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투르니에의 선물
폴 투르니에 지음, 오현미 옮김, 이은혜 그림 / 새물결플러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폴 투르니에는 (의사로서) 심리학자이며, (신자로서) 신학자이다. 그가 쓴 책들은 신학과 심리학의 통찰이 교차한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그의 책에는 인간에 대한 긍휼과 하나님에 대한 묵상이 담겨 있다.

내가 이번에 읽은 소품 책자인 <선물>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폴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선물이라는 렌즈를 통해 다채로운 인간 심리를 깊숙이 들여다보는 동시에 이를 통해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사랑을 들여다본다.

오랜 만에 투르니에의 책자를 읽은 체험은 만족스러웠다. 역시 그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눈이 번쩍 뜨인 부분은 우리 시대에도 적실하게 와닿는다고 하는, 거의 시간을 초월한 시의적절성이었다.

가령 나는 이 책자에서 MZ세대에 대한 설명을 찾아볼 수 있었다. 원서로는 이미 수십여 년 전에 출간되었는데, 이게 말이 되나 싶을 게다. 하지만 당대 청년에 대한 투르니에의 설명은 딱 우리 시대의 청년에 대한 이야기다.

"우라는 변화의 시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 젊은 세대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 그리고 그 후 시대를 정복한 기술 문명의 산물들이 쏟아졌다. 라디오, 레코드 음악, 텔레비전, 자동차, 냉장고 등은 이전 세대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모험이었던 반면에, 젊은 세대에게는 이미 요람에서부터 완성된 형태로 보아왔던 진부한 것들이었다. […] 이런 작은 경이로운 발명품들은 우리같이 여전히 다 큰 어린아이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매혹적인 장난감이지만, 젊은 사람들에게는 삶의 흔해빠진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
이 세대의 젊은이들이 깊이 불행해하는 이유는 감사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할 줄 아는 것은 오직 권리를 욕하는 것이다. […] 행복 또한 하나의 권리다. 현대인들이 발명해낸 모든 편리한 수단에도 불구하고, 노력으로 행복을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우리는 누구나 다 욕구 불만 콤플렉스에 걸린다. 모든 것에 대해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선물도 기쁨이 되지 않는 것이다. 사랑조차도 가치가 절하된 채, 깊은 헌힌 없이 남녀가 서로 주고받는 진부한 서비스가 되어버린다. 내가 이만큼 줄 테니 너도 이만큼 달라는 식이다!" (51-53쪽)

아마도 MZ세대의 상황을 이렇게 짧은 지면 안에서 이보다 더 잘 묘사하고 분석한 글을 찾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전통과 형식에 대한 존중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대한 투르니에의 우려도 우리 시대에는 더욱더 잘 와닿는다.

"그렇다, 사랑은 절대로 추상적이지 않다. 사랑은 외적으로 나타나야 하고 개인적인 선물로든 의례적인 선물로든 표현되어야 한다. 사회 일반의 관행, 예의범절, 여성을 대하는 친절한 태도 등을 공허하고 형식적인 겉치레라고 멸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속아넘어가지 말자. 이런 관습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이런 범절은 타인을 기쁘게 해주려는 목적을 가지며, 타인을 기쁘게 함으로써 자신도 삶의 기쁨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된다." (87쪽)

이것 뿐이겠는가. 투르니에의 깊고 예리한 통찰은 도처에서 발견된다. 분량은 작(고 금방 읽히)지만,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하나 굳이 더 소개할 필요는 없으리라. 지금 바로 읽어보시라.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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