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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비밀 - 통증에 관한 오해와 진실
몬티 라이먼 지음, 박선영 옮김 / 상상스퀘어 / 2022년 11월
평점 :
1.
고통은 중요한 화두이다. 붓다는 세상을 가리켜 고통의 바다(苦海)라고 했다. 고통의 인생의 본질인 것이다. 사성제(고-집-멸-도)가 이를 다루는 핵심 교의다.
당연히 기독교에서도 고통을 중요하게 다룬다. 인생의 고통에 대해 기독교적 맥락으로 진단하고 처방한 것이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저자는 이 책을 쓰다가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본 [고통의 비밀]은 고통을 과학적 맥락에서 규명하고 해석한 흥미로운 저서다. 당연히 본서가 주목하는 대상은 주로 신체의 고통이다(물론 마음의 고통을 간과하지는 않는다).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2.
본서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원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원서 제목은 역서 제목보다 과감하다. The Painful Truth, 즉 [고통의 진실] 혹은 [고통에 대한 진리]가 그것이다. 저자 몬티 라이먼은 의사이자 옥스포드대학 소속 연구원으로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한다. 그가 고통(통증)에 대해 제시하는 설명은 “우리 몸이 손상된 정도를 알려주는 기준”(11쪽)이라는 기존의 통념과 궤를 달리 한다. 그에 따르면, 고통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 위한 반응”(34쪽)이다.
심지어 이를 “통증의 정의가 아니라 통증에 관한 절대적 진실이다”라고 단언한다. 지금 그는 원제 그대로 통증의 정의가 아니라 통증의 진실, 그것도 절대적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차라리 “절대적 진리”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3.
통증이 없으면 심각한 문제가 된다. 만일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몸에 난 상처를 돌보지 못할 것이고 예기치 않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70쪽) 지금은 사실상 사라진 한센씨 병이 무서운 것은 통각신경이 마비되어 몸을 보호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통증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시그널로 작용한다.
또한 통증은 사회적이다(202쪽). 한 사회의 문화적 맥락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통증을 인식하고 전달하는 방식의 문화적, 민족적 차이”(208쪽)가 있다. 가령 가톨릭 신자가 이콘(성화)을 볼 때. 통증의 강도가 낮아진다고 한다(209-210쪽). 믿음이 통증을 다스리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fMRI 영상 결과로 확인된 것이다. 혹은 요통(허리 통증)과 관련한 특정 신념(허리는 약한 부위->요통이 이를 보여준다)은 서구인들의 근대적 믿음이다. 놀랍게도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는 그 믿음에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요통과 허리 손상의 관계가 매우 느슨하다.
“대부분의 만성 요통은 척추를 보호하려는 뇌의 과잉 반응이 원인이다. 그 통증이 가짜라거나 심각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어쨌든 뇌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통증이 조직 손상을 의미한다고 믿으면 통증 완화에는 분명히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감, 희망, 정보를 제공하는 치료법은 도움이 될 수 있다.”(217쪽)
이는 자연히 통증이 심리적이라는 부분과도 연결된다. 무슨 말인가? "통증이라는 경험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우리의 믿음과 기대로 조작할 수 있다.”(106쪽)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 법한 위약(플라세보) 효과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위약 효과를 넘어서 위약임을 환자들이 인지한 채로 사용해도 효과가 있다. “요약하면 환자들이 위약으로 알고 먹어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위약 효과기 작동하기 위해 환자를 속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환자가 알든 모르든 마음의 치유 능력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4.
[고통의 비밀]에 담긴 많은 내용들을 다 소개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여기서는 책의 초점을 밝히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 만으로도 충분히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저자의 논지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통증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몸과 마음, 문화와 사회 등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통증은 인간의 전체를 보호하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통증을 줄이고 뇌가 안정감을 느끼게 하려면 인간 경험의 모든 측면을 다룰 필요가 있다. [•••] 통증에 대한 현대적 이해는 인간을 단순히 수용체와 신경 다발로 보지 말라고 가르친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라고 가르친다. 통증을 이해하려면 우리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282쪽)
그러니까 통증은 우리를 알게 이끌어주는 훌륭한 인도자라 할 수 있다. 통증이라는 렌즈를 통해 우리를 구성하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드러난다. [고통의 비밀]은 바로 이 사실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설득력 있게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