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1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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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말전도 예요. 쌍커풀을 만듦으로써 긍정적인 마음으로 학교를 다닐 수 있는 아이가 있는데, 교칙으로 금지하다니 이상하잖아요. 왜 미용과 교육을 분리해서 생각하려고 하죠?

 둘 다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활동인데요. p.14


이건 말이지, 저주야.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조각들』이 출간된다는 소식 만으로도 반가움이 컸지만 관심을 주목시키는 부분은 외모에 대한 강박과 콤플렉스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라는 점이었다. 본격적인 독서에 들어가기 전 소설에 대한 짧은 소개 글만 접하고서는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정려원 배우가 연기한 여자 김씨를 떠올리며 『조각들』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갔다. 이마의 상처에 대한 콤플렉스로 히키코모리 생활을 하며 인터넷상에서는 타인의 삶을 살아가는 여자 김씨 이야기보다 훨씬 무겁고 강렬할 미나토 가나에 소설을 상상했는데 막상 책을 펼치고 보니 무겁고 강렬한 미나토 가나에는 맞는데 외모에 대한 강박과 콤플렉스는 못생기거나 예쁘다가 아닌 뚱뚱하거나 날씬하다에 더 초점이 맞춰있어 영화 <여고괴담 3>에서 뚱뚱한 외모로 놀림당하지만 학교 얼짱 친구를 동경하는 엄혜주가 더 가까워 보였다. 


 규칙적으로 바른 생활을 해도 병에 걸리는 사람은 병에 걸리고, 건강에 해로운 생활을 해도 오래 사는 사람은 있거든. 적어도 타인의 겉모습이나 건강에 참견할 권리는 아무한테도 없지 않을까?

 있다고 한다면 의사나 헬스클럽 트레이너가 제 발로 찾아온 사람을 대할 때뿐이야. 그 점에서 히사노 너도 해당되네. p.240-241


걔의 진짜 기분 같은 건 분명 아무도 모를 거예요. 있는데 안 보이는 게 아니라 도려냈으니까. 

미스재팬 출신 미용의사 히사노가 도넛에 둘러싸여 자살한 소녀 유우의 죽음을 뒤쫓는다. 그 과정에서 엄마 세대의 이야기와 딸 세대의 이야기가 교차되는 독특한 짜임과 구조로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펼쳐가며 하나의 장르가 된 미나토 가나에 미스터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히사노의 인터뷰로 이어진 7명의 증언으로 요코아미와 유우의 과거를 따라가는데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드러나는 화자들의 생생한 캐릭터와 짜임새 있는 소설의 구조는 독서의 집중력을 높여준다. 천성이 어둡고 음습하다고 미움받는 요코아미와 명랑하고 건강하게 살찐 유우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미나토 가나에가 전하는 외모 강박에 대한 강한 메시지가 전해지면서 함께 공감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는가 하면 어느 지점에선 찔리기도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소설 속에 녹여져 미스터리 장르의 재미와 작가가 전하는 문제의식에 대한 경각심이 진하게 정해진다. 미스터리에 집중하며 흡인력 있게 소설을 읽어가는데 어느 순간 슬픈 감정이 휘몰아쳐 소설의 공기가 달라져 있는 것도 작가의 놀라운 내공이다. 왜 소녀가 도넛에 둘러싸여 자살했을까에 대한 독서 초반의 호기심은 어느새 도넛에 가지고 있는 이야기에 먹먹해진다. 예전에 영화 <지슬>을 보고 난 후 오랫동안 감자를 못 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당분간은 도넛을 먹지 못할 것 같고 도넛의 구멍을 오래 생각하고 마음에 품을 것 같다.


 "도넛은 간식일 뿐만 아니라 마법의 도구이기도 하거든."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도넛 구멍 너머로 저를 보면서. 엄마는 계속 말했어요.

 "자기가 보고 싶은 풍경을 떠올리면서 구멍 건너편을 보는 거야. 그러고 나서 그 도넛을 먹으면 구멍 너머로 그린 풍경이 현실이 돼. 그러니까 소원이 이루어지는 건데, 엄마는 도넛을 못 먹으니까 유우가 먹어줄래?" p.264-265


"야에의 도넛은 마법의 도넛이야."

개인적으로 미나토 가나에 미스터리의 가장 큰 강점을 결말을 알고 다시 읽어도 압도적인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꼽는데 이번 『조각들』 역시 그 계보를 이어가는 작품이었다. 거기에 외모 트라우마라는 범상치 않은 소재와 사회적 메시지가 더해져 기대 이상의 재미와 감동을 전해줬다. 오직 미나토 가나에 소설 세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캐릭터들과 그들의 생생한 심리묘사, 예측조차 쉽지 않은 압도적인 스토리는 자기복제가 아닌 끝없는 진화로 독자들의 만족감과 기대감을 키워준다는 것을 이번 작품 『조각들』에서도 증명해주었다. 다음 작품에선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하게 된다.

더불어 예전엔 크게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올해 초 『일곱 개의 회의』 이케이도 준을 시작으로 미야베 미유키, 히가시노 게이고, 혼다 데쓰야, 마스다 미리에 이번 『조각들』의 미나토 가나에까지 비채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일본 소설 작가진들이 장난이 아니다.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할 출판사가 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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