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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이야기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평점 :
몇 달 전 '『초콜릿 우체국』두 번째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황경신 작가의 신작 『국경의 도서관』이 출간됐었는데 『초콜릿 우체국』이 12년 만에 새 옷을 입고 new edition으로 다시 출간됐다. 12년 만에 새 옷을 입고 출간된 『초콜릿 우체국』은 전체 원고를 작가가 고쳐 썼다는 소개 글에 황경신 작가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황경신 작가가 세세하게 보살피는 건 작가의 오랜 원고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까지도 보살펴준다는 것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어쩐지 알 것 같다. 12년 전 출간된 『초콜릿 우체국』과 새 옷을 입은 new edition『초콜릿 우체국』은 띠동갑이 됐고 같은 디자인 구성으로 갈색 표지의 『초콜릿 우체국』과 파란 표지의 『국경의 도서관』을 나란히 놓고 보니 두 권의 책이 마치 쌍둥이가 된 것 같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초콜릿 우체국』역시 감성적인 글들로 나를 무장해제 시킬 거라 믿기에 기대감이 커져만 간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펼쳐져 주인공들마저 그 순간이 꿈이 아닌지 의심하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조차도 이 글들을 읽는 지금이 꿈은 아닌지 몇 번이고 의심을 했다. '경험은 중요하지만, 상상력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조 홀드먼의 『헤밍웨이 위조사건』 인용 글처럼 황경신 작가의 생생한 상상력은 내내 몽환적인 느낌으로 독서를 하는 경험을 선사해줬다. 나에게도 믿기 힘든 순간을 경험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면 나는 그 순간을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로 의심을 해야 할지, 그 순간 내가 황경신 작가의 글 속에 갇혀있는 건 아닌지로 의심해봐야 하는 건지 괜한 걱정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황경신 작가의 글 속에 갇힌 건 아닌지 의심을 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의 에너지는 충분히 충전됐다.
가장 깊은 허무, 속이 텅 빈 절망과 희망. 유령. 세상의 죽음. 더 이상 욕망도 집착도 슬픔도 없는 세상의 죽음. 위험이 위험으로 느껴지지 않고, 상처가 상처로 느껴지지 않고, 즐거운 노래를 들으며 '그것 참, 즐거운 노래군'생각하고, 슬픈 노래를 들으며 '이것 참, 슬픈 노래군'생각하고, 세상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커튼이 드리워진 것처럼, 외롭지도 않고 쓸쓸하지고 않고 눈물 나지도 않는, 그런 밤. p.246-247
같은 여성들에게 호감과 동경이 되는 여성을 가리키는 신조어 '걸크러쉬'가 유행어가 되어 번지고 있다. 범상치 않은 비주얼, 일명 '센언니' 캐릭터의 연예인들 혹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숏커트 스타일로 보이시한 매력을 뽐내는 연예인들의 이름 앞에 수식되어 여기저기서 불려져도 좀처럼 인정하기가 힘들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나도 이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꽉 막힌 채 늙은 건가, 걸크러쉬의 진짜 뜻을 오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탄해하고 있는 요즘인데 황경신 작가의 감성 넘치는 글들을 읽다 보니 황경신 작가야말로 걸크러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감성 넘치는 글뿐이랴, 황경신 작가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글을 아주 꾸준하고 성실하게 쓰고 발표하니 작가로서의 태도까지도 호감과 동경의 대상이다.
『국경의 도서관』에선 절판된 『솜이의 종이피아노』의 글들이 함께 실렸고 『초콜릿 우체국』은 작가가 원고를 고쳐 썼다고 한다. 황경신 작가의 신작 중에서 예전 글들을 찾아내고, 이전 책과 새 버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 세세하게 비교 분석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황경신 작가의 글은 그렇게 머리로 읽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덮어두기로 했다. 절판된 도서의 글을 함께 넣어 신작 『국경의 도서관』을 발표하고, 원고를 고쳐 쓰고 새로운 옷을 입혀 『초콜릿 우체국』을 다시 내놓기까지 책에 담아내지 못한 황경신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작가와의 만남 자리가 생길 법도 한데(그런 자리가 생긴다고 행사장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사는 것도 아니지만) 조용히 넘어가는 게 섭섭하다. 어디서 왼손을 위한 장갑을 구해서 책을 만지면 작가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기라도 바라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우선 일곱 송이의 아이리스와 초대장이 날아오기부터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