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는 처음입니다만 - 톰 라이트의 하나님 나라 신학 입문
마를린 바틀링 지음, 박장훈 옮김 / IVP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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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전문가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나름 열심히 공부했다. 그가 쓴 것이나 그에 대해 쓴 것 모두 적잖이 읽었다. 하지만 턱도 없이 부족하다 여긴다. 워낙 많이 써제끼니 제대로 따라잡을 수 있겠나. 흡사 신학계의 지젝을 보는 것 같다. 

톰 라이트가 많이 써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저 수다쟁이라서거나 타고난 달변가라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가고자 하는 고투의 결과일 것이다. 16세기에 루터가, 20세기 바르트가 어마어마한 분량의 글을 남긴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들의 핵심 주장은 의외로 간단하다. 하지만 낯선 주장이라 쉽게 받여들여질 리가 없다. 해서 같은 말을 다양한 상황과 맥락에 맞춰 수도 없이 변주해야 한다. 자기 주장을 과감하게 선포하고, 학계의 논쟁자들과 치열하게 싸워야 하고, 일반 대중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마를린 바틀링이 내놓은 톰 라이트 입문서는 유용하다. 매우 깔끔한 요약과 다소 조악한 그림으로 구성된 소품이다(솔직히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별 하나 뺀다). 당연히 어렵지 않게 금방 읽어치울 수 있다. 

그러나 그게 또 문제일 수도 있다. 금방 완독하고, 그 결과로 나름 머릿속으로 정리도 될 것이다. 그런데 그가 준 충격이 잘 와닿을 것인가는 의문이다. 내가 생각할 때 저자는 그 점에 대해서 충분히 전달한 것 같지는 않다. 

하나 이 분량으로 담아내는 입문서의 한계일 지도 모르겠다. 이를 해결하려면, 두 가지 해법이 있다. 하나는 이 책을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최소 두세 번을 읽어서 그 패러다임의 골자가 우리 내면에 새겨지게 하는 것이다. 여러 번 읽고 나면 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파괴력이 와닿을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이 책을 지도 삼아 톰 라이트의 책들을 하나하나 섭렵하는 것이다. 굳이 두툼한 전문서적들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저 대중을 상대로 쓴 책들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제법 많은 권수가 국내에 소개되었을 뿐더러, 동시에 각 권별 분량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모두 공통적으로 전제되어야 하는 것은 성경과 신학(가령 이신칭의와 같은 구원론이나 천국과 지옥 같은 종말론 등)에 대한 일정 수준의 지식이다. 그래야 이 지식을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의 인식틀이 무너지는 충격을 경험할 수 있다. 


"메시아의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새 창조의 개념에 맞춰 조율된다는 의미다. 소대 철학자들에게 사고란 세상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식에 맞게 우리를 조율하는 작업이었다. 바울에게 사고란 세상과 하나님의 새 창조가 마땅히 이루어야 할 조화에 부합하는 것이었다."(95-96쪽)


톰 라이트가 빌립보서 강연의 QnA 시간에 들려준 말이다. 이를 잘 곱씹어보면, 새로운 사고 형성은 상당한 수고를 요하는 조율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톰 라이트는 처음입니다만]을 처음으로 펼쳐드는 것은 이를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



p.s.

여기까지 써놓고 나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극히 초보적인 지식만 갖춘 성도야말로 이 입문서의 최고 수혜자일 것 같다. 애초에 무너뜨릴 지식이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면 될 게 아닌가. 물론 이런 분에게 딱히 드릴 말씀이 없다. 나보다 더 잘 받아들이실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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