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 천명관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19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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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물건이 하나씩 나 올 때마다 탄성을 질러댔지만 금복은 왠지 자신의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마음이 쓰라렸다.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던 거대한 생명체가 그렇게 덧없이 고깃덩어리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내장을 다 드러낸 채 해체되어가 는 고래의 처지가 마치 걱정과 자신의 처지처럼 여겨져 저도 모르 게 설움이 북받쳐올랐다. 그녀는 애써 울음을 삼키느라 손으로 입 을 틀어막고 구경꾼들 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주저앉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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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이 흐른 뒤, 링컨 부인을 위해 옛 옷가지를 살피다가, 코트호주머니에서 똘똘 뭉쳐진 작은 벙어리장갑을 발견했다. 많은 기억들이 되살아나는 바람에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작은 아이를, 아이의 착한 행실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힐야드, 앞의 글 가운데
하녀 소피 레녹스의 이야기에서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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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녀의 침대에서, 나는 그동안의 나와 달라지지 않으려고 조심했습니다. 부드럽고, 예의바르고, 정중했지요. 별로 한 것은 없지만ㅡ키스를 하고 서로를 끌어안았습니다- 원한다면, 갑자기 물이 터진 듯한 이런 탐닉이 얼마나 풍요로웠을지 상상해보셔도 좋겠네요. 우리둘 다 욕정(그럼, 당연하지요)의 물결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 바탕에는 우리가 구축해온 느리고 견고한 애정이 있었습니다. 신뢰할 만한 유대, 지속적이고 진정한 유대가 있었습니다. 나는 경험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지만-젊은 시절에는 방종하여, (말하기 창피하지만) 마블 앨리에서, 밴드박스에서, 무시무시한 울프스 덴에서 시간을 보낼 만큼 보냈고, 이전에도 결혼생화을, 건강한 결혼생활을 한 번 하기로 했습니다-하지만 이런 강렬한 감정은 나에게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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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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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버는 작업 이틀째가 되자 비로소 손에 익었다. 이상한생각이 들어 그는 잠깐 시동을 껐다. 남훈 씨는 멍하니 손바닥을 들여다봤다. 굳은살이 연해지고 조금 살이 붙었다.
변한 것은 굴착기의 레버가 아니라 자신이었던 것이다.
둥근 레버를 밀고 당기며, 남훈 씨는 춤추듯 홍이 솟았다. 뿌리도 암석도 없는 땅은 부드럽기 그지없어 그는 솜사땅 위를 걷는 듯했다.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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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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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고개를 숙이고 청년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제가… 그 사람을 꼭 만나야 하나요?"
남훈 씨는 깜짝 놀랐다.
"아니, 만나야 하냐니? 당연히 만나야 하지 않나? 아버지가 찾는다는데."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청년이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몰라? 왜 몰라?" 남훈 씨는 성을 냈다. 고요하게 멈춰있는 청년의 눈동자가 그의 마음을 불안케 했다. "자네는방금 아버지를 잃었어. 얼마나 슬프냔 말야! 그런데 그런아버지가 살아계시다, 그러면 얼마나 보고 싶겠나? 안 그래?"
"그건 아버지께서 평생 저를 돌봐주셨기 때문에 그런 거죠."
청년이 말했다. 남훈 씨는 화가 나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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