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는 질리지 않는다 - 100명에서 1700명으로
김호성 지음 / 선한청지기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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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교회 성장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어느 목사가, 어느 교회에서 여전히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드물게 있다.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는 그 드문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16년간 당임목회하는 가운데 100명의 성도를 1,700명으로 확장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충분히 주목할 만 한 사건이다.


물론 교회의 성장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하나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바로 그 도구로 쓰임받은 김호성 목사는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에서 교회 성장의 근간이 되었던 진리를 나누고 있다. 인근에 신도시가 조성된 것도 아니고, 이런 부흥을 꿈꾼 것도 아니다."온전히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7쪽)


하나님이 하셨다는 선언은 그 자체로 정당하지만, 설명으로는 불충분하다. 하나님이 역하사기 위해서는 진리의 매개가 필요하다. 진리를 믿고, 진리를 순종할 때에 하나님이 영으로 역사하신다. "진리의 말씀을 붙잡는 믿음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 그분의 진리의 말씀이 능력으로 임한 것이다."(7쪽)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는 바로 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핵심 매개가 된 진리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다. 위에서 하나님이 영으로 역사하신다고 언급했다. 하나님은 다른 보헤사, 즉 성령님으로 임하사 우리 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 "질그릇 같은 우리들 속에 보배 되시는 성령님이 계신다."(21쪽). 


저자는 이를 3동(동거, 동행, 동역)의 근간으로 본다. 성령님, 즉 영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내주하심이 우리를 바르게 세워주는 것이리라. 따라서 우리가 (보배이신 성령님을 모시는) 질그릇임을 인정해야 한다. "스스로를 질그릇이 아니라 은그릇, 금그릇으로 착각하게 되면 성령님이 그 역할을 멈추신다."(21쪽)


"질그릇 안에 보배가 담긴 것이다. 이 진리를 믿으면 3동으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큰 능력이 우리에게서 계속 나타난다."(21쪽) 여기서 질그릇의 함의를 기억해야 한다. "질그릇은 보잛것 없는 그릇이다. 질그릇은 쉽게 깨진다. 연약하다."(21쪽) 우리를 낮춰야 성령님이 임하신다. 이 점을 잘 이해해야 할할 것이다.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 외려 "진리는 성도를 자유롭게 한다."(213쪽) 하나님과 함께 하는 3동의 삶(213쪽)은 곧 진리의 삶이다. 저자는 이 진리의 삶이 질리지 않으리라고 말한다. 오히려 자유와 더불어 "세상과 사탄과 악과 싸울 때"(213쪽) 승리를 보장한다. 질리기는커녕 역동적인 승리와 자유가 주어지지 않던가. 


<진리는 질리지 않는다>에서 소개된 진리에 대한 믿음이 튼튼하게 선다면, 즉 믿음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간다면, 곧 "날마다 성령님과 함께 사는것"이자,  "3동의 삶을 누리는 것"(215쪽)에 다름 아니게 된다. 본문에서 다루는 진리들을 잘 소화하시고, 이를 통해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크게 성장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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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인의 띄어쓰기.맞춤법 (4차 개정판) - 한국인이 가장 잘 틀리는 우리말 5500제
최종희 지음 / 국민출판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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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인터넷에 떠도는 맞춤법 괴담 하나를 보았다.  썸남이 "**에서 **까지 갑갑니?"라고 문자를 보냈다. 알고 보니 '가깝니'를 '갑갑니'라고 적은 것이다. 정말 '갑갑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아마도 이 썸남은 주로 귀로만 한글을 배웠나보다. 그러니까 책을 통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SNS야 문자매체라기보다는 구술매체, 더 정확히는 (월터 옹의 표현을 빌리자면) 전자 구술매체니까. 글이 아니라 말로 정신이 주조된다는 것은 (개인의 판단보다 집단의 흐름에 더 쉽게 휩쓸리고 나아가 쉽게 조종되는) 구시대적 인간형이라는 뜻이다. 맞춤법 정도 틀린 게 뭐가 문제냐는 인식은 위험하다.

 

얼마 전에 들은 이야기 하나 더. 어느 조직에서 중간 간부들이 조직원들에게 돌아가며 카카오톡으로 글을 보내는데, CEO께서 원고 검토하다 급기야 분노를 터뜨리셨다. 그래도 명색이 지도자들인데, 맞춤법 수준이 참담했던 거다. 해서 그 전까지는 교정만 봐주시던 어른이 이거 글 쓴 사람들 실명 공개하라고 했다는 거다. 그러자 넘버 투가 국문학과를 졸업하는 다른 관리자에게 부탁했다고 한다. 맞춤법을 A4  한 장으로 정리할 수 있나는 거다. 말이 되는 소리냐, 그게.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맞춤법 책 <달인의 띄어쓰기 맞춤법>은 768쪽이다. 그것도 거의 크라운판 사이즈다(173*235).

 

간단히 말하자면, 맞춤법은 어렵다. 어려우니까 공부해야 한다. 지금도 수시로 국립국어원 사이트에 들어간다. 매번 헷갈린다. <달인의 띄어쓰기 맞춤법>을 앞에 가져다 놓은 이유다. 부제가 "한국인이 가장 잘 틀리는 우리말 5500제"다. 그러니까 통독용이 아니라 "곁에 두고 필요할 때마다 찾아보"라고 만든 책이다. 최소한 글을 만지는 사람에게는 이런 책이 필요했다. 모든 논의를 하나로 모아놓아 언제든 참고할 책이 필요했다는 소리다. 이 책의 유용성은 맞춤법 분야의 사전 혹은 상비약 정도로 생각하고 보면 분명해질 것이다.

 

마침 2020년 최신 (4차)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글을 쓰거나, 글을 만지는 일을 하는 이라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기본서다. 여기서 글을 쓰는 이는 전업 작가, 기자 등만 생각하기 쉬운데, 글을 통해서 진행되는 업무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이드잡으로 글쓰기를 생각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요즘 브런치 등 여러 플랫폼을 통해서 글을 올리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도 이런 자료집 한 권은 구비되어야 한다. 그냥 상비약이라고 생각하고 구비하시라. 한글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반드시 이 책이 필요할 때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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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간 VS 6시간 - 켈로그의 6시간 노동제 1930~1985
벤저민 클라인 허니컷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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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동 시간에 관심이 많다. 내 실존을 결정하는 중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켈로그의 노동시간 단축 실험(이라기보다는 인력 수급을 위한 결정)의 과정을 다룬 보고서다. 흥미진진하다. 1930년에 켈로그 사장 루이스 브라운은 노동 시간 단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매우 개방적인 인물이었다. 

 

그 두 시간 단축이 삶의 질을 얼마나 바꿔놓는지를 보면, 경이로울 정도이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기 실현에 시간을 쓰기 시작한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비행기 조종을 배운 이도 있다. 이게 무려 90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 우리의 노동 환경은 1930년 당시의 켈로그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

 

요 근래 몇 년 동안 노동 시간 단축과 관련하여 숱한 논의가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별 실효도 거두지 못하는 데도 불구하고 야근 중독에 걸려서 회사가 허덕이는 모습을 보라. 실은 미국 켈로그에서도 퇴보하였다. 그렇다. 실패가 아니라 퇴보다. 노동자들은 더 많은 소득을 위해서 8시간 노동을 택했다.

 

8시간 노동과 6시간 노동은 패러다임이 다르다. 8시간 노동을 떠받치는 것은 소비주의 패러다임이다. 많은 노동은 많은 소득을 원해서다. 소득은 소비의 근간이다. 소비가 행복이다. 그래서 오래 일하고, 많이 번다. 6시간 노동을 떠받치는 것은 인간주의 패러다임이라고 해야 할까? 소득보다 관계를 우선하고, 소비보다 자유를 중시한다. 

 

<8시간 VS 6시간>은 각각의 노동 시간이 대변하는 패러다임을 계속 돌아보게 만든다. 자연스레 8시간(실은 그보다 더 심하지만) 노동시간 위에서 작동하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만큼 유익하고, 실은 그 이전에 재미있는 책이다. 꼭 읽어보시라. 구할 수 없다면,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보시길 바란다. 그럴 만 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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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어린이가 함께 읽는 백범일지
이강하 엮음, 한동훈 그림 / 국민출판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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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선생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 책을 집어들었다. 백범 선생의 삶을 만든 여러 사건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백범일지>로, 독자들이 (각 장의 제목이기도 한) 스물두 개의 질문을 통해 백범 선생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기획된 것이다. 실은 어린이들에게 <백범일지>로 나아가는 데 진입장벽을 낮춰주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어린이를 독자로 상정하고 만든 책이라서 지루하지 않게 잘 읽힌다. 항상 질문 다음에 힌트를 제공해서 흥미를 유발하고, 본문 읽는 데에 몰입도를 높여준다. 더욱이 다양한 그림과 사진이 곁들어져 읽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백범일지>를 이렇게 맛있게 재구성하고, 여러 가지 양념을 버무려 내놓으니 나 같은 성인에게도 재밌게 읽힌다.  


무엇보다 이 책이 주목하는 것은 통합이다. 이 책의 제목이 <남북 어린이가 함께 읽는 백범일지>다. 남한과 북한으로 분열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헌신한 백범 선생의 노력에 초점을 맞추어 어린이들에게 통합이라고 하는 가치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한다. 통일에 대한 기대가 사라져가는 요즘 성인들도 함께 읽어볼 만 한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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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할더스 보스 그는 누구인가 게르할더스 보스 프로젝트 저작물 시리즈 1
김영호 지음 / 합신대학원출판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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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할더스 보스는 내가 학부생 때에 열심히 씨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이후로 어지간한 구속사 관련 문헌은 술술 읽혔다. 에베레스트 등정 후에 동네 뒷산은 아무 것도 아니듯이 말이다. 


그레엄 골즈워디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읽고 곧바로 읽은 책이 보스의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성경신학>. 그리고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순서였지 싶다. 


선생 없이 공부한 독학자의 슬픈 처지였다. 그래도 다 읽었다. 후루룩 읽을 책이 아니었기에 한 문장 한 문장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후 보스의 책 자체도 의외로 잘 읽혔다. 물론 처음에 워낙 혹독하게 씹어먹어서다. 


요즘 독자분들이 구속사나 성경신학에 관심이 생겼을 때에는, 나처럼 읽을 필요가 없다. 골즈워디를 읽고, 보스를 읽기 전에 읽을 만 한 책이 얼마나 많이 나왔나. 꼰대로서 말하자면, 정말 좋은 시대 아닌가 싶다. 


여전히 게르할더스 보스는 성경신학 계보에서는 고전이며, 여진히 읽히고 있다. 실로 끝판왕 같은 위상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구속사 주제에 있어서는 험산준령과도 같은 이 대가를 감히 읽으라고 권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얼마 전 국내 연구자에 의해 <게르할더스 보스 그는 누구인가>라는 작은 책자가 나왔다. 그의 저작물시리즈의 1권으로 말이다. 즉 보스와 그의 교의학을 번역, 소개, 해설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실이다. 


막상 펼쳐보면 보스의 문헌 소개(7. 보스 연구자료~보스 글 찾아가기)가 분량의 절반을 차지하여 실제 본문은 52%에 해당한다. 더욱이 판형이 46판과 국판 사이(140*200)인 비교적 작은 책자다. 단숨에 읽혀버린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오랫동안 보스를 애호한 독자로서 반가운 기획이고, 깜짝 선물이다. 더욱이 보스의 여러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가령 아래 인용한 문단을 한 번 살펴보시길 바란다.


"보스는 매일 정오가 되면 산책을 떠났다. 동행자는 거의 매일 벤저민 워필드였다. 후에 그래샴 메이첸이 함깨 했다. 머서 스트리트를 따라 걸었고, 보스는 애완견을 대동했다. 보스와 워필드는 여기서 에너지를 얻었고, 그들이 읽은 것들과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보스는 신학교 평의회에서 거의 말하는 일이 없었던 반면, 워필드는 강한 연설가였다. 그러나 워필드의 연설 내용 중 많은 부분은 보스와 나눈 대화의 결론이었다."(37쪽)


이 한 문단 만으로도 보스의 성격과 대인관계, 신학 입장 등에 대해 여러 가지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나는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 저자(김영호 교수)가 어서 보스에 대한 다음 저술을 내주시길 바랄 뿐이다. 


보스를 애호하는 모든 이에게, 실은 존경하는 쪽에 가깝다 하더라도. 이 책을 추천한다. 보스를 좋아한다면, 재밌게 읽을 것이다. 그를 잘 몰라도 상관 없다. 보스 읽기의 첫걸음으로 이 책을 택하는 건 훌륭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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