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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아이사와 리쿠 상.하 세트 - 전2권
호시 요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열네 살 소녀 아이사와 리쿠에겐 한가지 비밀이 있다. 바로 슬픈 듯한 상황에서 누구보다 뜨거운 눈물을 눈동자에 고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을 아주 강하게 끌어당기지만 그 눈물에 슬픔은 없다. 그녀는 슬픔이 무엇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얼마든지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다정하고 세련된 아빠와 완벽한 엄마 그리고 예쁘장한 얼굴과 특별함으로 친구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아이사와 리쿠. 완벽해 보이지만 회사 아르바이트생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아빠와 요령 없는 완벽주의자 엄마 사이에서 쉽게 상처받는 아이다. 물론 그녀는 자신이 상처받았음을 인정할 수 없다. 아빠의 불륜 상대 우치노와 함께 한 저녁 식사 자리에서 리쿠는 우치노가 아빠에게 선물한 앵무새를 짜부려뜨려 죽이려고 한다. 단지 엄마가 바라던 일을 했을 뿐인데 리쿠는 앵무새와 함께 엄마가 싫어하는 간사이의 고모할머니 댁으로 쫓겨난다.
엄마에 대한 증오를 가지고 시작하는 리쿠의 간사이 생활은 시끄럽고 지저분하고 난폭하게만 느껴지는 고문이다. 친근하게 다가오는 친척들도 학교 친구들도 그녀에겐 성가신 존재일 뿐이다. 오래 있을 것이 아니라 교복도 바꾸지 않고 친구도 사귀지 않을 거라 다짐하지만 간사이 사투리에 물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다. 하지만 엄마가 먼저 돌아와 주길 바랄 때까지 참아보겠다는 다짐에 데리러 와달라는 말도, 힘들다는 말도 하지 않고 꿋꿋하게 간사이 생활을 견딘다.

완벽주의자 엄마 밑에서 유기농 채소와 생수만 먹고 마시며 텔레비전도 보지 않고 자란 리쿠는 그녀와 함께 간사이로 보내진 앵무새와 닮아 보인다. 시끌벅적한 고모할머니 댁에선 당연하게 텔레비전을 보며 식사를 하고 친척 동생 도키짱은 새를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논다. 도쿄의 리쿠가족에게 이름도 없이 길러지던 새장속의 앵무새가 간사이 고모할머니 댁에서 고모할머니에게는 지지배배로 도키짱에겐 삐약이로 불리며 많은 친척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길들여진다. 자신의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도도한 도쿄소녀 리쿠는 간사이에 절대 익숙해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신을 향한 친척과 친구들의 관심을 끊임없이 방어하지만 어느새 그녀는 주변 환경에 길들여지고 간사이 생활에 물들어 간다.

호시 요리코가 그려낸 『아이사와 리쿠』는 평소 우리가 접해왔던 만화와는 조금 달랐다. 작가는 섬세한 사춘기 소녀 아이사와 리쿠를 정해진 틀도 없이 무심하게 그은 선 안에서 투박하게 그려 표현했다. 아이사와 리쿠와 엄마가 평범한 모녀관계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사춘기를 겪는 딸과 엄마가 겪는 예민한 갈등을 아프게 그려 공감을 이끌었으며 투박하고 무심한듯한 그림 속에서도 사춘기 소녀가 가진 상처와 내면을 섬세하고 예민하게 표현하여 독자들이 대책 없이 작품에 빠져들게 하였다. 시종일관 진지하고 묵직하게 이어질 줄 알았던 이야기는 간사이 고모할머니 댁에 도착함과 동시에 무장해제되는 반전으로 유쾌함을 주기도 했는데 여기엔 간사이 사투리를 경상도 사투리로 옮기면서 경상도어 네이티브 스피커인 내가 조금의 거슬림도 없이 읽을 정도로 완벽했던 경상도어 번역이 크게 한몫했다.

리쿠는
어떻게 될까? 도쿄 학교의 학생회장은 리쿠를 이상하다고 했고 아빠의 불륜 상대 우치노는 리쿠를 무섭고 위험하다고 했다. 리쿠는 그녀 자신이
만들어 놓고 갇혀 사는 새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 간사이에서 그녀의 눈물이 통하지 않게 되고 그녀 자신조차 알지 못 했던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건 분명 좋은 징조다. 도키짱에게 리쿠는 어른들은 항상 틀린다고 말한다. 이미 어른이지만 그녀보다 철이 덜 든 나는 그녀가 완벽한
그녀의 엄마를 닮기보다는 틀린 어른이 되길 그래서 슬픔이 있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길 응원한다. 흘리는 눈물의 의미를 알게 되는 그때까지 달려라
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