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할더스 보스는 내가 학부생 때에 열심히 씨름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배움을 얻었다. 이후로 어지간한 구속사 관련 문헌은 술술 읽혔다. 에베레스트 등정 후에 동네 뒷산은 아무 것도 아니듯이 말이다.
그레엄 골즈워디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읽고 곧바로 읽은 책이 보스의 <하나님 나라와 교회>와 <성경신학>. 그리고 시드니 그레이다누스의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였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순서였지 싶다.
선생 없이 공부한 독학자의 슬픈 처지였다. 그래도 다 읽었다. 후루룩 읽을 책이 아니었기에 한 문장 한 문장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이후 보스의 책 자체도 의외로 잘 읽혔다. 물론 처음에 워낙 혹독하게 씹어먹어서다.
요즘 독자분들이 구속사나 성경신학에 관심이 생겼을 때에는, 나처럼 읽을 필요가 없다. 골즈워디를 읽고, 보스를 읽기 전에 읽을 만 한 책이 얼마나 많이 나왔나. 꼰대로서 말하자면, 정말 좋은 시대 아닌가 싶다.
여전히 게르할더스 보스는 성경신학 계보에서는 고전이며, 여진히 읽히고 있다. 실로 끝판왕 같은 위상을 자랑한다. 그렇기에 구속사 주제에 있어서는 험산준령과도 같은 이 대가를 감히 읽으라고 권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얼마 전 국내 연구자에 의해 <게르할더스 보스 그는 누구인가>라는 작은 책자가 나왔다. 그의 저작물시리즈의 1권으로 말이다. 즉 보스와 그의 교의학을 번역, 소개, 해설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결실이다.
막상 펼쳐보면 보스의 문헌 소개(7. 보스 연구자료~보스 글 찾아가기)가 분량의 절반을 차지하여 실제 본문은 52%에 해당한다. 더욱이 판형이 46판과 국판 사이(140*200)인 비교적 작은 책자다. 단숨에 읽혀버린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으나, 그래도 오랫동안 보스를 애호한 독자로서 반가운 기획이고, 깜짝 선물이다. 더욱이 보스의 여러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가령 아래 인용한 문단을 한 번 살펴보시길 바란다.
"보스는 매일 정오가 되면 산책을 떠났다. 동행자는 거의 매일 벤저민 워필드였다. 후에 그래샴 메이첸이 함깨 했다. 머서 스트리트를 따라 걸었고, 보스는 애완견을 대동했다. 보스와 워필드는 여기서 에너지를 얻었고, 그들이 읽은 것들과 생각하고 있는 주제들에 대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보스는 신학교 평의회에서 거의 말하는 일이 없었던 반면, 워필드는 강한 연설가였다. 그러나 워필드의 연설 내용 중 많은 부분은 보스와 나눈 대화의 결론이었다."(37쪽)
이 한 문단 만으로도 보스의 성격과 대인관계, 신학 입장 등에 대해 여러 가지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나는 이 책을 재밌게 읽었다. 저자(김영호 교수)가 어서 보스에 대한 다음 저술을 내주시길 바랄 뿐이다.
보스를 애호하는 모든 이에게, 실은 존경하는 쪽에 가깝다 하더라도. 이 책을 추천한다. 보스를 좋아한다면, 재밌게 읽을 것이다. 그를 잘 몰라도 상관 없다. 보스 읽기의 첫걸음으로 이 책을 택하는 건 훌륭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