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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의 풍경 -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 개정증보판
김두식 지음 / 교양인 / 2011년 12월
평점 :
브라더 송이 끝내 구속됐다. 강정마을에서 해상시위를 진두지휘하던 그였다. 민의를 잊은 국책사업을 두고 “우리가 승리한다(We Shall Overcome)”고 내내 노래하던 그였다. 연행 중에 이가 다섯 개나 부서졌지만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들은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나봐”, 그의 절규가 가슴을 때린다. 이보다 6개월 앞서 윤애 누나는 레미콘 기사에게 폭행을 당했다. 가해자도 시인한 사건을 검찰은 기소조차 하지 않았다. 억울하고 분해 마른 눈물을 삼키던 누나를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강정을 안 뒤 민주주의와 인권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김두식 교수의 『헌법의 풍경: 잃어버린 헌법을 위한 변론』(개정증보판, 교양인, 2011)을 집어 들고 답을 찾았다. 2004년 6월 출간돼 ‘노무현 대통령의 추천 도서’, ‘책따세 권장도서’에 이름을 올리더니 2005년 1월에는 45회 백상출판문화상을 받았다. 저자 자신도 개정증보판의 머리말에서 ‘법과 사회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었고, 지난 7년간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고 말할 정도다. 소수자 인권, 평화, 정의, 민주주의에 대해 각종 매체와 단행본에서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그는 ‘2004년의 기본 틀을 그대로 남겨둔 채 2011년의 목소리를 추가하는 길을 선택’했다. 2011년 작년 한 해 심각한 위기에 처한 한국의 헌법, 즉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지키고자 하는 법학전문교수의 치열한 성찰 아닐까.
정의가 아닌 전관예우가 판단의 기준인 사법부, 사회 약자들을 위하겠다는 포부가 사라진 검사·판사·변호사들, 약자들의 권리가 아닌 수사의 편리함만 생각하며 차별에 앞서는 이들. 지난 한 해 사법개혁은 큰 화두 중에 하나였지만, 결국 이뤄지지 못했다. 차기 국회나 정부에서는 이뤄질지, 이뤄지더라도 진정성이 있는 개혁안이 나올지 여전히 의문이다.
각 장 하나하나 모두를 꼼꼼하게 읽었다. 그만큼 그동안 품었던 고민들에 딱딱 떨어지는 명쾌한 답변이 책 곳곳에 숨어 있었다. 저자는 실미도 북파 공작원 살해와 제주4·3사건을 독일의 인종 청소와 연결하며 국가 폭력의 원인을 이렇게 진단한다.
국가의 범죄는 절대 권력을 지닌 소수 독재자들의 야욕과 그들에게 복종하는 다수 봉사자들의 협력에 의해 현실화됩니다. 정신 나간 사람들 몇 명의 손으로는 이런 거대한 범죄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독재 권력의 전횡에 참여하거나 방관할 때에만 비로소 국가라고 하는 괴물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국가란 이름의 괴물’, 135쪽)
국가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우리나라는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을 분리하는 삼권분립을 기초로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 고위관료, 법조 인사들이 기득권층이 되면서 이들이 결탁하고 야합하기 시작한다. 법조계가 지켜야 할 국민의 권리는 휴지조각이 되어 버린다. 헌법이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앞세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은 사라지고, 법을 내세워 민을 속박한다. 국가보안법 같은 악법은 사라져야 하는 이유다.
원래는 공산주의자들처럼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해주는 것이 사상의 자유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또 민주적 기본질서의 핵심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공산주의자들을 탄압하기 시작하면, 어느새 알맹이는 빠져버린 민주주의의 껍질만 남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 정신, 258쪽)
김두식 교수는 이 책에서 국민의 권리를 강조한다. 검찰, 변호사, 판사는 그 권리를 지키기 위해 ‘특권을 버리고 똥개가 돼야 한다’(‘똥개 법률가들의 시대’)고 강조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를 책 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로 한 명의 범인을 잡는 것보다는 백 명의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예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권리(말하지 않을 권리,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들을 보장해온 것입니다. (‘말하지 않을 권리, 그 위대한 방패’, 301쪽)
이 문장을 곰곰이 생각하다 ‘수사기관에 의한 인권 침해로 백 명의 범인을 잡는 것보다는 한 명의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예방하는 것이 옳다’고 바꿔 보았다. 소수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사법부와 법조인들을 기대하는 바람에서다.
애초에 가진 질문은 책을 읽으며 해소됐지만, 질문은 점점 깊어만 간다. 2012년 한국사회 현실은 민주주의와 헌법의 정신과 많이 어긋나있다. 국민의 의견은 아무리 다수여도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 아니 공론의 장에 나오지조차 못한다. 4대강 사업도 그랬고 제주해군기지도 그렇다. 주민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배제하고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이 책상에 모여 결정하고 ‘고집스럽게’ 밀어붙인다.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맹세, 그건 내 생각과 다르더라도 경청하겠다는 자세 아닐까. ‘잃어버린 헌법’을 되찾아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