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66년 1월 14일, 뉴질랜드. 알리스테어 로더백이 호키티카 마을에 도착한 날 외딴 오두막에서 살던 크로스비 웰스가 살해됐고, 창녀 안나 웨더렐은 아편 중독으로 죽을 뻔하고, 젊은 갑부 에머리 스테인스는 실종됐고, 프랜시스 카버는 출항했다. 크로스비 웰스의 집과 안나 웨더렐의 옷에서 정체불명의 금이 발견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스터리 한 죽음과 사고, 실종에 어떤 식으로든 곤경에 처해있는 12명의 사람들이 크라운 호텔 흡연실에 모이고 우연히 흡연실을 찾은 월터 무디는 비밀모임에 함께하게 된다.

 

2016년 드디어 한국에도 엘리너 캐턴의 『루미너리스』가 출간됐다. 2013년 맨부커상 수상작이고 당시 28세였던 엘리너 캐턴은 역대 최연소 수상자이며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원서는 맨부커상 수상작 중 최고 분량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2013년 말경에 출판사에서 경사스러운 『루미너리스』 계약 소식을 알려온 게 엊그제 같은 것은 절대 아니고 마치 전생처럼 느껴지는데 드디어 이 작품을 한국 독자들도 만날 수 있게 됐다. 800페이지가 넘는 영문판 분량에 놀랐던 가슴은 1200페이지에 육박하는 한국어판에 두 번 놀라게 된다.

 

맨부커상 수상작품이라는 타이틀은 『루미너리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데 크게 한몫했다. 개인적으로 아직 안 읽어본 맨부커상 수상작은 있어도 읽고 실망했던 맨부커상 수상작은 없었기에 맨부커상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독서 초반 방대한 페이지와 수많은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얽혀있는 복잡한 관계에도 기대 이상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란 확신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만약 지난주에 이 모든 난리법석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나한테 물어봤다면, 난 그 유대인이라고 했을 거야. 어제 물어봤다면 미망인이라고 했겠지. 오늘 오후에 물어봤다면 중국인이라고 했을 거고. 그런데 지금은? 글쎄, (…)"

 

방대한 이야기가 흡인력 있게 읽히지만 놓치는 것 없이 잘 따라가고 있는 건지 머뭇거리며 다시 뒤돌아 보는 것도 잠시, 생각에 잠겨 혼자 있으면 세상이 고요하게 흘러가 놀라운 것처럼 집중력을 가지고 고요하게 책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영국 이주민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하고 마오리족은 점점 자신들의 토지를 잃어가는 1860년대 뉴질랜드 금광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묘사는 물론이고 정교하면서도 강렬한 서사에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좀 모자라는 사람들만이 우연이라는 걸 믿는 법이라네."라는 소설 속 대사를 의식하는 것처럼 작가 엘리너 캐턴은 세심하고 밀도 있는 구성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며 몰입도를 높여준다. 긴장감 넘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놀랍도록 생생하게 펼쳐진다.  

 

두 번째 작품으로 맨부커상 수상이라는 작가의 놀라운 이력만큼이나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루미너리스』를 읽어나가면서 과연 미스터리가 어떻게 풀리게 될지 그 끝이 궁금하면서도 이면엔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방대한 책 두께와 수많은 등장인물에 버거워하고 겁먹었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크라운 호텔의 13명의 남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호키티카 마을에 정이 들어 이야기가 끝나자 아쉽고 섭섭했다. 마치 시리즈처럼 호키티카에 또 다른 미스터리 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