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불꽃
프랑스와 까쌩제나-트레베디 지음, 서인석 옮김 / 분도출판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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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책들로 구성된 책은, 거기, 그대의 책상 위에 펼쳐진 채로 놓여 있다. 이렇게 책은 온종일 그렇게 놓여 있어야 할 것이다. 그대가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거룩한 독서의 시간이 끝났을 때에도, 그대가 열중해야 할 다른 공부가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이 책은 언제나 원천, 준거, 척도로 남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21쪽)

 

"거룩한 책들로 구성된 책"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성경을 가리킨다. 성경은 (우리 개신교의 기준을 따르자면) 66권의 거룩한 책들로 구성된 문집(文集)이다.

 

"규칙적으로 수행하는 거룩한 독서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게다. 사실 이 문장이 가리키는 거룩한 독서는 렉티오 디비나를 옮긴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배운 QT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처지에 렉티오 디비나라니?

 

사실 이 중책자가 상정하는 독자가 수도자이며, 이 중책자가 지향하는 목적은 수도자의 묵상(렉티오 디비나)을 독려하는 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중책자의 유려하게 흘러가는 문장들 속에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의 마음을 강력하게 사로잡는 힘이 있다.

 

"이 책은 언제나 원천, 준거, 척도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성경을 원천, 준거, 척도로 드높여야 한다는 당위적 언명이 아니다. 항상 원천, 준거, 척도로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의 천명(闡明)이다. 인간의 말로 보이나, 실상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 당당한 선언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우리가 말씀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하든 말씀은 언제나 원천, 준거, 척도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말씀이 우리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우리가 말씀에게 맞춰야 한다.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의 삶과 생각이 조율되어야 한다.

 

"밤기도 전에,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바로 이 책 위로 그대의 시선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저녁에 잠들기 전에 그대의 마지막 책이 되어야 한다. 태양에 앞서 오는 책, 그리고 해가 진 후의 책, 아침과 저녁, 온종일과 한밤중, 그대가 살아갈 날들의 매일에 알파요 오메가의 책, 언제나 그대의 책상 위에 펼쳐 놓아둔 책, 주님께서 그대를 위해 차려놓으신, 그대 책상 위에 진설된 빵, 그대 독방의 책상을 제단처럼 여기라."(22-23쪽)

 

사실 이 문단 때문에 다시 포스팅을 올린 것이다. 읽는 중에 저자가 천명하는 헌신의 부름이 압도적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나의 책상이 나의 제단으로 여기라는 충고를 새겨 듣느다. 우리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과연 이 만큼 심각하게 대하는 지 의문이다.

 

우리가 하루를 시작할 때에 말씀과 더불어 시작하고, 우리가 하루를 마감할 때에 말씀과 더불어 마감하는가? 정녕 말씀과 함께 하루의 문을 열고, 닫는지를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질문에 당당하게 답하기가 민망하다. 노력을 하지만, 간헐적이라서 부끄럽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사랑의 편지를 한 통 써보내셨다. 사연이 아주 긴 편지 말이다. 그분은 그대에게 매일 이 편지 보내기를 거듭하신다. 그런데 어떻게 그대가 이 편지를 화급히 받아, 읽고 다시 읽으며 그 내용을 완전히 암기할 정도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26쪽)

 

소중한 친구나 연인의 편지를 기다리는 수신자의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마음이면, 반복해서 읽게 될 것이고, 자연스레 서신의 내용을 완전히 암기하게 될 것이다. 외우라는 것이 아니라, 절로 외워질 만큼 부단히 읽는 마음가짐을 갖추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내게 있는지 자문한다.

 

책자는 얇아도, 내용은 두텁다. 성경을 대하는 자세를 바로 되새기게 한다. 한문장 한문장이 허투루 쓰인 데가 없다.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주님 안의  형제자매이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는 서로에게 배울 필요가 있다. 한 수도사의 글을 읽으며 나의 성경 읽기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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