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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는 밥이다
미즈노 겐조 지음, 박소금 옮김 / 선한청지기 / 2014년 10월
평점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 말미에 나오는 말이다.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그것도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은 말한다.
하나님의 뜻이니 마땅히 따라야 할 바다. 그러나 만만한 게 아니다. 기뻐하되 항상 기뻐하고, 기도하되 쉬지 말고 기도하고,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이러니 막막해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에 뇌리를 스치는 구절이 이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그러니까 내가 구체적으로 모방할 수 있는 방도를 제시하고, 모방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믿음의 선배를 찾아야겠다는 뜻이다. 가령 쉬지 말고 기도하는 모본을 구하라면, 부활의 로랑(로렌스) 형제나 러시아의 어느 익명의 순례자에게 가르침을 받는 식이다. 물론 전자는 <하나님의 임재연습>을 말하고, 후자는 <순례자의 길>을 가리킨다.
법사에 감사하라는 명령에 대해서는 누구에게 배워야 할까? 나라면, 미즈노 겐조에게 가르침을 청하겠다. 즉 그의 시집, <감사는 밥이다>를 보겠다는 뜻이다. 그는 일본어 음가가 기록되어있는 아이우에오표를 따라 눈을 깜빡여서 문장을 만들어낸다. 그 수고로운 작업을 통해 써낸 시들을 묶어서 네 권의 시집을 냈고, 한국에서는 네 권에 수록된 시들을 추려서 <감사는 밥이다>라는 제하에 한 권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물론 여러분 가운데 <잠수종과 나비>를 연상하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엘르>의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가 뇌졸증으로 쓰러진 뒤에 3주 만에 정신을 차렸으나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왼 쪽 눈꺼풀 하나 밖에 없다. 그 눈꺼풀을 움직여 써낸 애세이집이 <잠수종과 나비>이고, 이것이 나온 뒤에 그는 곧 세상을 떠났다. 잠수종 안에 갇히 나비처럼 속박된 15개월은 이 작고 아름다운 에세이집에 응축되었다. 개인적으로도 참 좋아하고,1997년에 <잠수복과 나비>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것을 후루룩 읽었다(지금은 <잠수종과 나비>라고 제목을 바로 잡아서 펴낸다).
하지만 <잠수종과 나비>라는 이 아름다운 소품이 15개월만에 나온 반면, <감사는 밥이다>는 미즈노 겐조가 이십대 중반에서부터 사십대 중반까지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 쏟아낸 시들의 엑기스를 모은 것이다(일본그리스도교단출판국에서 정선시집으로 펴낸 것을 한국에서 번역출간하였다). 1975년부터 시작해서 매 3년을 간격으로 총 네 권을 펴냈다(1975, 1978, 1981, 1984). 비록 그의 언어는 소박하지만, 그 오랜 세월 동안 흘러나온 감사의 영이 만져진다. "감사함"이라는 제목의 시를 살펴보자.
"말을 못하는
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
대신에
미소를 짓는다
아침부터
몇 번씩
미소를 짓는다.
괴로울 때에도
슬플 때에도
진심으로
미소를 짓는다"(86쪽)
풀어말하자면,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사한다. 심지어 괴로울 때에도, 슬플 때에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러한 감사를 보비가 육체 안에 갇혀지내던 15개월 동안 하는 것도 놀랍지만, 이렇게 한 평생 동안 내내 해내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런 놀라운 감사생활의 근간은 물론 진지한 믿음이다. 1946년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 여름에 뇌성소아마비로 눈을 깜박이는 것이 유일한 소통 수단이 되었다. 그러나 5년 정도 지난 후에 미야오 목사님의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의 가정에 들어왔다. 이후로는 그는 성경을 읽고, <루터 아워>나 <세상의 빛>과 같은 복음 방송을 들으며 신앙을 키워갔다. 이렇게 키워간 믿음이 그의 언어에 스며들었다. 그의 언어는 비교적 소박하나, 그의 믿음은 참으로 진실되다. 영이 맑은 소설가 미우라 야아코가 그의 시집에 주목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겐조의 시집 네 권 모두에 따뜻한 추천사를 주었다. 미우라 아야코와 아슐람 센터 주임 목사 에노모토 메구미가 따로 또 같이 추천한 "오늘 하루도"라는 시를 보라.
"신문 냄새에 아침을 느껴
차가운 물맛에 여름을 느껴
풍경 소리에 신선한 해 질 녘을 느껴
개구리 솔기에 졸음을 느껴
오늘 하루도 끝나지 않았어
하나 하나에
하나님의 은헤와 사랑을 느껴"(48쪽)
감사의 깊이가 다르다. 구절구절마다 겸손과 기쁨과 감사가 흘러나온다. 그저 겐조 시인의 발꿈치에도 채 못 따라가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한걸음 씩 나아갈 따름이다. <감사는 밥이다>는 더 깊은 감사생활을 위해 나 자신을 비추어보기 위한 거울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