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어라, 내 얼굴 슬로북 Slow Book 4
김종광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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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불만이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다. 얼굴 크기며 얼굴형이며 안의 이목구비 어느 하나 만족하는 부분이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외모에 대한 불만이나 콤플렉스에 대해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면 적당한 위로는 받겠지만 외모에 대한 의견(얼굴이 너무 크지, 못생겼어 등등등) 갈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인상에 관해서라면 의견이 극과 극으로 나누어진다. 나의 입장부터 표하자면 사람들이 만만하게 보는 인상이다. 그래서 길거리 캐스팅 경험은 전무해도 종교 포교활동하는 사람들에겐 인기가 만점이다. 좋게 말해서 순하고 순박하고 이런 말들을 칭찬으로 들었다면 엄마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인상이 너무 세다고 눈에 풀라고 한다. 도대체 어디가? 눈에 안 들어간 건데 뭔가 억울해. 도무지 납득이 안되지만 첫인상이 무서워 보였다, 말 붙이기 어려웠다는 말도 들어본 있다. 그러니까 크고 못생긴 얼굴이 품고 있는 정확한 인상을 나도 모르겠다. 

 

김종광 작가의 『웃어라, 내 얼굴』을 마주하자마자 얼굴에 대한 여러 불만과 기억들이 마구잡이로 떠올랐다. 『웃어라, 내 얼굴』은 작가가 지난 20 동안 1500 개의 산문 중에서 좋은 글들을 추려 묶은 산문집이다. 가족 이야기, 전업 소설가로서의 생계 고민, 의미를 잃어가는 각종 무수한 날들과 현대 사회의 각종 문제들, 문학에 대한 애정들의 무수한 기록들이지만 짧은 글들을 읽다 보면 현재 나의 고민부터 과거의 기억들까지 마구잡이로 소환되어 어느새 이야기를 하고 있다. 『웃어라, 내 얼굴』은 그런 책이다. 샤프에 익숙해졌다가 아이 때문에 오랜만에 연필을 만나 감회에 젖은 글을 읽다가 연필을 연필깎이가 아닌 칼로 깎게 했던 초등학교 4학년 담임선생님을 떠올렸고 다녀야 학원이 많아 바빠서 다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4학년 아이의 발언에 아이와는 반대로 빨리 어른이 되기만을 바랐던 나의 과거가 떠오르기도 했다. 숙제가 많았던 유치원생 아이가 공무원을 꿈꾸는 중학생이 되고 각종 TV프로그램이나 사회적 이슈 등을 통해 20년의 세월의 흐름을 보고 느끼는 재미는 덤이다. 

 

편협한 독서를 하는 탓에 아직 모르는 작가와 작품들이 너무 많다. 김종광 작가 역시 많은 소설을 작가임에도 이번 에세이 『웃어라, 내 얼굴』로 처음 만났다. 고백을 하자면 우습게도 35년을 달고 사는 인상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짧은 호흡의 산문들을 토막토막 읽으면서 김종광 작가에 대해 같다는 착각을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오만인지 모르겠지만 김종관 작가의 지난 20년간의 일상의 기록들이 친밀하게 다가와 줘서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종관 작가의 소설들은 어떤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당장 빨리 손에 쥐고 싶은 소설은 환갑도 훨씬 넘으신 분이 평생교육원 소설창작실습 강의를 들으며 완성했다는 700매가량의 장편소설이라는 조금 웃프다.

 

책을 읽었던 겨울의 초입 풍경처럼 한겨울에 따뜻한 이불 속에서 까먹는 귤 같은 독서를 했다. 번에 먹으려고 담은 게 아닌데 어느새 트레이에 있는 귤들을 한자리에서 까먹는 것처럼 펼치면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갔다. 많은 이야기를 읽은 만큼 떠오르거나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모두가 안녕했으면 하는 떠오르는 얼굴들이 많은 연말이다. 모두가 웃으며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내 얼굴도 웃어라,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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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없다면
애덤 해즐릿 지음, 박산호 옮김 / 은행나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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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해즐릿의 『내가 없다면』은 '우울'이라는 괴물에 지배당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마거릿은 존과의 결혼을 앞두고 존의 우울증과 대면하게 된다. 존과 결혼하여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살지만 존의 우울과 무기력함은 더 이상  존 혼자만이 짊어진 짐이 아니다. 심지어 큰아들 마이클에게까지 이어져 다섯 가족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애덤 해즐릿은 다섯 가족 각자의 시점으로 불안과 우울에 잠식당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우울과 불안이라는 소재만으로 내가 이 소설에 빠져들 것이라는 건 1 더하기 1은 2라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것이었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우울감에 빠져있는 인물들을 대면하면 그 인물의 비중에 상관없이 대책 없이 빠져들곤 했었기에 '<타임>, <월스트리트저널>, BBC 올해 최고의 소설'이라는 타이틀들이 크게 배신하지 않는 이상 『내가 없다면』은 딱 내 소설이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아니, 소설에 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다 하더라도 『내가 없다면』이라는 제목 만으로도 충분히 이끌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없다면』은 책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나를 매료시키는 요소들이 넘치게 많았다.

 

 

 실리아가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눈을 닦고 나서야 아이가 울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내 말은 칼과 같아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벤다. 실리아를 달래려고 몸에 손을 대면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고, 더 심한 거짓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생각을 무시하고, 옆에 가서 실리아, 내 딸의 어깨에 한 팔을 둘렀다. 그러자 아이는 내 축축한 셔츠에 얼굴을 묻고 펑펑 울었다.

 나는 살인자다. 그게 내 정체다. 난 삶을 훔치고 있다. p. 125

 

 

가랑비에 옷 젖는 소설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만났다는 반가움에 감정을 조절하며 읽어야 한다는 걸 그만 잊고 말았다. 애덤 해즐릿이 잔잔하게 건네는 이야기에 쌓여 무너져버렸다. 아니 압사당했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까? 서로를 위해 견디고 기다리는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의 고통과 사랑이라면 알 것 같기도 하지만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감정을 끝없이 두드린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감정의 범위를 단숨에 넘어버리지만 그게 바로 애덤 해즐릿이 건네는 이 소설의 매력이다.

아버지의 병이 아들에게 이어지고 우울이 그들을 잠식해버리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없다면』을 읽으면서 전혀 다른 분위기와 감정을 이야기하는 영화 <어바웃 타임>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어바웃 타임>에서 가장 마음이 가는 캐릭터는 여동생 킷캣이었다. 나에게 <어바웃 타임>은 팀과 메리의 사랑보다, 팀과 아빠의 사랑보다, 팀과 킷캣의 사랑이 더 마음을 끌었었는데 존과 마이클을 걱정하고 지키려는 가족들을 보면서 팀과 킷캣을 자주 떠올렸다. 두 작품이 건네는 감정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건네는 '아름다움'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세상이 우릴 죽이고 싶어 할 때는 내 자신을 조금 죽이는 예방 주사를 맞아야 해요. p.150



<어바웃 타임>의 킷캣처럼 특유의 우울함으로 나를 걱정인형으로 만들었던 소설 속, 영화 속 인물들이 몇몇 있다. 오래도록 그들을 품으며 그들의 안부를 궁금해하기도 하는데 『내가 없다면』의 경우 실로 오랜만에 작품 속 모든 인물들이 각자의 감정들로 나를 사로잡았다. 캐릭터들과 감정, 스토리 등 많은 이야기들을 이 책을 읽은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애덤 해즐릿이 소설 밖에서 건네주는 이야기들도 듣고 싶은데 책에 작가의 말이 없는 건 큰 아쉬움이다. 클릭 몇 번이면 독서 시작도 전에 소설의 스토리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지만 되도록 사전 정보 없이 애덤 해즐릿이 전해주는 가랑비에 옷이 젖고 무수한 감정들에 압사당하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그런 마음에 서평에서 많은 이야기를 펼치지 못했다는 개인적인 아쉬움이 크지만 블로그 밖에서 이 책에 관한 많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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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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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오랜만에 가을을 가을답게 양질의 풍부한 독서로 만끽하며 보냈다. 특히 이번 가을은 여러 출판사에서 들려오는 반가운 신간 소식들을 들으며 일일이 감응하기 바빴는데 그러는 와중에 미루지 않고 바로 집어 든 책마다 만족도가 너무나 높았던 덕에 더불어 삶의 질도 높아진 것 같은 착각에 들게 했다. 벌써 요란한 첫눈을 맞이한 지역들도 생기고 12월이 코앞에 나타난 만큼 가을을 보내주고 겨울을 맞이할 때에 두꺼운 두께로 이번 가을을 함께 아우르며 대미를 장식해준 작품은 앨런 홀링허스트의 장편소설 『아름다움의 선』이었다. 

앨런 홀링허스트는 이번에 처음 대면한 작가지만 그의 작품이 출간되자마자 읽어야 할 이유는 넘치게 많았다. 대부분의 수상작들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던 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충분히 기대감을 높여주었는데 맨부커상을 수상한 최초의 퀴어 소설이라고 하니 기대감이 더 높아졌다. 호기심을 자아내고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요소가 이렇게나 많은 작품이 맨부커상 수상 이후 국내 출간까지 14년이나 걸렸다는 점은 의외다. 국내에서 그의 작품이 발표되지 않아도 몇몇 매체들은 그의 신작이 출간될 때마다 소식을 전해주기도 했다는 것도 이번 기회에 뒤늦게 알게 됐는데  『아름다움의 선』 출간이 한국 독자들과 첫 만남이지만 그의 작품이 출간되길 기다려왔던 독자들이 많았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제 막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자신의 짝사랑 상대인 토비의 대저택에 머무는 닉의 1983년의 여름이야기로 소설은 시작된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란 닉이 토비의 가족들을 통해 경험하는 상류사회와 리오를 통해 처음 경험하는 동성애 세계에 조심스럽게 입문하는 것처럼 소설 또한 조심스럽게 시작되지만 1986년, 1987년으로 이어지는 세번의 여름은 당시의 사회가 동성애자들에게 녹녹치 않았던 것처럼 소설 역시 녹녹치 않다. 

상류사회, 동성애, 인종차별, 정치, 에이즈, 코카인…. 시대를 특정하지 않았더라면 현대 사회의 깊숙한 문제라 해도 큰 이견이 없어 보이는 병적인 이야기들을 앨런 홀링허스트는 세련되게, 아름답게, 하지만 슬프게  끌고 간다. 두꺼운 책장을 넘긴 페이지가 더 많아질수록 그만큼 소설도 더 좋아졌는데 소설을 다 읽고도 쉽게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질 못하게 한다. 초반 더없이 소심하고 진중했던 1983년의 여름이야기로 시작했던 그 소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앨런 홀링허스트의 『아름다움의 선』에 빠져서 오래 헤맸다. 닉의 시선에서 묘사되는 당시 영국의 상류사회와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따라 읽다 보면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영화로 나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여러 번 했었는데 알고 보니 2006년에 BBC드라마로 제작이 되었었다고 한다. 두꺼운 책을 다 읽고 여러 자료들을 찾아보며 작품에 대해 파면 팔수록 왜 맨부커상이라는 타이틀로도 국내에 출간되기까지 14년이나 걸렸는지 미스터리인데 책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어마어마한 수상 목록을 보면 더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세련된 문체로 가득한 『아름다움의 선』은 1980년대 영국으로 스토리가 펼쳐지고, 2004년에 맨부커상을 수상하여 그로부터 14년 뒤 한국 독자들과 첫 만남을 가지지만 그 세월들의 틈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소설이 1980년대가 아닌 현재 시점으로 스토리를 풀어나간다 해도 닉이 가지고 있는 고민들과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들과 그들의 대처가 그대로 공감이 가고 이해가 갈 것 같다. 이 책이 한국에 빨리 출간되어 2004년쯤 20대 초반에 읽었다고 하더라도 소설을 읽어가는 시선이 30대 중반에 읽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은 예감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자주 접하는 장르가 아님에도 영국 작가의 퀴어 문학이라는 타이틀만으로 소설의 전반적인 이미지나 이야기들에 대해서 짐작 가능한 부분들이 있었는데 퀴어 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주지 않아서 더 좋았다. 책을 읽는데 비교적 많은 시간이 걸렸던 데에는 670여 페이지의 엄청난 두께의 영향도 있었지만 모바일로 봤을 땐 크게 못 느꼈던 표지의 실물 탓에 밖에 들고나가 틈틈이 꺼내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소설의 스토리나 이미지만 봤을 때 원서의 표지보다 창비의 표지가 백번 옳았다고 생각한다. 

평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분야의 책을 '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로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으로 만들어준 맨부커상에 대한 신뢰가 이번 독서를 통해 더 두터워졌다. 『아름다움의 선』의 출간을 기다려왔던 독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작가나 책의 존재를 알고 난 뒤 열렬히 출간을 환영하며 읽어갔다. 이번 앨런 홀링허스트의 『아름다움의 선』 출간이 앨런 홀링허스트의 많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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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편지 문지 스펙트럼
에드가 앨런 포 지음, 김진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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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디높은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 같은, 보고만 있어도 배부른, 믿고 보는 문학과지성사의 전집 시리즈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옷을 입었다. 작고 심플한 디자인이 군더더기가 없다. 1차분으로 5권의 책이 출간됐으며 리스트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 볼프강 보르헤르트의 『이별 없는 세대』, 애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 오에 겐자부로의 『새싹 뽑기, 어린 짐승 쏘기』,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이다 

문지 스펙트럼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 서포터즈를 모집했고 평소 서포터즈 모집이나 이벤트가 비교적 활발하지 않았던 문학과지성사였기에 환영하는 마음으로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신청했다. 오지랖 넓게 문지 스펙트럼 서포터즈를 넘어 영업을 조금 하자면 최근 문학과지성사는 스펙트럼 시리즈뿐만 아니라 한강 작가가 지금까지 발표한 권의 소설집 『여수의 편지』, 『내 여자의 열매』, 『노랑무늬영원』도 새 옷을 입고 리뉴얼 되어 출간되었다. 올가을 문학과지성사에서 들려온 새롭게 출간된 책들의 소식이 반가움을 넘어서 든든하다.

 

어둡고 우울하면서 강박적인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독보적인 이야기꾼인 그의 작품세계가 영국 특유의 우중충한 날씨와 닮았다는 생각에 애드거 앨런 포를 자주 영국 작가로 착각하지만 인물들의 날카로운 심리묘사나 날이 그의 필체는 생생하다. 자주 찾아보게 되는 작가는 아니지만 독보적인 작품 색에 매번 매료되고 만다. 추리, 스릴러의 대가답게 속도감 있게 소설들이 읽히는 만큼 작가가 주는 특유의 감정 소비도 커서 도무지 한 번에 몰아읽을 엄두가 나지 않아 신중하게 한편 한 편 아껴가며 나름대로 중심을 잡으며 읽었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서늘하다. 인간의 불안과 고독, 광기 등의 심리 갈등을 심층적으로 그리고 냉담하게 다룬다. 이런 요소들이 권의 단편집에서가 아닌, 단편집에 수록된 5편의 단편들에 전부 등장한다.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세계를 그로데스크 소설, 아라베스크 소설, 추리소설 가지로 나눌 있으며 독자들이 다양한 작품들을 경험 있게 적절히 섞어 배열했다고 옮긴이의 말에서 설명하지만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은 애드거 앨런 포라는 하나의 장르소설이라는 이번 독서를 통해 깨달았다.

 

사건이일어났는지에 대한이유보다어떻게해결해 나가는지과정 앞세우는 점이 흥미롭다. 「도둑맞은 편지」에서 편지의 내용은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편지를 찾아낸 과정은 세세하게 펼쳐진다. 나머지 단편들 역시 마찬가지다. 포르투나토가 화자를 , 어떻게 해코지하고 모욕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복수 과정은 자세하고(「아몬티야도 술통」), 어셔가 저택의 우울과 로더릭 어셔의 히스테리의 근원을 말해주지 않지만 제목 그대로 어셔가가 몰락해가는 과정에 포커스가 집중되어 있다(「어셔가의 몰락」). 늙은이를 죽여야만 하는 화자의 광기로 벌어지는 일들의 과정과 (「고자질 하는 심장」), 암호문을 해독하고 보물을 찾아가는 과정들(「황금 풍뎅이」) 역시 마찬가지다. 반전을 무심하게 건네지만 반전의 전후로 소설의 밀도가 달라지는 점도 애드거 앨런 포라는 장르만이 선사해주는 즐거움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김진경 번역가가 따뜻하게 전해주는 작가의 이야기와 작품의 분석도 좋았다. 번역가가 아닌 문학평론가가 썼다고 해도 믿길 정도로  소설을 읽은 또 다른 기쁨을 선사해주었다. 자신의 작품만큼이나 짧고 미스터리한 생을 마감한 애드거 앨런 포의 작품들을 오랜만에 탐독하며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했는데 늦가을과 초겨울이 오는 시점에 서늘하고 우울한 그의 작품들을 만나 반가웠고 새롭게 리뉴얼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빠르게 만나 반가웠다. 좋은 책을 읽고 후면 책의 앞날개의 작가 소개 글을 여러 번 되짚어보며 놓친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게 되는데 이번엔 앞날개만큼이나 뒷날개도 여러 번 되짚어보았다. 뒷날개엔 1차로 출간된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5권의 목록과 함께 앞으로 나올 14권의 목록이 소개되어 있다. 

황순원의 『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01권이 출간됐던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 새롭게 다시 시작하면서 장정뿐만 아니라 시리즈의 구성에도 약간의 변화를 줬다고 밝혀 앞으로 어떤 작품들이 출간될지 기다리는 즐거움도 준다. 뒷날개에 소개된 목록들만 살펴봐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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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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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서 정세랑 작가의 등장은 개인적으로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한국소설을 읽으며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를 발견하는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귀여니 이후 나와 동갑인 소설가가 등장하는 날을 고대해 왔었다. 마냥 미래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너무나 일찍 정세랑 작가와 만남을 갑작스럽게 맞이하던 순간의 충격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렇다고 84년생 소설가 가장 먼저 등단한 소설가가 정세랑 작가는 아니다.) 나와 동갑인 소설가가 벌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심지어 소설도 너무나 잘 써서 한때 정세랑 작가는 나만 알고 싶은 숨겨진 보석 같은 작가였다. 
 
빛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을 알아보는 눈밝은 독자들이 많았던 탓에 숨겨져 있던 기간이 너무나 짧았지만 정세랑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반갑게 챙겨 읽으며 발표하는 작품이 늘어날수록 작가의 독자층이 두터워지는 지켜보는 일은 나에겐 흔하게 있는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귀한 경험이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작가의 신간 소식을 반가워할 독자들이 많은 덕분에 창비출판사에서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출간을 앞두고 수록작 「옥상에서 만나요」와 「이혼 세일」 랜덤으로 가제본을 보내주는 사전서평단을 무려 100명이나 모집했고 정세랑 작가를 향한 덕심을 아낌없이 표출한 나에게 도착한 작품은 「이혼 세일」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조가 마치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50명의 등장인물들을 연결했던 옴니버스 소설 『피프티 피플』의 축소판 같다. 이혼을 하게 된 이재의 크고 작은 살림들을 처분하고 출발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마련된 '이혼 세일' 앞두고 이혼 세일에 초대된 친구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펼쳐진다. 한때 붙어 다니던 6명의 무리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동경, 질투, 연민 인물들 간의 미세한 갈등과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역시 정세랑이다. 특별한 듯 평범한 상황 속에서 생생한 캐릭터들을 세심하게 녹여낸 정세랑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대표작을 갱신시켜주었는데 소설집 작품만 봐도 이번에도 역시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이 갱신될 것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마치 계절이 바뀌듯이 대표작이 바뀌다니 발표하는 작품마다 뚜렷한 색을 가진 정세랑 작가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낸 성과들을 바라보는 일이 즐겁다
 
같은 재료와 레시피를 가지고 요리를 해도 도무지 이재의 장아찌 맛을 흉내 내지 못하는 경윤처럼 정세랑 작가의 역시 특별한 소재나 기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특유의 사랑스러움은 전매특허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같다. 한때는 나만 알고 싶은 작가였는데 이제는 나보다 정세랑 작가에 대해 말이 많은 독자들이 많아져 질투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재와 예전 같지 않은 관계에 질투를 느끼는 아영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 짧은 단편을 읽으며 곳곳에서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재의 이혼 세일에 가서 무언가 근사한 말을 돌려주겠다고 다짐하는 지원처럼 매번 사랑스러운 소설을 선사해준 정세랑 작가에게 감사의 의미로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지만 표현력의 한계도 크고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은 앞으로 계속 갱신될 것이기에 찬사의 표현은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갈수록 희소해지지만 좋은 작품들을 발표하며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젊은 작가들이 한국 문단엔 많다. 편견과 더불어 학연, 지연, 혈연 이따위 것들을 너무 싫어하는 내가 나와 같은 나이를 지나치게 앞세워 정세랑 작가를 향한 애정을 드러낸 같아 작품의 진짜 매력이 가려진 아닌지 노파심이 생긴다.  
작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은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었다.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은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다. 2 연속으로 84년생 작가들이 수상을 했다. 84년생 소설가들의 활약이 이쯤 되니 편견, 나이 이런 거 나는 모르겠다. 남다른 젊은 감각을 가진 우리 84년생 소설가들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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