 다음 마음을 굳게 먹고 떨면서 H로 시작되는 페이지를 펼쳐 읽었다. - P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