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연애소설
이기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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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아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기호 작가님의 신간 소식이 들려왔다. 벌써 세 번째 짧은 소설집이란 소식에 작가의 꾸준함과 성실함에 감탄하다가 『누가 봐도 연애소설』이라는 제목에 갸웃했다. 작가 이름을 잘못 봤나, 내가 모르는 동명이인의 이기호 작가가 또 있나 보다 짧게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내가 아는, 우리가 잘 아는 그 이기호 작가가 맞다. 이기호 작가의 연애소설이라니 좀처럼 상상이 가지 않지만 그만큼 작품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다.


형사님, 그거 아세요? 제가 그 긴 세월 동안 미옥이를 잊어본 적 없다는 거 아니에요. 아니, 뭐 매일같이 떠올리고 그리워하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추운 겨울날 혼자 막히는 도로를 운전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 소주를 마시고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돌아올 때 '아, 그 친구는 지금 뭐 하면서 지낼까?' 목소리라도 들어보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저한테는 바로 미옥이었어요. 그럼요, 나이가 쉰이 다 되었어도 마음만은 초등학교 졸업할 때 그 마음에서 한 치도 자라지 않은 거죠. 어디 마음이 나이를 먹나요? 세상이 먹는 게 나이지……. p.45-46 「내 인생의 영화」 


그의 눈이 더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가 봐도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 이야기가 누가 봐도 이기호 감성으로 펼쳐진다. 하필 녹색 어머니회에서 재회한 옛 연인, 치매 남편을 돌보는 할머니, 전학 가기 싫은 초등학교 6학년 커플, 긴급재난지원금이 가져다준 용기와 감정, 딸의 외국인 남자친구가 못마땅한 아버지, 사내 비밀 연기 커플의 발연기, SNS 상에서만 유지가 가능한 연애, 사이비 종교의 포교에 진심인 남자의 순정, 이별에 미련이 남은 (대부분 남자) 사람들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소설 속 상황, 감정이 자주 웃프고 때때로 뭉클하다. 마치 강풀 작가의 『순정만화』시리즈 감성이 소환돼 뭉클해지기도 하고 말랑말랑해지기도 하다가 <나 혼자 산다>에서 박나래, 장도연의 느닷없는 '그 오빠와 잘해봐' 부추김처럼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번 소설 역시 이기호 작가만이 발산할 수 있는 매력에 대책 없이 빠져들고 말았다. 


 은서는 뭉치를 안은 채 일어났다.

 "뭉치는 내가 데려갈 테니까 신고하든 소송 걸든 네 맘대로 해."

 은서는 그렇게 말하고 뒤돌아섰다. 그러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멀어져갔다. 

 찬수는 그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나도 데려가야지!"

 은서가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뒤돌아보진 않았다.

 "개는 데려가면서 나는 왜 안데려가냐구!"

 찬수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러나 은서는 끝끝내 돌아보지 않은 채 공원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p.64-65 「개만도 못한」


썸도 연애도, 마치 무슨 알바 시급처럼 숫자로 계산되었다가, 숫자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사랑이 사치가 돼버린 시기에 이기호 작가가 『누가 봐도 연애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평범한 사람들, 연애 무식자들의 이야기는 저마다의 특별함을 품고 있다. 유쾌하게 술술 읽히는 짧은 이야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30편의 짧은 이야기 속 인물들은 소설 세계 속에서 무심히 스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을 것 같다. 그들의 이야기는 결코 얕지 않고 짧지도 않다. 또한 연애소설 속에 녹여낸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독박 육아하는 아빠를 바라보는 시선, 녹색 아버지회가 아닌 녹색 어머니회, 아이들 교육과 학군 문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갑질)과 여러 사회 현상들을 건드리며 이야기의 무게감들 더해준다. 그야말로 로맨틱한 시국 소설이 아닐 수 없다.


 "그냥, 고맙다고."

 "뭐가?"

 "그냥…… 이 나이 됐는데도 옆에 친구가 있다는 게…… 그게 고맙네."

 지숙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웃었다. 성구는 지금이라고, 바로 지금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선 전혀 엉뚱한 말이 나왔다. 

 "식혜나 한 잔 더 줘. 맛있네."

 지숙이는 성구의 컵에 식혜를 한 잔 더 따라주었다. 성구는 이게 아닌데, 생각이 들었다가, 또 바로 아니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혜는 달고 또 시원했다. p.186 「식혜 같은 내 사랑 1」


여자의 세계란, 아직 그에겐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였다.

이기호 작가의 소설은 특유의 능청스러움과 유쾌함에 개성이 뚜렷하고 오직 이기호 작가만이 쓸 수 있어 대체 불가능하다. 언제나 한결같고 익명으로 발표해도 바로 알아볼 것 같은데 신작을 만날 때마다 새롭고 매번 감탄하게 되는 건 아이러니다. 이 모든 것을 연애소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요즘 말로 이기호가 이기호했다. 초등학교 6학년 창수에게 여자의 세계란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다. 한국문학 덕후인 나에게 이기호의 소설 세계란 영원히 따라 읽고 싶은 세계다. 이기호라는 장르에는 한계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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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성 인간을 위한 지적 생산술 - 천재들이 사랑한 슬기로운 야행성 습관
사이토 다카시 지음, 김윤희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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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새벽형, 아침형 인간 붐이 일어났던 시절이 있었다. 저녁시간보다 새벽,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해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면서 한정된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 된다는 것이었는데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는 패러디와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우쭐 된다는 짤이 돌아다니며 새벽형 인간 붐도 마치 유행처럼 사라졌었다. 나의 경우 새벽형 인간의 장점이 너무나도 와닿고 바람직해 보여 새벽형 인간을 지향하지만 실제 생활패턴은 오히려 불면증과 야행성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불면증으로 얻은 스트레스와 야행성 생활패턴으로 얻은 시간 낭비로 고민이 많지만 몇 년째 고치질 못하고 있는데 그런 나를 자극하는 책을 만났다. 일본 최고의 교육전문가이자 지식 보부상이라 불리는 사이토 다카시의 『야행성 인간을 위한 지적 생산술』이다.


발상력은 일을 할 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발상력은 취미생활의 즐거움도 배가시킨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도 발상력이 필요하다. 책이나 영화 등을 소개하면서 문학적 취향을 살릴 수도 있고, 응원하는 스포츠 팀의 정보를 꼼꼼히 체크해서 경기를 리뷰하거나 승부를 예측할 수도 있다. 어떤 취미라도 발상력이 더해지면 가치도 높아진다. p.122


영화 <캐쉬백>에서 실연의 아픔에 고통받는 남자 주인공 벤은 불면증과 시간 정지 능력을 얻게 된다. 잠을 못 자 남들보다 8시간이 더 생기게 되고 그는 근처 마트에서 야간근무를 하며 돈을 벌고 가끔씩 시간을 멈춰 사람들의 모습을 크로키하며 지루한 시간을 극복한다. 사이토 다카시의 『야행성 인간을 위한 지적 생산술』을 보자마자 <캐쉬백>의 벤이 시간을 벌게 되는 것처럼 나도 스트레스받으며 낭비하고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는 촉매제가 되어 줄 거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꿩 대신 닭, 이가 없으면 잇몸이다. 새벽형 인간이 되지 못하더라도 밤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인간으로의 변신할 수 있다면 이건 변신의 차원을 넘어서 진화가 될 일이었다.


 변화하고 연결되는 언어의 속성은 지적 생산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놀라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능력도 뛰어나다. 하나의 키워드를 떠올리면 연관된 다른 키워드를 금세 불러일으키곤 한다. 지적 생산의 마중물이 될 키워드를 떠올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아이디어만 마냥 기다린다면 발상 자체가 가로막힌다. p.168


밤 시간을 활용해 매주 책 10권, TV 프로그램 50편, 영화 5~7편을 즐기면서 지식을 습득한다는 저자는 책, 신문, 라디오, 인터넷 등 교양을 쌓고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수단들을 제시한다.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지식을 향한 다양한 관심분야에 촉을 세우는 저자의 모습을 모며 '밤의 예찬', '야행성'보다는 '시간을 활용하는 습관'에 초점이 맞춰진다. 짧은 호흡의 글이지만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밤 시간을 활용한 지적 생산은 작가의 생활 습관, 다양한 책, 영화 등의 작품 인용을 통해 신뢰감을 높여준다. '지식 보부상'이라는 그의 수식어가 수긍이 된다.


 19세기 파리에는 발자크뿐 아니라 걸출한 작가나 예술가들이 많았다. 잠들지 않는 파리의 밤이 작가와 예술가들을 잉태하는 풍족한 토양이었던 셈이다. 잠들지 않는 파리의 밤을 번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당시 파리에서는 밤이면 학자와 예술가들이 살롱에 모여 자신의 지식과 감각을 열정적으로 나누곤 했다. 사르트르가 철학을 말하고, 피카소가 그림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그런 모습을 상상해보자. 화려하면서 때로는 사치스럽기도 했던 지적 생산의 토양이 19세기 파리에서는 무르익고 있었다. p.115


야행성 인간이 후회를 가지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 없음을, 시간을 잘 활용하여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음을 사이토 다카시는 『야행성 인간을 위한 지적 생산술』을 통해 알려준다. 그뿐만 아니라 독서, 영화 감상을 통한 발상법을 통해 예술, 문화의 중요성도 일깨워준다. 저자의 메시지는 자기개발과 더불어 응원의 메시지가 되어 나의 생활습관으로 인해 내가 처한 환경, 그에 대한 나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는 것 같아 든든하다. 그것을 증명하는 것은 독서를 끝낸 내 몫이다. 나의 밤이 만들어낼 잠들지 않는 지적 생산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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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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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말전도 예요. 쌍커풀을 만듦으로써 긍정적인 마음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아이가 있는데, 교칙으로 금지하다니 이상하잖아요. 왜 미용과 교육을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하죠?

 둘 다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활동인데요. p.14


이건 말이지, 저주야.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조각들』이 출간된다는 소식 만으로도 반가움이 컸지만 관심을 주목시키는 부분은 외모에 대한 강박과 콤플렉스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라는 점이었다. 본격적인 독서에 들어가기 전 소설에 대한 짧은 소개 글만 접하고서는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정려원 배우가 연기한 여자 김씨를 떠올리며 『조각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갔다. 이마의 상처에 대한 콤플렉스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인터넷상에서는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여자 김씨 이야기보다 훨씬 무겁고 강렬할 미나토 가나에 소설을 상상했는데 막상 책을 펼치고 보니 무겁고 강렬한 미나토 가나에는 맞는데 외모에 대한 강박과 콤플렉스는 못생기거나 예쁘다가 아닌 뚱뚱하거나 날씬하다에 더 초점이 맞춰있어 영화 <여고괴담 3>에서 뚱뚱한 외모로 놀림당하지만 학교 얼짱 친구를 동경하는 엄혜주가 더 가까워 보였다. 


 규칙적으로 바른 생활을 해도 병에 걸리는 사람은 병에 걸리고, 건강에 해로운 생활을 해도 오래 사는 사람은 있거든. 적어도 타인의 겉모습이나 건강에 참견할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지 않을까?

 있다고 한다면 의사나 헬스클럽 트레이너가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을 대할 때뿐이야. 그 점에서 히사노 너도 해당되네. p.240-241


걔의 진짜 기분 같은 건 분명 아무도 모를 거예요. 있는데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도려냈으니까. 

미스재팬 출신 미용의사 히사노가 도넛에 둘러싸여 자살한 소녀 유우의 죽음을 뒤쫓는다. 그 과정에서 엄마 세대의 이야기와 딸 세대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독특한 짜임과 구조로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펼쳐가며 하나의 장르가 된 미나토 가나에 미스터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히사노의 인터뷰로 이어진 7명의 증언으로 요코아미와 유우의 과거를 따라가는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화자들의 생생한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소설의 구조는 독서의 집중력을 높여준다. 천성이 어둡고 음습하다고 미움받는 요코아미와 명랑하고 건강하게 살찐 유우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미나토 가나에가 전하는 외모 강박에 대한 강한 메시지가 전해지면서 함께 공감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는가 하면 어느 지점에선 찔리기도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소설 속에 녹여져 미스터리 장르의 재미와 작가가 전하는 문제의식에 대한 경각심이 진하게 정해진다. 미스터리에 집중하며 흡인력 있게 소설을 읽어가는데 어느 순간 슬픈 감정이 휘몰아쳐 소설의 공기가 달라져 있는 것도 작가의 놀라운 내공이다. 왜 소녀가 도넛에 둘러싸여 자살했을까에 대한 독서 초반의 호기심은 어느새 도넛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먹먹해진다. 예전에 영화 <지슬>을 보고 난 후 오랫동안 감자를 못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분간은 도넛을 먹지 못할 것 같고 도넛의 구멍을 오래 생각하고 마음에 품을 것 같다.


 "도넛은 간식일 뿐만 아니라 마법의 도구이기도 하거든."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도넛 구멍 너머로 저를 보면서. 엄마는 계속 말했어요.

 "자기가 보고 싶은 풍경을 떠올리면서 구멍 건너편을 보는 거야. 그러고 나서 그 도넛을 먹으면 구멍 너머로 그린 풍경이 현실이 돼. 그러니까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데, 엄마는 도넛을 못 먹으니까 유우가 먹어줄래?" p.264-265


"야에의 도넛은 마법의 도넛이야."

개인적으로 미나토 가나에 미스터리의 가장 큰 강점을 결말을 알고 다시 읽어도 압도적인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꼽는데 이번 『조각들』 역시 그 계보를 이어가는 작품이었다. 거기에 외모 트라우마라는 범상치 않은 소재와 사회적 메시지가 더해져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전해줬다. 오직 미나토 가나에 소설 세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캐릭터들과 그들의 생생한 심리묘사, 예측조차 쉽지 않은 압도적인 스토리는 자기복제가 아닌 끝없는 진화로 독자들의 만족감과 기대감을 키워준다는 것을 이번 작품 『조각들』에서도 증명해주었다. 다음 작품에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된다.

더불어 예전엔 크게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올해 초 『일곱 개의 회의』 이케이도 준을 시작으로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혼다 데쓰야, 마스다 미리에 이번 『조각들』의 미나토 가나에까지 비채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일본 소설 작가진들이 장난이 아니다.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출판사가 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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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어서 병을 이기는 법 - 몸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새로운 과학적 방법
윌리엄 리 지음, 신동숙 옮김, 김남규 감수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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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마디로 이 책은 음식을 이용해서 건강을 증진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전문가와 대중들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최고의 안내서다. 이 책은 과학적이고, 포괄적이며, 관련 사실을 처방과 연결지었고, 무엇보다도 실용적이다! 이 책은 사람들의 식습관뿐 아니라 의료까지 대대로 변화시킬 것이다. 

- 앤드류 C. 본 에센바흐, 의학박사 추천사

 

우리 몸속에는 암이 자라고 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말이다.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심각한 정보 과잉의 시대다. 쏟아지는 각종 정보, 지식에 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많고 그만큼 가짜 정보도 넘쳐나고 있다. 백종원이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가짜 백종원 레시피를 보고 이를 바로잡고자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정보 과잉 시대가 가지고 있는 정보의 신뢰도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음식과 음식이 건강에 끼치는 영향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연구결과는 매일 커피 6잔을 마시면 장수에 도움이 된다고 하고 어느 연구 결과에서는 매일 커피를 마시면 뇌졸중, 인지 기능저하를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건강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요즘 이에 대한 정확한 정보에 대한 요구도 증가하고 있다.

 

누구든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한껏 누릴 수 있도록 최대한 늦은 나이까지 젊음과 활력을 유지하기를 원한다.

지금껏 나는 건강이라면 자신이 넘쳤었다. 건강을 위해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딴 세상 이야기나 마찬가지라 관심도 없었다. 식습관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관리는커녕 건강을 해치는 음식들을 끼고 살기도 했었다. 그러던 중 작년 크게 아픈 일이 있기도 했고 건강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일이 생겨 건강에 대한 남다른 자신감은 실종된 상태가 되었다. 거기에 최근 의료인들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일이 더해져 내 건강과 그 기초가 되는 식습관을 고치고 지키는 일에 갑작스러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중인데 그런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책을 만나게 됐다. 윌리엄 리의 『먹어서 병을 이기는 법』은 책의 두께에 놀라 부담스러웠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중요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을 거란 기대감이 높아졌다.  

 



 곧 엄마가 될 사람들은 자기가 먹는 음식이 두 사람 몫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뱃속의 태아를 생각해서 틀림없이 음식을 가려 먹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임신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먹는 음식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무려 39조 마리나 되는 생명체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39조라는 숫자는 바로 인체의 마이크로바이옴을 구성하는 박테리아 개체수다.

 장 박테리아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이면 소화뿐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생리화학적인 도미노 효과가 시작된다. 잘 관리된 장 박테리아 집단은 암이나 당뇨 같은 병을 물리치는 힘을 키우고, 상처 치유력을 높이고, 심지어 더 사교성 있는 성격으로 만드는 화학물질을 방출하라는 신호를 뇌에 보내기도 한다. 인류는 염증성 장 질환, 우울증, 비만, 심혈관 질환, 파킨슨병 같은 다양한 질병을 이겨내는 데 마이크로바이옴이 어떻게 기여하는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단계에 있다. p.234



 

음식으로 병을 이길 수 있다.

우리의 식습관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음식들과 그 음식이 우리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무조건 좋거나 무조건 나쁘다고 알고 있었던 음식들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수많은 연구결과와 그에 따른 명쾌한 정리들은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던 정보와 즐거움이다. '어떤 김치를 먹든 체지방, 혈압, 당 민감성을 감소시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그 효과는 안 익은 김치보다 익은 김치가 더 컸다'라는 문장을 외국 의학박사 책에서 만나게 되는 반가움과 즐거움이 펼쳐지는가 하면 건강에 좋은 조리법, 보관법 등을 살펴보며 우리 집 주방과 냉장고를 점검하게 해주고 음식으로 몸을 치유하는 5X5X5플랜을 제시하며 그에 따른 식단과 레시피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500페이지가 넘는 알찬 본문과 그에 이어지는 선호식품 목록, 건강위험도 측정 등의 부록은 책이 전하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음식의 완벽한 정보와 지식의 집약체가 되어주는 것은 물론이고 내 생활과 식습관, 건강을 되돌아보고 점검할 수 있게 도와주며 유익함과 즐거움을 동시에 전해준다. 

 

지금이야말로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선택하는 방식을 개선할 때다.

윌리엄 리의 『먹어서 병을 이기는 법』은 현대인의 식습관과 건강에 필요한 정보들의 깔끔하고 체계적인 완벽한 정리에 감탄이 이어지며 건강을 지키기 위한 음식에 대한 완벽한 정보와 지식의 집약체로 더없이 좋은 책이라는데 쉽게 동의가 된다. 책이 담고 있는 수많은 정보와 윌리엄 리 박사가 전하는 건강 실천법을 명쾌하게 정리하기에 힘겨움을 느끼고 있지만 『먹어서 병을 이기는 법』은 좋은 것 투성이다. 누구에게 권해도 좋은 책이고 누구나 알아야 할 것들로 가득한 책이라는데 모두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작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제대로 된 공부를 해도 좋고 그때그때 관심 있는 부분 찾아 읽어도 좋을 책이다(그런 점에서 이토록 방대한 지식을 다루면서 색인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조금 아쉽다). 필기구와 포스트잇 플래그를 챙겨두고 독서를 시작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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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생각하는 인간 편 - 지적인 현대인을 위한 지식 편의점
이시한 지음 / 흐름출판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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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지식을 전달하지만 그 지식들을 관통하는 거시적인 흐름을 꿰뚫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재미와 인사이트를 전하는 책.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효용입니다.


'지식 편의점'이라니 너무나도 탁월한 네이밍이다. 정말 존재하는 장소라면 일을 삼고 들리며 즐겁게 가사를 탕진하고 단골손님이 되고 싶은 곳이 될 것 같다. 독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끌기에 너무나도 좋은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책 제목만으로 사용하기엔 조금 아까운 감도 있다. 더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시켜 브랜딩을 해도 성공을 보장할 것 같은 성공 프리패스 네이밍이 아닐 수 없다. 더군다나 저자는 <책 읽어드립니다>의 도서 선정 위원과 <시한책방>의 책방지기로 유명한 이시한 북튜버에 출판사는 흐름출판사다. 그러니까 『지식 편의점』은 흥행이 안 되면 이상한 책이 되었다.

 

지식 편의점 시리즈의 첫 번째 생각하는 인간 편은 세 단계 레벨 질문하는 인간 - 탐구하는 인간 - 생각하는 인간으로 구성되어 18권의 책들을 살펴보며 이야기를 이어가고 독자들에게 지식 세례를 끊임없이 선사한다. 너무나 유명하지만 내 독서 스타일과는 맞지 않는 책들, 나에게 어려운 책이라는 판단에 독서 목록에조차 넣어둔 적 없었지만 나 빼고 다 읽는지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오랫동안 봐서 어느새 익숙하고 친근해진 책들을 다룬 목록을 보며 잠깐 겁을 먹기도 했지만 이 책의 저자는 안 읽은 책 읽은 척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읽은 척 책방'으로 구독자들을 열광하게 만든 <시한책방> 책방지기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등의 책들을 이제 나도 어느 정도 아는 척 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유럽의 미술관에 가보면 기독교와 서양의 문화가 얼마나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에게 14세기 이전 작품들은 조금 뻔하고 재미가 없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14세기 전에는 그림을 그릴 때 거의 무조건 성격의 내용을 담아야 했거든요. 성화聖畵를 그리다 보니 파격은커녕 약간이라도 창작적인 시도가 이루어지면 불손한 일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으니, 그림은 늘 정형화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인 가운데는 성경의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그림의 내용도 잘 와닿지 않아요. 반면 서양인들은 꼭 신앙심 때문이 아니더라도 성경을 문화로써 알고 있는 경우가 많아 조금 더 쉽고 재미있게 감상하더라고요.

 하지만 서양 문화를 이렇게 헤브라이즘의 배경 하에서만 판단하는 것은 반쪽짜리 이해입니다. 이런 경향에 반기를 든 것이 바로 르네상스운동입니다. 과거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간 중심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르네상스운동의 핵심 맥락입니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전통을 일컫는 말입니다. 로마제국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중세는 신이 지배하는 세계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간성이 말살되고 신의 말씀만 존재하는 시대였지요. 그래서 르네상스 운동은 과거 신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며 신조차 인간적이었던 인간 중심의 시대인 『그리스, 로마 신화』로 돌아가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헤브라이즘 문화의 정수가 성경이라면, 헬레니즘 문화의 정수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할 수 있어요. 성경을 보는 이유가 신을 만나기 위해서라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는 이유는 인간을 발견하기 위해서입니다. p.76-77 

 

세계사, 정치, 종교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또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는 과정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독서의 집중력이 저절로 높아진다. 다루는 도서에 접근하는 작가의 관점과 그에 따른 폭넓은 지식과 교양의 예시를 쉽고 재밌게 풀어가면서 마치 『지식 편의점』에서 다루는 작품들도 쉽고 재밌을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한편으로는 다루는 책들에 대해 잘 알았더라면 이시한 작가의 관점을 따라가며 이해와 사고의 폭을 더 넓히며 작가가 전하는 이야기를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책이 가지고 있는 재미와 매력을 100% 누리지는 못하는 것 같아 반성과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실로 오랜만에 지적 허영심을 제대로 충전하며 독서의 쾌락을 맛봤다.

 

 애플의 광고가 던진 획일화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먹혔다는 것은, 대중 역시 획일화를 경계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왕이나 독재자가 다스리는 체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인류는 집단에서 개체로 점점 나아가고 있습니다. 야생에서의 생존, 외부 세력과의 전쟁 등 여러 투쟁 과정에는 일사분란한 집단적 대응이 유리했지만, 사회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어느 정도 원초적인 위협이 제거된 지금은 개체의 개별성으로 그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최소한의 사회적 생활이라는 전제 아래 최대한의 개인 발전을 지향하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p.246

 

플라톤이 말하는 아이를 공유한다는 개념을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세 명의 아빠 후보들과 그들의 관계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다루면서 세종대왕의 정치 스타일과 조선왕조 500년을 이야기하는 이시한 작가만의 다양하면서 폭넓은 시야는 독자들로 하여금 통찰력을 키워준다. 전투적으로 쏟아지는 폭넓은 지식에 책을 읽어가는 내내 감탄의 연속이었다. 한편으론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지식이 진짜 한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는데 놀라운 것은 2021년 『지적 현대인을 위한 지식 편의점』 시리즈 두 권이 출간 예정에 있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인간 편에 이어 출간될 성장하는 인간, 신이 된 인간 편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두 작품에서는 어떤 책을 다루면서 어떤 지식 세례를 선사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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