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디트리히 본회퍼 - 20세기가 남긴 기독교 최고의 유산, 본회퍼의 삶과 신앙과 신학
에릭 메택시스 지음, 김순현 옮김 / 포이에마 / 2011년 8월
평점 :
D.본회퍼, 가슴 설레게 하는 이름이다. 독일 전통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안정된 삶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진실을 추구하며 살아 온 가풍을 이어 받아 ‘나치 독일’을 가장 앞서 반대했던 사람. 제국교회의 길도, 고백교회의 길도 아닌 독자적인 길을 고독하게 뚜벅뚜벅 걸어가던 목사. 윤리를 틀에 박힌 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서 행동의 결단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간 신앙인.
이 책은 그의 일생을 가장 ‘꼼꼼하게’ 기록한 책이다.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쓴 본회퍼 전기가 유년기에 대한 기록과 가족에 대한 묘사가 부족했던 반면 메태시스의 책은 유년과 청년 시절의 본회퍼와 그의 가족들의 삶을 상세하게 적고 있다. 독자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익은 본회퍼의 성정이 어떠한지, 보통 독일인과 비교해 안정되게 살 수 있는 본회퍼가 변하게 되는 계기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유럽 여행 중 스페인에서 투우 경기를 즐기는 본회퍼의 모습에서 생소함을 느꼈다. 잔인한 경기 중 열광하는 본회퍼, 평화주의자로 알고 있었기에 상상하기 힘들었다.
본회퍼는 1931년 미국 뉴욕에서 경험한 다문화(흑인뿐인 예배였을 수도 있다) 공동체 예배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한 일면을 본 듯하다. 그 경험은 유대 분리주의와 학살 홀로코스트를 저지르는 나치와 독일(제국)교회의 적극적 찬성(또는 침묵)을 비판하는 연설과 대외 활동으로 이어진다. 사상과 경험의 조화는 인간을 주체 시민으로 성숙하게 하는 두 개의 날개다.
저자는 이때를 고백의 시간이라고 부른다. 아직은 대중 활동과 조직을 통해 엇나간 독일의 길을 바로잡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본회퍼는 품고 있었다. 니묄러와 같은 독일 고백교회 지도자들은 그 희망을 오래 품었던 듯하다. 히틀러와의 면담을 통해 사태를 개선할 수 있다고 믿었던 니묄러는 8년 동안을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더 치욕적인 것은 교회에서 설교권을 박탈당한 채 보낸 몇 개월의 시간이었을지 모른다.
본회퍼가 고백을 넘어 공모의 때라고 판단한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저자가 밝혔듯 공모자 외에 아무도 몰라야 했다. 누군가를 암살하겠다는, 그 대상이 아무리 미치광이일지라도 목사가 그 일을 하겠다고 결단하기엔 마음의 부담이 많았을 것이다. 소설 『분노의잔』은 그런 이유에서 ‘검으로 흥한 자는 검으로 망한다’는 성서의 구절을 그가 결정을 내리던 고뇌의 시간에 삽입했는지도 모른다. 3번의 암살 시도는 모두 실패로 끝났고, 실행 계획과 공모자 명단이 밝혀지며 1945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본회퍼의 신앙과 신학은 오늘 제국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소수자를 억압하는 데 앞장서는 한국교회에 치열함을 요구한다.
덧.
이 책은 본회퍼의 삶만을 연도순으로 나열하지 않는다. 독일 정세의 변화, 1차 대전 이후 패전국 처리에 대한 독일인들의 감정, 총통 체제 독일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을 꽤 자세하게 담는다. 그것이 본회퍼 신앙과 신학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