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만나요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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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서 정세랑 작가의 등장은 개인적으로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한국소설을 읽으며 좋은 소설을 쓰는 작가를 발견하는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귀여니 이후 나와 동갑인 소설가가 등장하는 날을 고대해 왔었다. 마냥 미래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예상보다 너무나 일찍 정세랑 작가와 만남을 갑작스럽게 맞이하던 순간의 충격은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렇다고 84년생 소설가 가장 먼저 등단한 소설가가 정세랑 작가는 아니다.) 나와 동갑인 소설가가 벌써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심지어 소설도 너무나 잘 써서 한때 정세랑 작가는 나만 알고 싶은 숨겨진 보석 같은 작가였다. 
 
빛나고 사랑스러운 작품들을 알아보는 눈밝은 독자들이 많았던 탓에 숨겨져 있던 기간이 너무나 짧았지만 정세랑 작가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반갑게 챙겨 읽으며 발표하는 작품이 늘어날수록 작가의 독자층이 두터워지는 지켜보는 일은 나에겐 흔하게 있는 경우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말 귀한 경험이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져서 작가의 신간 소식을 반가워할 독자들이 많은 덕분에 창비출판사에서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출간을 앞두고 수록작 「옥상에서 만나요」와 「이혼 세일」 랜덤으로 가제본을 보내주는 사전서평단을 무려 100명이나 모집했고 정세랑 작가를 향한 덕심을 아낌없이 표출한 나에게 도착한 작품은 「이혼 세일」이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조가 마치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50명의 등장인물들을 연결했던 옴니버스 소설 『피프티 피플』의 축소판 같다. 이혼을 하게 된 이재의 크고 작은 살림들을 처분하고 출발을 응원하고 지지하기 위해 마련된 '이혼 세일' 앞두고 이혼 세일에 초대된 친구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펼쳐진다. 한때 붙어 다니던 6명의 무리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동경, 질투, 연민 인물들 간의 미세한 갈등과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역시 정세랑이다. 특별한 듯 평범한 상황 속에서 생생한 캐릭터들을 세심하게 녹여낸 정세랑 작가는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대표작을 갱신시켜주었는데 소설집 작품만 봐도 이번에도 역시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이 갱신될 것이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마치 계절이 바뀌듯이 대표작이 바뀌다니 발표하는 작품마다 뚜렷한 색을 가진 정세랑 작가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낸 성과들을 바라보는 일이 즐겁다
 
같은 재료와 레시피를 가지고 요리를 해도 도무지 이재의 장아찌 맛을 흉내 내지 못하는 경윤처럼 정세랑 작가의 역시 특별한 소재나 기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특유의 사랑스러움은 전매특허로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같다. 한때는 나만 알고 싶은 작가였는데 이제는 나보다 정세랑 작가에 대해 말이 많은 독자들이 많아져 질투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이재와 예전 같지 않은 관계에 질투를 느끼는 아영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 짧은 단편을 읽으며 곳곳에서 개인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다. 이재의 이혼 세일에 가서 무언가 근사한 말을 돌려주겠다고 다짐하는 지원처럼 매번 사랑스러운 소설을 선사해준 정세랑 작가에게 감사의 의미로 최고의 찬사를 보내고 싶지만 표현력의 한계도 크고 정세랑 작가의 대표작은 앞으로 계속 갱신될 것이기에 찬사의 표현은 다음으로 미뤄두기로 한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갈수록 희소해지지만 좋은 작품들을 발표하며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젊은 작가들이 한국 문단엔 많다. 편견과 더불어 학연, 지연, 혈연 이따위 것들을 너무 싫어하는 내가 나와 같은 나이를 지나치게 앞세워 정세랑 작가를 향한 애정을 드러낸 같아 작품의 진짜 매력이 가려진 아닌지 노파심이 생긴다.  
작년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은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이었다. 올해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은 최은영 작가의 『내게 무해한 사람』이다. 2 연속으로 84년생 작가들이 수상을 했다. 84년생 소설가들의 활약이 이쯤 되니 편견, 나이 이런 거 나는 모르겠다. 남다른 젊은 감각을 가진 우리 84년생 소설가들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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