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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땅 - 버락 오바마 대통령 회고록 1
버락 H. 오바마 지음, 노승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7월
평점 :
드디어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회고록 『약속의 땅』이 한국에도 출간됐다. 제목도 표지도 너무나 좋은데 자꾸 미셸 오바마의 『비커밍』과 비교하게 된다. 『비커밍』과 『약속의 땅』, 정면을 응시하는 컬러의 미셸 오바마와 측면의 흑백 버락 오바마. 『비커밍』을 즐겁게 읽었던 기억은 『약속의 땅』을 향한 기대감을 끝없이 키워주는데 만만치 않은 두께의 책에서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어떤 이야기를 어떤 시각으로 들려줄지 궁금해진다.
솔직히 나는 운명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믿어본 적이 없다. 운명론은 힘 없는 자들에게 체념을, 힘 있는 자들에게 자기만족을 부추긴다고 생각했다. 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이든 우리의 유한한 고민거리에 관심을 두시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으시다. 한 번의 생에서 사건과 우연은 우리가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결정하는 듯하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신이 느끼기에 옳은 편에 서서 혼돈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내고 매 순간 품위와 용기를 발휘하여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p.98
어린 시절의 이야기와 첫 대선을 치르는 과정, 그리고 첫 임기 2년 반의 과정을 담고 있는 『약속의 땅』을 통해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는 개인적 이야기와 대통령 재임 시절 각종 정책 이야기를 유려하게 들려준다. 백악관을 친근하게 만들어 주었던 오바마는 돋보이는 스토리텔링과 필력으로 자신의 재임 시절의 이야기도 친근하게 들려주는데 덕분에 묵직한 책을 언제 어디서나 끼고 다니며 읽어내느라 바빴다. 상황들에 대한 묘사와 대화, 이야기의 마무리가 더없이 근사하다. 덤덤하고 군더더기 없는 900여 페이지의 책이라니 굉장히 모순된 표현 같지만 더 이상의 찬사가 떠오르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효과적인 공공 외교 수단은 나의 선거운동 각본에 쓰여 있었다. 외국을 여행할 때마다 젊은이들과 간담회를 가지는 것이었다. 이 생각을 처음 실현하느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나토 정상회의 기간에 3000여 명의 유럽인 학생들 앞에 섰을 때는 결과를 확신할 수 없었다. 야유를 받으려나? 장황한 답변으로 청중을 따분하게 하려나? 하지만 대본 없이 진행한 한 시간의 간담회 동안 청중은 기후변화에서 테러와의 투쟁에 이르는 온갖 사안을 열정적으로 질문했고, 우스운 이야기(이를테면 '버락'이 헝가리어로 '복숭아'를 의미한다는 사실)도 들려주었다. 우리는 간담회를 외국 방문의 정식 일정에 포함하기로 했다.
간담회는 대개 그 나라 국영 방송국에서 생중계되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든, 뭄바이에서든, 요하네스버그에서든 수많은 사람이 방송을 시청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은 국가수반이 시민들에게 직접 질문받는 광경을 참신하게 여겼고, 나는 어떤 강의보다 효과적으로 민주주의를 설파할 수 있었다. 우리는 해당국 주재 미국 대사관에 자문하여 소수 종교 신자, 소수민족, 난민, LGBTQ 학생 같은 소수집단의 젊은 운동가들을 간담회에 초청했다. 그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함으로써 자기 주장의 정당성을 국민에게 직접 소통할 수 있게 했다.
간담회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끊임없는 개인적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들은 나를 웃게 했고 때로는 눈물을 쏟게 했다. 그들의 이상주의를 보면서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젊은 조직가와 자원봉사자들을 떠올렸다. 두려움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을 때 인종, 민족, 국가의 장벽을 넘어 공유되는 유대감을 떠올렸다. 간담회장에 들어가기 전에 좌절하고 낙심했더라도 나올 때는 시원한 숲속 계곡에 몸을 담근 듯 재충전된 기분이었다. 그런 젊은이들이 지구 방방곡곡에 존재하는 한 희망을 품을 이유가 있다고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p.577-578
정치인의 책, 정치인의 회고록. 나에게 없던 독서 목록에 새로운 장르가 추가된 건 오직 버락 오바마였기에 가능했다(미셸 오바마의 『비커밍』 역시 마찬가지였다). 출간을 반가워하며 즐겁게 읽어가기 시작했지만 장르와 두께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900여 페이지의 이야기가 마냥 술술 읽히는 것도 아니지만 버락 오바마의 회고록에 대한 높을 수밖에 없는 기대치를 완벽히 부응하는 책이다. 정치인 회고록 장르의 애송이이다 보니 비교 대상이 없지만 이런 시선, 이런 통찰, 이런 서사는 오직 오바마만이 가능하다는 건 너무나도 명백하다.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오사마 빈 라덴 사살까지의 이야기를 『약속의 땅』에서 들려주고 이후의 이야기가 또 출간 예정이라고 하는데 남은 그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진다.
나처럼(?) 단 한 명의 정치인 회고록을 읽는다면 당연 버락 오바마다. 일 년에 책 한 권 읽는 사람들에게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 올해는 버락 오바마의 『약속의 땅』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 오바마만큼 작가 오바마도 너무나도 훌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