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테테(Gutete, 이 마을의 이름이 G로 시작하는지 K로 시작하는진 정확하지 않다)에서의 하룻밤은 열정적이었다. 마을 분들은 우리를 성심껏 환영했다. 나빤-오에실로(Napan-Oesilo) 국경을 넘자 왜건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짐칸에 움직일 틈도 없이 철썩 붙어 앉아 두세 시간을 달려 마을에 도착했다. 엉덩이는 딱딱해 지고 다리엔 쥐가 났지만 이런 여행은 호사였다. (우리 여행의 목적 중 하나는 ‘현장의 교통 수탄을 익힌다’도 있었는데, 그 점에서 이번 여행은 사치스럽기도 했다. 바로 다음 글에서 언급할 말레랏(Malelat)까지의 이동 수단을 보면 얼마나 호사였는지 짐작하고 남을 것이다.) 우리에겐 호사였으나 작은 왜건은 버티기 힘들었는지 마을을 바로 앞에 두고 퍼져 버리고 말았다.
구테테는 산악마을이다. 높은 길을 구불구불 돌아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이미 그곳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곧 춤판이 벌어졌다. 동티모르 전통춤, 떼베떼베였다. 10여 명의 여자들이 북소리에 맞춰 발을 구르는 군무다. 동티모르에서는 마을에 큰 행사가 있거나 귀한 손님이 방문할 때 꼭 이 춤을 춘다. 마을은 축제 분위기였다. 떼베떼베를 춘 여성 중에 한 명이 나와 윤애 누나의 목에 타이(tai)를 걸어 주었다. 동티모르를 대표하는 상품이었다. 마을 어른이 손으로 직접 짠 것이었다.
마을은 잘 정돈돼 있었다. 이랑과 고랑이 잘 정리된 밭과 저장을 위해 말리고 있는 작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구테테를 이렇게 가꾼 이는 서양에서 온 신부였다. 우리가 갔을 때 그는 본국으로 출장 중이었기에 직접 보진 못했다. 그의 이름이 리치몬드였는지 레이몬드였는지도 호주 출신인지 영국에서 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윤애 누나의 설명은 이렇다. 인도네시아의 폭정이 그에 달하던 때 오에쿠시 지역의 부모를 잃은 아이들, 집을 잃은 사람들, 위태한 삶을 사는 이들을 불러 마을을 꾸렸다. 그는 그들의 보호자(Fadre)가 되기를 자칭한 이였다.


간단한 식사로 파티가 시작됐다. 카사바와 고구마 등을 이용한 간식거리가 나오고, 염소 고기와 각종 채소로 배를 채웠다. 마을에서 직접 재배해 로스팅까지 했다는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이장님 댁 뒷마당으로 나갔다. 염소 머리 하나가 ‘내 살점이 네 뱃속에 있다’며 원망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놀람도 잠시 해맑은 호기심으로 타국의 청년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꾸밈 하나 없는 아이들과 함께 신나게 한 판 놀았다. ‘얼음(es)’, ‘땡’을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마당을 채웠다.
그렇게 해가 지고 이장님이 안내해 준 숙소에 둘러앉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윤애 누나의 표정이 밝지 않다. 마을 분들이 우리를 투자자 내지 개발 원조자로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생각 이상의 환대가 부담이고, 그들의 기대와 우리의 목적이 다르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했다. 동티모르에 있은 지 수 년, 다른 지역을 많이 돌아본 코디네이터의 감이었다. 근심이 짙어갈 때, 이장님이 다시 들어왔다. 이제 댄스파티가 준비됐으니 다들 나오라는 거였다.
몸치에 박치, 거기에 음치를 더한 내겐 오지 않았으면 하는 시간이었다. 무겁게 발걸음을 옮겼다. 동티모르에서 댄스파티가 차지하는 위치는 크다. 사람들은 춤과 음악을 좋아했다. 그런 그들의 초대에 응하지 않는 건 큰 결례였다. 이해는 달라도 관계는 소중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았지만 가시방석이었다. 그 맛있던 카사바와 고구마, 커피 모두 돌처럼 보였다.
그렇게 어려웠던 하루가 지나고 동이 트자마자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왔다. 예의 그 왜건에 올라 버스가 파사베로 가는 차들이 있는 삼거리 시장으로 향했다. 마땅한 교통편이 있는지 찾아야 했다. 30여 분 끝에 퀴비실로에 소를 배달하고 파사베로 간다는 트럭을 찾았다. 그렇게 소가 기다리고 있는 짐칸에 올랐다. 덩치 좋은 소들의 등 뒤에는 쇠파리들이 붙어 있었다. 소는 물론 사람의 피까지 빨아 먹는 무시무시한 녀석들이었다. 반바지를 입고 있던 우리 일행을 가장 반긴 것은 쇠파리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이제야 진짜 여행의 출발지에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당장의 쇠파리보다는 오에쿠시의 넒은 대지, 뜨거운 태양, 트럭 위로 부는 바람에서 여행의 낭만을 느끼기도 했다.
*사진은 같이 여행한 명식이가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