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문학 -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
플랜투비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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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라는 단어는 아무리 자주 접해도 쉽게 친숙해지지 않는 뭔가가 있다. 강조되는 인문학의 중요성과 늘어만 가는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이해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나도 대세를 따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와 인문학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건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되는 거라는 나름의 각오까지 다지고 있는 와중에 만나게 된 1˚c 인문학은 이게 정녕 인문학 도서의 표지가 맞나 싶은 색다른 표지부터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아이디어, 사랑, 용기, 사람, 사회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40편의 짧은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사진 속에서 다루는 주제가 전하는 메시지를 간결하게 전해주는 구성은 『지식 e』시리즈에서 이미 본 적이 있다. 이 익숙한 구성의 책이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으니 낯설지만 그것도 잠시 브라질의 자발적인 헌혈문화를 위한 축구팀의 유니폼 이야기인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감동을 주며 대책 없이 책에 빠져들게 한다.

 

 

짧은 메시지를 전하는 글의 모음이라고 이 책을 마냥 가볍게만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어느 개인의, 어느 회사의, 어느 동아리의, 어느 부부의, 어느 동물의 따뜻한 이야기는 소외된 이웃, 자연과 동물들을 되돌아보게 하고 당연하게 혹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어떤 사실에 대해 깨우쳐주기도 한다. 얼마 전 한국의 여러 도시를 방문했던 판다 투어, 프리다 칼로의 불행했던 삶, 인터넷에 올라와 전 국민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줬던 어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여진 한 꼬마의 귀여운 이사 신고 편지 등 알고 있는 이야기를 책에서 만나는 재미도 있지만 버스 노선의 빨간 화살표가 지자체가 아닌 한 청년의 아이디어와 발품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몰랐던 사실이다. 지하철 계단 옆벽의 까만 줄이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려라는 사실 또한 미처 알지 못했던 일이다. 위안부의 정확한 표기법은 일본군 '위안부'라는 사실은 나를 부끄럽게까지 했던 이화외고 VANK 학생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에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사용하면서 낡을 대로 낡은 '희움' 책갈피를 급하게 살펴보니 정확하게 일본군 '위안부'리 표기되어 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하루가 더 행복해지는 30초 습관'이다.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데 30초면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이 부제를 보고 있자니 몇 초에 한 개씩 팔린다는 광고가 즐비한 드러그 스토어의 화장품들이 생각난다. 독서의 계절 가을에 이렇게 짧은 글을 묶은 책이든 만화책이든 책을 끼고 있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스쳤으면 좋겠다. 30초의 독서로 하루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광고를 넘어서 몇 초에 한 개씩 팔린다는 광고를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40편의 따뜻한 콘텐츠가 주는 감동은 책의 제목처럼 독자의 체온을 1˚c 높여줄지도 모르겠다(체감온도는 훨씬 더 높게 오를 것이다). 높아진 체온을 내 것이라 마냥 품고만 있으면 곤란하다. 사람의 체온은 36.5˚ c로 충분하다. 이렇게 높아진 체온을 어떤 방식으로 발산해 주변을 따뜻하게 해야 좋을까 고민해본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오랜 시간 고민하고 있음에도 그 시간이 행복하다. 이 열(熱)이 지난여름의 메르스 보다 더 강력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 다가오는 겨울에는 춥고 외로운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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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삭임의 바다
팀 보울러 지음, 서민아 옮김 / 놀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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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헤티를 몽상가라고 한다. 헤티는 유리병이나 깨진 유리 조각이 바다에서 오랜 세월 파도와 모래에 깎여 매끈하고 영롱한 보석형태로 된 바다유리 속에서 어떤 형상을 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바다유리는 아무런 이야기도 들려주지 못한다고, 헤티가 본 장면들은 모두 환영이라 말한다. 형상이 오래 머물지 않지만 헤티는 바다유리가, 바다와 바다가 감추고 있는 비밀들을 항상 생각하고 있다. 열다섯 살 소녀 헤티를 대하는 이성 친구들의 행동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고 어쩌면 조만간 헤티에게 첫사랑이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리버보이』, 『스타시커』, 『스쿼시』등의 작품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친근한 작가 팀 보울러의 신간 소설 『속삭임의 바다』가 출간됐다. 『리버보이』의 제스처럼 『속삭임의 바다』의 헤티도 15살 소녀다. 외딴섬 모라에서 할머니와 살고 있는 소녀 헤티를 주인공으로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팀 보울러 성장소설이 펼쳐진다. 

모라의 자랑이라 불리는 모라 섬을 상징하는 배의 50주년이자 그 배를 만든 위대한 일꾼이자 모라에서 유일하게 100살을 넘긴 퍼 노인의 생일날 퍼 노인은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모라를 향해 악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한다. 퍼 노인의 악몽이 맞았던 걸까? 모라 섬엔 폭풍이 들이닥치고 모라의 자랑은 잔해가 되었다. 그리고 폭풍과 함께 향해해 온 낯선 노파가 모라 섬에 등장하였다. 다 죽어가는 모습의 노파를 마을 사람들은 이 사태의 원인이자 악이라고 하지만 헤티는 노파가 낯설지 않다. 바다유리에서 봐왔던 얼굴이었던 것이다. 순전히 자신을 찾기 위해 온갖 어려움을 뚫고 모라에 온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헤티와 마을 어른들의 갈등은 어떻게 풀어질까? 바다유리 속 얼굴들은 누구일까? 과연 노파의 정체는 무엇일까?


작가 팀 보울러는 『속삭임의 바다』에서 모라 섬과 바다를 통해 특유의 판타지를 그려 넣었다. 다른 섬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외부와 거래가 거의 끊긴 상태의 고립된 모라 섬과 아름답고 잔인한 바다는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한 헤티의 상황을 너무나 잘 대변해준다. 헤티의 인생은 어떤 변화를 향해 꿈틀거리고 있지만 조상들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계속되는 마을 사람들과의 갈등과 소동 속에서 헤티는 그랜드 할머니에게 모라 섬이 무서워진 것 같다고 속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용감하고 당찬 소녀 헤티는 자신의 정신에 의지하며 바다에서 들려오는 속삭임에 귀를 기울인다. 

많은 성장소설의 주인공들이 그러했듯 철부지 사춘기 소녀 헤티 역시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용감하고 당차게 헤쳐나갔으며 성장소설의 대표 작가 팀 보울러는 『속삭임의 바다』를 통해 15살 소녀 헤티의 시선으로 삶과 자연, 죽음에 대한 성찰을 채워나갔다. 헤티는 용감하고 당찬 모습뿐만 아니라 사춘기 소녀 특유의 반항기도 보여주었는데 이 열다섯 살의 소녀의 고집은 보통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은 꼭 자신이 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하는 모습이 마냥 예쁘게만 보이지 않아 이제 내가 성장소설을 읽기엔 너무 어른이 된 것이 아닌가 씁쓸한 마음이 생길 정도였는데 유명한 고집불통으로 올해 상반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오베라는 남자가 스웨덴에 있었다면 이제 그 바통을 모라 섬의 헤티가 이어받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부디 내가 변한 게 아니라 헤티를 보편적인 성장소설 주인공들과 달리 사춘기 청소년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한 캐릭터의 변화이길 바라본다. 이런 변화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독자들은 열다섯 소녀 헤티가 겪는 갈등과 성장을 너그럽게 봐줄 것이다. 팀 보울러의 성장소설을 마주할 때 독자의 감성은 영원히 늙지 않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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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이사와 리쿠 상.하 세트 - 전2권
호시 요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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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소녀 아이사와 리쿠에겐 한가지 비밀이 있다. 바로 슬픈 듯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눈물을 눈동자에 고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을 아주 강하게 끌어당기지만 그 눈물에 슬픔은 없다. 그녀는 슬픔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얼마든지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다정하고 세련된 아빠와 완벽한 엄마 그리고 예쁘장한 얼굴과 특별함으로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아이사와 리쿠. 완벽해 보이지만 회사 아르바이트생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아빠와 요령 없는 완벽주의자 엄마 사이에서 쉽게 상처받는 아이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인정할 수 없다. 아빠의 불륜 상대 우치노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리쿠는 우치노가 아빠에게 선물한 앵무새를 짜부려뜨려 죽이려고 한다. 단지 엄마가 바라던 일을 했을 뿐인데 리쿠는 앵무새와 함께 엄마가 싫어하는 간사이의 고모할머니 댁으로 쫓겨난다.

엄마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시작하는 리쿠의 간사이 생활은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난폭하게만 느껴지는 고문이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친척들도 학교 친구들도 그녀에겐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오래 있을 것이 아니라 교복도 바꾸지 않고 친구도 사귀지 않을 거라 다짐하지만 간사이 사투리에 물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하지만 엄마가 먼저 돌아와 주길 바랄 때까지 참아보겠다는 다짐에 데리러 와달라는 말도,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고 꿋꿋하게 간사이 생활을 견딘다.  

 


완벽주의자 엄마 밑에서 유기농 채소와 생수만 먹고 마시며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자란 리쿠는 그녀와 함께 간사이로 보내진 앵무새와 닮아 보인다. 시끌벅적한 고모할머니 댁에선 당연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식사를 하고 친척 동생 도키짱은 새를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논다. 도쿄의 리쿠가족에게 이름도 없이 길러지던 새장속의 앵무새가 간사이 고모할머니 댁에서 고모할머니에게는 지지배배로 도키짱에겐 삐약이로 불리며 많은 친척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길들여진다.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도도한 도쿄소녀 리쿠는 간사이에 절대 익숙해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을 향한 친척과 친구들의 관심을 끊임없이 방어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주변 환경에 길들여지고 간사이 생활에 물들어 간다. 

 


호시 요리코가 그려낸 『아이사와 리쿠』는 평소 우리가 접해왔던 만화와는 조금 달랐다. 작가는 섬세한 사춘기 소녀 아이사와 리쿠를 정해진 틀도 없이 무심하게 그은 선 안에서 투박하게 그려 표현했다. 아이사와 리쿠와 엄마가 평범한 모녀관계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사춘기를 겪는 딸과 엄마가 겪는 예민한 갈등을 아프게 그려 공감을 이끌었으며 투박하고 무심한듯한 그림 속에서도 사춘기 소녀가 가진 상처와 내면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표현하여 독자들이 대책 없이 작품에 빠져들게 하였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묵직하게 이어질 줄 알았던 이야기는 간사이 고모할머니 댁에 도착함과 동시에 무장해제되는 반전으로 유쾌함을 주기도 했는데 여기엔 간사이 사투리를 경상도 사투리로 옮기면서 경상도어 네이티브 스피커인 내가 조금의 거슬림도 없이 읽을 정도로 완벽했던 경상도어 번역이 크게 한몫했다. 

 

 

리쿠는 어떻게 될까? 도쿄 학교의 학생회장은 리쿠를 이상하다고 했고 아빠의 불륜 상대 우치노는 리쿠를 무섭고 위험하다고 했다. 리쿠는 그녀 자신이 만들어 놓고 갇혀 사는 새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 간사이에서 그녀의 눈물이 통하지 않게 되고 그녀 자신조차 알지 못 했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건 분명 좋은 징조다. 도키짱에게 리쿠는 어른들은 항상 틀린다고 말한다. 이미 어른이지만 그녀보다 철이 덜 든 나는 그녀가 완벽한 그녀의 엄마를 닮기보다는 틀린 어른이 되길 그래서 슬픔이 있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길 응원한다.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되는 그때까지 달려라 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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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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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작가의 장편소설 『나라 없는 나라』는 전봉준의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다룬 역사소설이자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란 키워드로 소개되고 있으며 그에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다. 흥선대원군과 전봉준의 만남 이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고 전봉준이 체포되어 혁명이 끝나기까지의 과정을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세밀하고 역동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전봉준이 주인공이지만 자주 화자가 바뀌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며 몰입도를 높여준다. 최명희 작가의 『혼불』은 항상 읽어봐야겠다고 마음만 먹고는 10권의 방대한 분량에 쉽게 손이 가질 않아 늘 숙제를 미뤄두고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무거운데 이번에 『나라 없는 나라』를 읽게 되면서 몇 년째 미루고만 있는『혼불』보다 혼불문학상 수상작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최명희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전주를 무대로 전봉준아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킨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진다.

 

대개의 역사소설이 그러하듯이 『나라 없는 나라』역시 작가의 남성적인 강한 문체로 힘이 넘쳤다. 소설의 첫 문장 '농묵 같던 어둠이 묽어지자 창호지도 날카로운 빛을 잃었다.'를 읽는 순간 몇 년 전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를 펼쳐 그 유명한 첫 문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마주했을 때가 저절로 떠올랐다. 강인하고 단호하게 동학농민혁명을 일으키는 주인공 전봉준처럼 소설은 강인하고 단호한 필체로 힘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 가면서도 이광재 작가는 소설 속에서 정치적으로 계급적으로 다양한 처지에 놓인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가진 고민과 갈등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섬세하고 밀도 있게 묘사했다.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역사소설들이 여성 캐릭터를 전형적인 방식으로 소모하는 것과 달리 갑례와 호정이란 인물을 그려낸 방식도 조금은 달랐다.

힘 있는 문체의 역사소설을 읽다 보면 가끔 주인공이 작가로 읽히는 경우가 있다.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를 먼저 보고 이후에 원작을 읽어도 주인공이 연기를 한 영화배우가 아니라 작가로 읽히는 경우가 있었고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을 읽어도 주인공이 실존 인물보다는 작가로 읽히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하지만 이광재 작가가 우리에게 익숙한 작가가 아니라서 그런지 (책날개에 있는 작가 소개에도 작가의 사진이 실려있지 않다) 『나라 없는 나라』를 읽는 동안 주인공 전봉준은 아무런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전봉준으로 읽혀 쉽게 몰입하여 작품을 읽어갈 수 있었다.

 

『나라 없는 나라』라는 제목만 봐도 느껴지듯이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던 120여 년 전의 조선시대와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음에 씁쓸해진다. 언제 우리가 막막하지 않은 적이 있었나, 언제 우리가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 안 본 적이 있었나 생각해보면 이 책은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 언제라도 우리가 처한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처하게 될 미래의 상황과도 다를 바가 없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늘은 저리도 푸르기 때문에, 앞으로도 저리도 푸를 것이기에 우리는 가야만 한다. 다음 세상의 사람들인 우리는 반드시 더팔이를 기억하고 서럽게 살아갈 옹동네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 너머에 결핍이 이루어낸 우리의 세상이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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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
오가와 히토시 지음, 황소연 옮김, 김인곤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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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어떤 화장품을 사용하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로 어디에서 옷을 사는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그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궁금하기도 하다. 만약 철학자를 마주하게 된다면 그가 어떤 질문을 가지고 살았는지가 가장 궁금할 것이다. 오가와 히토시의 『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는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부터 현대의 아마르티아 센까지 50인의 서양 철학자와 그들이 가졌던 질문과 철학 이론을 두 가지씩 소개하여 총 100가지의 철학개념을 시대별로 엮은 책이다. 소크라테스의 '왜 겸손해야 할까?'에서 아마르티아 센의 '정의로운 경제학이란?'까지 무려 5페이지에 달하는 차례만 훑어 보더라도 철학자들의 일러스트와 두 가지 질문 그리고 그들의 철학 이론이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이 책은 50인의 철학자들이 가졌던 질문과 그 질문으로 이끌어낸 철학 이론을 그림과 함께 짧고 간결하게 풀어나가며 막연히 어렵게만 느껴졌던 철학에 대해 그 진입장벽을 낮춰주었다. 그러니까 소크라테스의 '왜 겸손해야 할까?'의 질문의 해답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더 알고자 노력하면, 지혜와 지식이 늘어나서 현명해질 기회가 생겨 진리에 한층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무지의 지' 개념인 것이다. 이렇게 시대별로 나열된 철학자들의 질문과 철학 이론은 이후 과학의 발달로 잘못된 주장임이 밝혀지기도 하고 앞선 철학자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주장이 나오며 수많은 논쟁과 문제를 일으키는 등의 현상을 다루면서 철학사를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 현대에도 유효한 질문들은 질문이 주는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거리를 주기도 한다. 

 

 

나로 말하자면 오래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10페이지도 넘기지 못하고 실패한 경험 이후 철학에 관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였음을 고백한다. 이 책의 차례를 넘기며 존 스튜어트 밀과 칼 마르크스가 등장하자 이들을 경제학 책이 아닌 철학 책에서 만났다는 점에 한참을 의아해했으며 50인의 목록을 살펴보며 50인 중 여성철학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점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했다(308페이지를 넘길 때 까지 그 씁쓸함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그런 내가 이 책을 과연 제목처럼 곁에 두고 읽을 수 있을 지 아니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이어 연속으로 철학 독서 실패로 이어갈 것인지 그 결과가 나 자신도 너무나 궁금했다. '독서'라기보다 '도전'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는데 우려와 달리 생각보다는 쉽게 책이 읽혔다. 한 철학자를 다루는데 길어야 3페이지 였고 거기에 그림까지 수록되어 철학자들의 질문과 이론의 핵심만 잘 짚고 넘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깊고 자세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에 50명의 철학자와 100가지의 개념이 금방 헷갈리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하지만 철학 입문서로 더없이 좋은 책이다. 스피노자의 유명한 명언으로 "나는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오가와 히토시의 『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는 철학을 깊게 파기 위해 넓게 파는데 적합한 책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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