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곁과 결
이은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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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유물론 등 반(反)인간주의 담론이 횡행하고, 담론의 트렌드에 민감한 문학(과 나아가 문학 비평)에도 이는 반영된다. 이은지 평론가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그 실천적 효능 여부와 무관하게 [...] 만물을 객촤하하려는 신유물론의 기획을 신유물론 자체에, 나아가 신유물론과 공명하는 문학 자체에도 공평하게 되돌려줄 필요가 있다"(167쪽)


서구에서 주목받았다는 이유로, 요즘 핫하다는 이유로 신유물론 등 반인간주의 담론의 광풍이 부는 현실에 대한 차분한 문제제기이다.

물론 신유물론을 거부하라는 것이 아니다. 절대화하지 말고, 상대화하라는 것이다. 상식적이고 균형잡힌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을 적절히 수용한다면, 신유물론과 충분히 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신유물론이]그러한 자기 반영을 거쳤을 때에야, 마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을 내비치는 최신 유행의 철학적 주관 또한 상대화될 수 있으며, 절대적 진리를 자처하려는 치기를 내려놓고 만물과 공존함으로써 '철학 스스로가 객체화'될 수 있을 것이다."(167쪽)


반인간주의 담론에 열광하는 이들이 정말로 반인간주의자들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이은지 평론가가 아니라) 필자가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물론 '오만한 근대적 주체'라는 것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이는 명백히 반성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즉, 겸손한 주체로 거듭나야 하리라는 뜻이다. 


"인간이 만물과 동등한 지위를 갖고 그들과 공평하게 공존하는 주체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인간이 자신을 포함하여 만물이 동등함을 '승인'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주체인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다면 [...] 주체인 동시에 객체이기도 한 우리 자신의 가변적인 속성을 인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인간은 자신이 '객체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주체'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167-168쪽) 


인간은 성찰성을 가지고 있다. I를 Me로 직시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것은 이미 "칸트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168쪽)에 함축된 바이다. "즉 칸트는 인간이 스스로를 주체인 동시에 객체로 바라볼 능력이 있는 존재, 나아가 그 능력을 마땅히 행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 존재로 보았다."(169쪽) 다시 말해 인간이 성찰성을 극대화하면, 겸손한 주체가 될 수 있다. 


"칸트 철학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넘어섰다고 성급하게 자평하는 신유물론은 어찌 보면 칸트의 보편적 존재론을 단순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것에 불과해 보이기도 한다."(168쪽)


2.


반인간주의 담론은 인공지능의 대두와 만나 힘을 받고 있다. 이미 인공지능에 영혼이 있는 지에 대해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로봇과의 화해에 대한 문학적 상상"(189쪽)을 보여주는 일련의 소설들은 인간중심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도한다. 

더욱이 기술의 발달이 우리의 실존을 위협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되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럴 때,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정확한 성찰이다. 로봇의 창조자가 인간이고, 인공지능의 창조자도 인간이지 않는가.


"어떤 기술 진보라 할지라도 그 사회의 물적 토대라는 한계 내에서 굴절되어 현상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을 굴절시키는 토대를 검토하고 재조정하는 역할은 인간에게 맡겨져 있다. 인간을 구속하는 것도 인간이 개발한 기술을 수속하는 것도 인간이라면, 우리는 여전히 베이컨이 비판한 '종족의 우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른다."(189쪽)


물론 이것은 전통적 인간 중심주의의 순진무구한 찬가가 아니다. 오히려 위에서 말한 겸손한 주체의 촉구에 다름 아니다. 나는 저자의 다음과 같은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아가 지금의 인간을 인간으로 부르게 해온 낡은 것들과 결별할 용기를, 근대의 태동기에 요청되었던 바로 그것을 로봇을 비롯한 기계와 협력하여 다시금 발굴하고 작동시켜야 할 필요를 제기한다."(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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