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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심층을 보다
오강남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종교의 본질은 모든 신자들의 경험의 평균이 아니라, 깊은 체험을 한 신자들의 경험에서 발견된다. 학부 때, 종교심리학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들려주신 말씀의 요지다. 나는 지금도 그 말씀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한국 대형교회의 전횡을 보면, 원래 기독교 혹은 예수님이 주신 가르침의 본질과 무관하다고 외치고 싶다.
그러나 한국 대형교회의 언행이 바로 기독교의 언행이다. 이들은 분명 기독교를 참칭하고 있다. 비록 예수가 그들 안에 계실 지는 의문이지만, 그들은 예수를 말하며, 예수를 따른다고 주장한다(진짜?). 그들은 필경 기독교 공동체를 구성하는 기본 경전인 성서의 문자적(표층적) 의미 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실정이다.
예수가 다시 오신다면 대형교회로 들어가실까? 그들의 거창한 환대 속에서 방송 설교를 통해 전국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실까? 아마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그러셨듯이 분노하시면서 대형교회를 뒤엎지 않으실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한국 대형교회의 모습을 통해 기독교의 본질을 알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기독교의 본질을 알 수 있을까? 진정으로 성숙한 신자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마침 오강남 교수가 우리에게 친절하게 알려준다. 일부만 적어보자. 도마, 프란체스코, 에크하르트, 줄리안, 루터, 본회퍼, 틸리히, 머튼, 큉, 나우웬 등.
이 명단에 포함된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이들은 모두 신비주의자들이다. 신비주의자란 교리(머리의 이해)가 아니라 체험(가슴의 깨달음)을 통해 신을 만나는 이들이다.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신을 발견한 이들이다. 이들이 말하는 기독교가 진정한 기독교다. 그들을 통해 우리는 기독교의 본질을 알 수 있다.
종교의 역기능이 팽배한 오늘날, 오강남 교수는 <종교, 심층을 보다>를 통해 종교가 원래의 순기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할 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표층에서 심층으로 내려가라고. 그러니까 제도와 교리와 문자에 붙박혀서 표층적 종교인으로 존재하지 말고, 체험과 각성과 의미를 추구하며 심층적 종교인으로 성숙해가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오강남 교수는 각 종교 안에서 심층적 차원을 열어젖힌 진정한 신비주의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들의 생애와 그들의 교훈을 매우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기에 각 종교의 정수를 한 눈에 일별할 수 있게 해준다. 지면 전체를 통해 평생을 비교종교학 연구에 매진한 노대가의 탁월한 균형감각이 돋보인다.
520쪽에 달하는 <종교, 심층을 보다>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마음의 인내와 육체의 근육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요구되는 것은 각 종교계의 여러 선현들을 통해 '심층 종교의 존재를 인지하고 그 차원으로 [자신]의 눈을 돌리려 하는'(509쪽) 열망이다. 이러한 열망을 가지고 있는 독자분은 반드시 이 책을 열어보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