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년 봄『오베라는 남자』를 발표하자마자 대한민국 서점가에 돌풍을 일으켰던 스웨덴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이 여전히 서점가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오베라는 남자』의 열풍이 식기도 전에 신작을 내놓았다. 고집불통(사실은 츤데레!) 오베와는 달리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소녀 모습의 표지만 봐도 『오베라는 남자』라는 작품이 주었던 신뢰감과 후광이 떠오르면서 신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만 진다. 

 

촌철살인 한마디로 뒷목 잡게 하는 소녀, 엘사. 

업무에 치여 일중독에 빠져버린 완벽주의자, 엄마. 

누구든 미치게 만드는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 할머니. 

 

이번에도 프레드릭 배크만은 개성 강하고 뚜렷한 색채를 가진 캐릭터들과 사랑스러운 에피소드들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오베에 이어 엘사 역시 베스트셀러행 티켓을 손에 쥐고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짜증 나는 캐릭터와 상황들의 연속이지만 결국엔 가슴 따뜻해지는 동화 같은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 『오베라는 남자』와 많이 닮아 보인다. 오베는 자살을 꿈꾸고 할머니는 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고, 오베는 사브, 할머니는 르노 등 『오베라는 남자』와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는 많은 지점에서 닮아 보인다. 그리고 그 많은 접점에서 『오베라는 남자』가 좋았듯이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역시 좋았다. 『오베라는 남자』가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자리를 지키며 작년 한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꼽히고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될 예정이라고 하니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역시 『오베라는 남자』와 비슷한 행보를 걸을 것 같다. 

 

서점가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내 책장에서 오베와 엘사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엘사는 고집불통 오베와도 따뜻한 기적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엄마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아닌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라 더 가슴 찡하고 뭉클한 부분이 분명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엄마 미소가 아닌 할머니 미소로 엘사를 바라보고 기억하게 될 먼 훗날을 상상해본다. 여전히 엘사는 밝은 소녀의 모습으로 나를 만나 줄 것이다. 그냥 나이만 먹어 할머니가 되는 것이 아닌, 그때까지도 기적을 꿈꾸며 늙어가는 할머니가 아닌 나 역시 기적을 만들어내는 할머니로 늙어가고 싶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그렇게 나이 먹고 늙어가는 사이사이에도 프레드릭 배크만이 주는 개성 강한 캐릭터들과 동화 같은 이야기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사람 추기경
평화방송 엮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김수환 추기경은 성직자이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큰 어른이었다. 선종 7주기가 지났지만 김수환 추기경과 관련된 서적들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며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서점가뿐만 아니라 영화계에서도 몇 년 전 <그 사람 추기경>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개봉하기도 했었다. 그 따뜻한 열기를 이어받아 소담출판사에서 『그 사람 추기경』이라는 신간을 내놓았다. 가까이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했던 17명의 사람들이 자신들이 지켜봤던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을 증언한다. 앞서 개봉된 동명의 영화 속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책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내용이 어떨지 너무나도 쉽게 연상이 되고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지만 대한민국에서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큰 어른이 존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듬직하고 좋은 것처럼 이 책이 존재만으로도 너무나도 듬직하고 좋았다. 진솔하고 따뜻한 인터뷰와 증언 속에서 여전히 김수환 추기경은 우리 곁에 살아 계시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평소 종교 관련 서적이 아닌 책에서 작가 특유의 종교색이 묻어 나올 경우 진저리치거나 질색을 할 정도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내가 종교에 대한 나름의 각오까지 하며 읽기 시작했지만 성직자로서의 모습보다 한 인간의 모습으로 초점을 맞추고 바라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김수환 추기경이 짊어져야 했던 '큰 어른'이라는 왕관의 무게에서 '추기경'이라는 타이틀은 사실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터뷰를 읽는 내내 따뜻함이 밀려왔다.
 
시인으로서 보시기에, 추기경님 언어의 특징은 어떤 게 있을까요?
추기경님의 기도문을 읽고, 저도 많이는 안 봤지만, 그분이 쓴 강론집이라든가 말씀모음집, 그런 걸 보면 크게 세련됐거나 현란하거나 그건 아니에요. 평범함, 그냥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느낌이 있지요. 당신의 삶 자체가 진실하니까요. 글도 구수한 된장찌개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글은 그 사람 삶의 내면을 반영하는 것이니까요. (이해인 수녀 p.321)
 
이해인 수녀는 삶의 내면을 반영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글에는 있는 그대로의 진솔한 느낌이 있다고 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언어의 진솔함은 그의 삶 전반에 녹아, 고인의 모습을 증언하는 인터뷰에서도 내내 그 진솔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사람 추기경』역시 김수환 추기경의 글처럼 구수한 된장찌개 같은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하얀 표지의 책이 때가 타는 것을 겁내지 않고 때가 타고 낡은 형태가 될 때까지 자주 펼쳐보고 곁에 두고 싶은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밀보장 -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의 속 시원한 고민 해결 상담소
송은이.김숙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Q. 송은이・김숙의 『비밀 보장』을 완벽하게 즐기는 방법은? 

 

"유행에 뒤처져서 그만 요즘 가장 핫하다는 팟캐스트 <송은이&김숙 비밀 보장>을 다운 받아 들어보기도 전에 책으로 먼저 만나보게 되었어요. 팟캐스트를 안 들어도 그 인기의 비결이 송은이, 김숙씨의 유쾌한 입담이라는 걸 알겠는데 책으로 먼저 읽게 되면 팟캐스트로 듣는 재미가 반감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뭐라도되겠지 : 마치 질문자가 내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로 질문자의 마음이 송은이, 김숙의 『비밀 보장』을 처음 손에 쥐게 되었을 때의 제 심정과 똑같네요. 저는 주로 출퇴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팟캐스트를 듣습니다. 많은 팟캐스트를 구독하면서 이동 중에는 귀에서 이어폰을 빼는 법이 없고, 주변의 많은 추천과 입소문을 체감하면서도 <송은이&김숙 비밀 보장>을 구독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건 출퇴근길 버스에서 팟캐스트를 듣다가 혼자 빵 터져 뻘쭘한 상황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팟캐스트의 뜨거운 인기에 힘입어 책으로도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팟캐스트를 한 번도 제대로 다운받아 들어본 적이 없음에도 그 인기로 이어진 책의 출간이 수긍이 되고 기대가 되는 마음 이면에는 질문자의 질문처럼 책으로 먼저 읽게 되면 나중에 제대로 팟캐스트를 들을 때 그 재미를 완벽하게 누리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책을 펼치는 순간 송은이, 김숙씨의 음성지원이 자동으로 실행되며 걱정은 이미 안드로메다에 도착해있었습니다.

'쓰잘데기 없는 고민에 시간을 올인하고 있는 5천만 결정장애 국민들을 위한 해결 상담소'답게 시시한 고민부터 차마 가족, 친구들에게 말 못 할 고민까지 두루 다루며 두 진행자의 유쾌한 입담이 속 시원한 고민 해결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을 책으로 옮겨내면서 팟캐스트라는 매체가 주지 못 했던 보는 재미, 읽는 재미를 더해줍니다. 두 진행자의 유쾌한 입담과 이보다 더 적절할 수 없는 지인까지 동원되어 시종일관 유쾌함과 재미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야말로 가슴이 뻥 뚫리는 사이다 해결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애정 어린 등짝 스매싱 해결까지 두 진행자의 내공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고민 해결과 재미의 핵심을 뽑아내면서 편집, 디자인까지 세심하게 담아낸 책을 때론 진지하게, 때론 배꼽이 빠지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으며 읽다 보면 왜 진작 팟캐스트를 챙겨 듣지 않았나 후회를 하게 되기도 하고 살면서 한 번쯤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이영자씨를 만나봤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게 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기획자 이름을 보는 순간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제가 즐겨 들었던(왜 때문에 과거형이 됐죠?) 팟캐스트의 진행자이기도 했던 분이 인기 팟캐스트를 컨텐츠로 책을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고목나무에 꽃이 피기 전에 그의 팟캐스트도 책으로 만나보고 싶습니다.

 

A. 뭐라도되겠지의 비밀보장 결론은?

걱정하지 말라 전해라!

팟캐스트가 주지 못하는 읽는 재미, 보는 재미를 만나게 된다!

송은이, 김숙 그 외 수많은 지인들의 음성지원 재미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콜릿 우체국 - 황경신의 한뼘이야기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달 전 '『초콜릿 우체국』두 번째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황경신 작가의 신작 『국경의 도서관』이 출간됐었는데 『초콜릿 우체국』이 12년 만에 새 옷을 입고 new edition으로 다시 출간됐다. 12년 만에 새 옷을 입고 출간된 『초콜릿 우체국』은 전체 원고를 작가가 고쳐 썼다는 소개 글에 황경신 작가의 섬세함이 엿보인다. 황경신 작가가 세세하게 보살피는 건 작가의 오랜 원고뿐만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까지도 보살펴준다는 것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어쩐지 알 것 같다. 12년 전 출간된 『초콜릿 우체국』과 새 옷을 입은 new edition『초콜릿 우체국』은 띠동갑이 됐고 같은 디자인 구성으로 갈색 표지의 『초콜릿 우체국』과 파란 표지의 『국경의 도서관』을 나란히 놓고 보니 두 권의 책이 마치 쌍둥이가 된 것 같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초콜릿 우체국』역시 감성적인 글들로 나를 무장해제 시킬 거라 믿기에 기대감이 커져만 간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펼쳐져 주인공들마저 그 순간이 꿈이 아닌지 의심하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나조차도 이 글들을 읽는 지금이 꿈은 아닌지 몇 번이고 의심을 했다. '경험은 중요하지만, 상상력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조 홀드먼의 『헤밍웨이 위조사건』 인용 글처럼 황경신 작가의 생생한 상상력은 내내 몽환적인 느낌으로 독서를 하는 경험을 선사해줬다. 나에게도 믿기 힘든 순간을 경험하는 일이 생기게 된다면 나는 그 순간을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로 의심을 해야 할지, 그 순간 내가 황경신 작가의 글 속에 갇혀있는 건 아닌지로 의심해봐야 하는 건지 괜한 걱정을 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황경신 작가의 글 속에 갇힌 건 아닌지 의심을 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을 때의 에너지는 충분히 충전됐다.

 

 가장 깊은 허무, 속이 텅 빈 절망과 희망. 유령. 세상의 죽음. 더 이상 욕망도 집착도 슬픔도 없는 세상의 죽음. 위험이 위험으로 느껴지지 않고, 상처가 상처로 느껴지지 않고, 즐거운 노래를 들으며 '그것 참, 즐거운 노래군'생각하고, 슬픈 노래를 들으며 '이것 참, 슬픈 노래군'생각하고, 세상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단단한 커튼이 드리워진 것처럼, 외롭지도 않고 쓸쓸하지고 않고 눈물 나지도 않는, 그런 밤. p.246-247

 

같은 여성들에게 호감과 동경이 되는 여성을 가리키는 신조어 '걸크러쉬'가 유행어가 되어 번지고 있다. 범상치 않은 비주얼, 일명 '센언니' 캐릭터의 연예인들 혹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숏커트 스타일로 보이시한 매력을 뽐내는 연예인들의 이름 앞에 수식되어 여기저기서 불려져도 좀처럼 인정하기가 힘들고 받아들이기가 힘들어 나도 이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꽉 막힌 채 늙은 건가, 걸크러쉬의 진짜 뜻을 오용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한탄해하고 있는 요즘인데 황경신 작가의 감성 넘치는 글들을 읽다 보니 황경신 작가야말로 걸크러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감성 넘치는 글뿐이랴, 황경신 작가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글을 아주 꾸준하고 성실하게 쓰고 발표하니 작가로서의 태도까지도 호감과 동경의 대상이다. 

 

『국경의 도서관』에선 절판된 『솜이의 종이피아노』의 글들이 함께 실렸고 『초콜릿 우체국』은 작가가 원고를 고쳐 썼다고 한다. 황경신 작가의 신작 중에서 예전 글들을 찾아내고, 이전 책과 새 버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해 세세하게 비교 분석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황경신 작가의 글은 그렇게 머리로 읽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덮어두기로 했다. 절판된 도서의 글을 함께 넣어 신작 『국경의 도서관』을 발표하고, 원고를 고쳐 쓰고 새로운 옷을 입혀 『초콜릿 우체국』을 다시 내놓기까지 책에 담아내지 못한 황경신 작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작가와의 만남 자리가 생길 법도 한데(그런 자리가 생긴다고 행사장이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사는 것도 아니지만) 조용히 넘어가는 게 섭섭하다. 어디서 왼손을 위한 장갑을 구해서 책을 만지면 작가의 마음을 알 수 있게 되기라도 바라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우선 일곱 송이의 아이리스와 초대장이 날아오기부터 기다려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866년 1월 14일, 뉴질랜드. 알리스테어 로더백이 호키티카 마을에 도착한 날 외딴 오두막에서 살던 크로스비 웰스가 살해됐고, 창녀 안나 웨더렐은 아편 중독으로 죽을 뻔하고, 젊은 갑부 에머리 스테인스는 실종됐고, 프랜시스 카버는 출항했다. 크로스비 웰스의 집과 안나 웨더렐의 옷에서 정체불명의 금이 발견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스터리 한 죽음과 사고, 실종에 어떤 식으로든 곤경에 처해있는 12명의 사람들이 크라운 호텔 흡연실에 모이고 우연히 흡연실을 찾은 월터 무디는 비밀모임에 함께하게 된다.

 

2016년 드디어 한국에도 엘리너 캐턴의 『루미너리스』가 출간됐다. 2013년 맨부커상 수상작이고 당시 28세였던 엘리너 캐턴은 역대 최연소 수상자이며 8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분량의 원서는 맨부커상 수상작 중 최고 분량이라는 기록까지 세웠다. 2013년 말경에 출판사에서 경사스러운 『루미너리스』 계약 소식을 알려온 게 엊그제 같은 것은 절대 아니고 마치 전생처럼 느껴지는데 드디어 이 작품을 한국 독자들도 만날 수 있게 됐다. 800페이지가 넘는 영문판 분량에 놀랐던 가슴은 1200페이지에 육박하는 한국어판에 두 번 놀라게 된다.

 

맨부커상 수상작품이라는 타이틀은 『루미너리스』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데 크게 한몫했다. 개인적으로 아직 안 읽어본 맨부커상 수상작은 있어도 읽고 실망했던 맨부커상 수상작은 없었기에 맨부커상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독서 초반 방대한 페이지와 수많은 등장인물들 그리고 그들이 얽혀있는 복잡한 관계에도 기대 이상의 이야기가 펼쳐질 거란 확신을 가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독서를 할 수 있었다. 

 

 "만약 지난주에 이 모든 난리법석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고 나한테 물어봤다면, 난 그 유대인이라고 했을 거야. 어제 물어봤다면 미망인이라고 했겠지. 오늘 오후에 물어봤다면 중국인이라고 했을 거고. 그런데 지금은? 글쎄, (…)"

 

방대한 이야기가 흡인력 있게 읽히지만 놓치는 것 없이 잘 따라가고 있는 건지 머뭇거리며 다시 뒤돌아 보는 것도 잠시, 생각에 잠겨 혼자 있으면 세상이 고요하게 흘러가 놀라운 것처럼 집중력을 가지고 고요하게 책을 읽어나가게 되었다. 영국 이주민들이 뉴질랜드에 정착하고 마오리족은 점점 자신들의 토지를 잃어가는 1860년대 뉴질랜드 금광촌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물들의 내밀한 심리묘사는 물론이고 정교하면서도 강렬한 서사에 긴장감을 놓지 못하게 한다. "좀 모자라는 사람들만이 우연이라는 걸 믿는 법이라네."라는 소설 속 대사를 의식하는 것처럼 작가 엘리너 캐턴은 세심하고 밀도 있는 구성으로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며 몰입도를 높여준다. 긴장감 넘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놀랍도록 생생하게 펼쳐진다.  

 

두 번째 작품으로 맨부커상 수상이라는 작가의 놀라운 이력만큼이나 놀라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루미너리스』를 읽어나가면서 과연 미스터리가 어떻게 풀리게 될지 그 끝이 궁금하면서도 이면엔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방대한 책 두께와 수많은 등장인물에 버거워하고 겁먹었던 마음은 어디로 가고 크라운 호텔의 13명의 남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등장인물들과 호키티카 마을에 정이 들어 이야기가 끝나자 아쉽고 섭섭했다. 마치 시리즈처럼 호키티카에 또 다른 미스터리 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다는 마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