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 - 스웨덴의 한가운데서 우리가 꿈꾸는 대한민국을 만나다
최연혁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마감은 언제나 술을 부른다. 때로는 한창 바쁜 중에도 주신이 찾아오기도 하는데, 며칠 전 그날이 그랬다. 무언가 뒤숭숭하고 풀리지 않는 그런 상황, 망망대해에 외로이 떠 있는 작은 섬처럼 존재가 미소함을, 별처럼 빛나지 않음을 피부로 느끼는 그런 날.

 

도로를 가득 메운 차, 그 도로 한가운데로 버스가 달리고, 그 옆으로 늘어선 승용차, 그 틈바구니에 택시들이 거북이처럼 기어간다. 빨간불이냐 파란불이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버스는 주로 달리고, 택시는 늘 기어간다. 사실 그들이 운전대를 잡은 까닭은 자기네 인생에 빨간불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잘 다니던 직장에서 어느 날 갑자기 정리해고 당한 아버지들, 숱하게 많은 자소서를 제출했지만 낙방하기만 수백 번한 친구들, 그들 모두 막막한 인생 앞에서 특별한 기술 없이 하나만 있으면 밝힐 수 있다는 을 선택한 것이다. 운전대는 그들에게 유일한 구원이었다.

 

그날 사당까지 가는 택시, 남산터널을 지날쯤 말문이 트인 기사 아저씨는 연신 이게 우리 택시 기사네 현실이요했다. 쌓인 게 많은 모양이었다. 6일 하루 12시간 2교대, 허리 빠지게 운전석에 앉아 있어도 월 200을 벌기 힘들다 했다. 회사 택시는 사납금에, 개인택시는 LPG값에 살 길이 막막하다는 내용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날은 우리네 현실이요그 말이 유독 절절하게 다가왔다.

 

12시가 넘은 늦은 밤, 중앙차선에는 간혹 심야 버스가 달렸다. 곧 내가 갈아탈 버스도 스쳤다. 지금 대통령이 시에 있을 때 빨강파랑초록 옷을 입힌 그 버스 기사 아저씨의 연봉이 3,000만원이라고 아저씨가 일러 주었다. 좋은 대학 나와서 대기업 들어가는 신입사원의 초봉과는 견 줄 액수가 아니지만, 그 말을 하고 있는 우리에겐 꽤 어마어마한 액수였다. 지금도 택시 운전대를 놓고 대형면허를 따려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그를 위해서도 헤치고 나갈 관문이 많았다. 대형면허야 쉽게 따는 것이고, 그 뒤로 마을버스 경력을 쌓아야 시내버스에 원서라도 들이밀 수 있다고 했다. 그마저도 시청 과장 빽을 써서도 들어가기 힘들다 목소리 높인다.

 

그날 우리가 한 잔 들이킨 장소는 동교동삼거리였는데, EJ는 동교동삼거리에서 연신내 방면로 가는 택시는 없다고 했다. 조금 더 걸어 홍대까지 나와 택시를 잡았다. 그렇게 나는 머리가 반쯤 벗겨지고 깡마른 아저씨의 택시를 잡아타고 사당으로 출발했고, EJ는 길게 늘어선 택시 중의 한 대에 올랐다. 둘이 탄 택시는 시속 90km로 시내를 달리다가, 110km까지 속도를 내더니, 급기야 사고까지 날 뻔했다고 한다. 심지어 코너를 돌 때도 속도를 완전히 줄이지 않아, 한 블록 앞에 집을 두고 티 안 나게내렸다고 했다.

 

우리 기사네 현실이요를 입에서 내리지 않던 그래도 순하게 생긴 아저씨는 연신내정릉은평뉴타운미아리는 택시 기사들에겐 무덤과 같은 곳이라고 했다. EJ는 죽음 문턱에 간 듯했지만, 아저씨는 이미 무덤 안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공차로 서울시내를 도는 게 가장 무섭다고 했다. 심야할증이 붙은 그 시간 전후로 손님을 태우고 빠르게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그 먼 곳까지 갔다가 다시 공차로 돌아오는 날은 장사를 망친 날이라고 했다. 손님을 태우고 광화문에서 종로3~5가까지 가면, 동대문을 기어이 거쳐야 하는데, 그 길을 지나기가 가장 무섭다고 했다. 길게 꼬리를 물고 택시를 잡는 행렬 대부분이 서울 동북부 외곽 주택 밀집 지역으로 가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란다. 일진이 안 좋아 그쪽 방향 손님을 태운 날은 시간 단축을 위해 난폭 운전을 하는 사람이 많고, 그러니 한 달에 1~2명씩은 꼭 인생을 서둘러 간다고 했다.

 

이틀 후, 구로에서 안양까지 가기 위해 잡은 안양 택시젊은 아저씨는 택시 판 강남 스타일을 알려줬다. 강남에는 수도권 서남부 지역에서 올라온 택시들이 모인다. 대략 성남안양(과천, 의왕, 군포) 차들인데, 이들에게 쪽박은 자신의 지역으로 가는 승객들이었다. 소싯적 여자에게 인기 좀 있었겠다 싶게 잘생겼던 젊은 아저씨는 돈 벌려면 용인 가는 손님을 태워야 한다고 점잖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거리는 훨씬 멀지만 고속도로로 달려 시간은 단축되고, 돌아올 때는 용인으로 갔던 대리 기사를 명당 3000원에 태워 올라올 수 있다 했다. 공차로 돌아오더라도 안양 손님 태우는 것보다는 훨씬 이문이 남는다 했다. “평촌이요하고 당당하게 외친 중장거리 손님인 나는 순간 쫄아 오늘 장사 쫑쳤네요?” 하고 물었다. 다행이 구로에선 안양으로 돌아가는 게 낫다는 위로의 대답을 듣고 안도했다.

 

다시 그날로 돌아가자. 깡마른 아저씨는 택시 기사네 밥줄만 걱정하진 않으셨다. 하루 세끼 걱정에 목소리 톤을 조금 더 높일 법도 한데, “대중교통 확장을 지향하는 서울시의 현 정책은 바른 길로 가고 있다했다. 택시 수는 줄여야 한다는 말에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체념이 묻어 있었다. 택시 수를 줄이고, 사납금 비율을 낮추어 택시 기사들이 먹고 살 길을 열어주면 좋겠다는 아저씨의 마지막 기대가 자판을 두드리게 한다.

 

인생의 불을 환하게 밝히겠다며 운전대를 잡는 이는 드물다. 켜졌다 꺼졌다 하는 택시 등처럼, 인생을 빈 차가 아닌 그래도 무언가 하며 살아보겠다며 마지막 선택을 한 이들이다. 스웨덴과 나미비아를 한국 복지국가의 모델로 스웨덴을 모델로, 나미비아를 복지국가 반면교사로 상정한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최연혁, 쌤앤파커스)를 읽으며 가장 부러웠던 스웨덴의 모습은 사회안전망이었다. 빨간불이 켜진 사람들을 1차적으로 직장이 책임지고, 다음엔 국가가 감당한다. 그 뒤에는 가정이라는 뒷배가 있다. 가정이 뒷배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역시 사회안전망덕분이다. 한국에선 택시가 그 역할을 하진 않았을까, 이젠 그 안전망마저 부실해진 마당에 그 다음 대책은 무엇일지, 우리가 쓸 수 있는 카드가 딱히 손에 잡히지 않아 갑갑하다. 별처럼 빛나지 않더라도, 미소한 먼지일지라도, 너 거기 있고, 나 여기 있네, 서로 보듬어 안고 살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는 그런 날들이 계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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