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
아밀 지음 / 비채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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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이자 에세이스트로 활동 중인 김지현 작가가 아밀이라는 필명으로 SF소설집 『로드킬』을 발표했다. 작가의 매력적인 행보만큼 SF라는 장르도, 소설의 소재와 배경도, 표지도 모두 매력적인 것들로 넘쳐난다. 얼마 전 김지현 번역가가 번역한 작품인 알베르토 망겔의 『끝내주는 괴물들』을 읽으며 무수한 문학 작품들 속 캐릭터들을 흥미로운 시선으로 읽었었는데 소설가로서 아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떤 시선으로 어떤 세계와 인물들을 만나게 해줄지 기대감을 키워준다.


짐작조차 쉽지 않은 6편의 이야기가 실려있는 『로드킬』은 남다른 몰입도로 독자들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아밀 작가가 구축한 흥미로운 소설 속 세계와 입체적인 캐릭터들, 섬세한 감정 묘사와 시선을 사로잡는 문장들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합은 독자들에게 산만할 틈을 주지 않는다. 소설이 주는 재미와 사고의 확장, 미래 사회를 통해 날카롭게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문제의식 등 작가의 내공과 기교가 그야말로 엄청난 작품집인데 소설가로서 첫 번째 작품집이라는 점은 『로드킬』의 가장 큰 반전이다. 작가의 천재성이란 이런 것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아밀 작가의 다음 소설도 당연하게 SF소설로 기대하게 되지만 새로운 장르의 작품으로 차기작을 발표한다고 해도 높은 기대심을 가지고 빠르게 챙겨 읽게 될 것 같다. 이런 세계관을 다룰 줄 아는 작가라면, 이런 인물들을 창조해낸 작가라면, 이런 문장을 쓰는 작가라면 무조건 믿고 따라 읽게 될 것 같다. 지금의 『로드킬』이 완성되기까지 작가 아밀이 탄생하기까지 작가에게 영향을 끼친 작가와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경숙은 이제 더 바랄 것이 없다. 재건축으로 지어진 반짝반짝한 새 아파트에서, 바깥 날씨도 모를 만큼 겨울에는 난방을 때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돌리면서, 먹고 싶은 것을 차려먹고 보고 싶은 텔레비전 채널을 보면서 지내고 있다. 두 아들 모두 아주 성에 차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봐줄 만한 여자에게 장가를 들였다. 죽을 때까지 먹고살 걱정은 없을뿐더러 자식들에게 들려줄 집도 있고 이 집은 계속해서 가격이 오를 것이다. 유일한 불만이라면 너무 빨리 하늘나라로 가버린 남편의 빈자리였다. 경숙은 남편이 지금 자신과 함께 세상을 보고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하다. 대기질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고, 정부에서 감염병을 위해 인구를 분산시키려는 목적으로 저개발 지역에 우선적으로 공기청정탑을 세우고, 결국 그 지역들의 집값이 껑충 뛴 이 세상.

 "아니다, 아니야. 남편이 살아 있었으면 마뜩잖아했겠지."

 경숙은 머리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모퉁이를 돌아 걷는다. 보수적인 남편이 이런 새 시대에 적응하며 사는 모습은 아무래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p.140 「오세요, 알프스 대공원으로」


범접할 수 없는 세계관과 상상력, 몰입도를 높여주는 캐릭터들과 감성, 묵직하게 건드리는 문제의식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기에 완벽한 이야기들이지만 21세기임에도 비정상적인 일들이 당연하게 벌어지는 2021년의 대한민국의 상황들은 『로드킬』의 화제성을 높여주는데 일등공신이 되어주고 있다. 지자체에서 농촌 총각과 특정 국가 유학생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정책을 세우는가 하면 숏컷 헤어스타일과 여대 출신이 트집을 잡히고 국가적 망신이 되는 2021년 여름 『로드킬』의 독서는 여러모로 많은 질문을 던져주었다. 작가는 몰랐겠지 소설 출간 즈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뉴스가 되고 국가적 망신이 되는 사태들을... 작가가 건드리는 문제의식들과 맞닿은 뉴스들이 진짜 뉴스가 된다는 사실을... 이쯤 되면 『로드킬』은 시국 소설이라 불러도 무방해 보인다.


『로드킬』로 처음 알게 된 아밀 작가는 나의 독서 목록에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김지현 번역가였다. 나의 독서 목록 중 작가의 번역 작품들을 되짚어보게 되고 창작자로서 아밀 작가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해준다. 


2021년,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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